[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광화문광장과 한강은 좋은 공공 공간일까?’ ‘왜 한강은 센 강이나 템스 강처럼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되지 못할까?’ ‘왜 아파트는 유독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까?’ 서울에서 ‘건축’을 공부했고 베를린에서 ‘도시’를 공부한 저자 전상현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대해 이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비민주적 도시 공간
저자는 현재 서울의 도시 공간 정책이 패러다임 전환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의 도시 공간 정책은 박정희에서부터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삽질부터 하고 보는 개발주의, 그리고 이명박에서 오세훈 시장에 이르는 생태와 문화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개발주의와 다를 바 없었던 신개발주의와 결별을 선언하고 탈개발주의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패러다임’이라는 렌즈를 통해 공공 공간, 공공개발 사업, 보존, 아파트라는 서울의 도시 문제를 대변하는 네 키워드를 가상 대담이라는 특이한 형식을 통해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 문화 정치 경제적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상징적 인물을 선별해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스스로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다양한 시각을 담은 대답들을 선별해서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서울의 도시 공간 정책에 대해 조목조목 날카로운 비판을 한다. 한강 하면 떠오르는 아파트와 강변도로는 공유자산인 한강 경관을 사유화하기 때문에 민주적 도시 공간의 관점에서도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폐쇄된 대단지 형식의 이들 아파트는 도심에서 한강 변에 이르는 다양한 접근로를 차단해버리기까지 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러면 왜 아파트는 폐쇄적인 단지 형식이 됐을까? 저자는 ‘단지 안의 공원, 도서관, 보육 시설, 경로당, 스포츠센터 등은 원래 다 공공이 제공해야 하는 기본적인 주거 인프라’라며, 공공이 제 역할을 안 하니까 민간이 아파트 단지라는 사유 공간으로 해결한다’고 설명한다.
도시는 주민이 만들어 나가는 것
이 책의 특이점은 과감한 아이디어들을 풍성하게 제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막대한 자원과 시간을 들여 건축물을 만들어내지 않고도 한강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노점 아일랜드’와 ‘1일 1교 워킹데이(walking day)’, 아파트 ‘단지 공공화’ 등을 제안한다.
노점 아일랜드는 한강의 수상부두에 건물을 올려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들이는 대신, 노점상과 푸드트럭을 불러들여 테마별로 조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건물을 새로 짓지 않아도 되고 쉽게 프로그램을 바꿀 수도 있으니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며, 노점상 합법화와 푸드트럭 활성화가 가능해지고 수익이 기업이 아닌 서민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1일 1교 워킹데이’는 하루에 한강 다리를 하나씩 정해 차량을 통제하고 푸드트럭과 노점 영업을 허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드웨어(시설)가 아닌 소프트웨어(이벤트)로 보행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고 결과가 안 좋으면 바로 원상 복귀할 수 있으며 시민에게 차도 위를 놀이터로 사용하는 일탈의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서울과 도시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주체성과 문제의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