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유한태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6일부터 청문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최순실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핵심 증인이 불출석했고,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등도 불출석하며, 국민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트렸다.
모든 건 최순실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핵심인물들은 이번 국정특위에서 민감한 부분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최순실의 지시 또는 아이디어라며 최순실 책임으로 돌렸다.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개입 의혹만을 일부 시인했을 뿐 나머지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거나 최순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차 전 단장은 “최순실씨가 문화창조 콘텐츠 관련 생각을 써달라고 해서 써줬는데 어느 날 대통령 연설문에 포함돼 나온 적이 있다”며, ‘최씨가 증인의 말을 듣고 연설문을 고치는데 사용했다고 추측하느냐’는 질의에는 “그렇다”고 답해 대통령 연설물 개입 의혹에 대해 일부 시인했다. 그러나 최순실의 문화체육관광부 고위직 임명 개입 의혹과 관련해서 “최순실이 먼저 요청해서 제가 장관님과 수석님 몇 분을 추천드렸다”며 최순실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박 대통령의 행사 참여에 대해 “내가 먼저 부탁한 적은 없다. 내가 하는 행사에 ‘대통령이 가실 것’이라는 말을 (최순실로부터) 들었다”며 이 역시 최순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도 “저는 최순실씨가 지시를 하면 따라야 되는 입장이고, 또 이모인 데다가 거스를 수는 없었다”며 최순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특히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6억원, 삼성으로부터 16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고 밝히며, 이는 모두 “최순실 이모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혔다.
한때 최순실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고영태씨도 최씨의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 개입 의혹에 대해 “연설문을 고치는 것 같다고 (내가) 얘기한 적이 있다”고 연설문 개입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고씨는 최순실과 남녀사이였냐는 이만희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절대 그런 관계가 아니다”라고 강력 부인하며, “2년 정도 전부터 (최순실이) 모욕적인 말과 직원들을 사람 취급을 안 하는 행위를 많이 해서 그때부터 좀(소원해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씨는 최순실의 지시로 박 대통령의 옷을 100벌 가까이 제작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모른다던 김기춘 전 실장...6시간 만에 말바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 국조특위’ 소속 의원들의 거듭된 추궁에도 최순실을 알지도 못한다고 항변하면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전 실장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보고를 받고도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머리 손질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데 대해 “알지 못했다”고 밝혔고,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의료 진료를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도 “청와대 관저 일은 알지 못한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과의 관계를 거듭 추궁하는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에게는 “최순실을 알았다면 뭔가 연락을 하거나 한 통화라도 하지 않았겠냐. 검찰 조사하면 알 것”이라며 최순실과 친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정윤회 문건 보고서’에 최순실이 ‘정윤회의 처’로 기록돼 있다고 지적하며 최순실 관련 설명이 흘러나오는 2007년 한나라당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제시하자, “최순실이란 이름은 이제 보니까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며, “죄송하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라며 말을 바꿨다.
김 전 실장은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에 기록돼 있는 자신의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지시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 일본에서 불법 줄기세포시술을 했다는 의혹,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문 작성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 등을 모두 부인했다.
청문회 나온 재벌들, 역시나 4지선다 돌려막기
이번 국조특위에 불려나온 재벌들은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 내가 부족하다, 앞으로 잘하겠다” 이 4가지 사지선다를 무한반복하며, 역시나 하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 ‘비선 최순실’의 존재를 언제 알았는냐는 의원들의 거듭되는 질문에도 “기억이 정말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부회장은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최순실 인지 시점을 계속해서 추궁하자,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가 부족한 점이 정말 많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이 부회장은 다른 대답을 할 줄 모르는 분이거나 다른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무능한 분이거나 아니면 국민을 우롱하는 분일 것”이라며 “전경련 탈퇴할 때도 이 자리에서 결정을 혼자하시고 국민연금 통합도 결정하시고 이 정도면 가장 의사결정권이 있는 분이 (정유라에게) 개 한마리도 아니고 19억원짜리 말 한마리를 사줬는데 이걸 모르냐”며 이 부회장을 비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이 대가성에 따른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한 건 아니었고 그건 제 결정도 아니었다”며 “기업대로 할당을 받아 그 액수만큼 낸 것”이라고 밝혔다. 최 회장은 “당시 결정은 그룹 내에서는 사회공헌위원회에서 한 것으로 제 결정이 아니었다”며, “제가 직접 관여를 한 사항도 아니고 보고 받은 일도 없었기에 모두 사후에 실무진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한편 이러한 재벌들의 모르쇠 답변에 대해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비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7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참석한 재벌총수들은 재단 출연의 대가성과 관련된 핵심질문에 대해서는 답변 회피, 부인, 모르쇠로 일관했고 청와대의 재단 출연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다는 하소연만 털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번 1, 2차 청문회를 지켜보면 참석자들의 대체적인 태도는 본인과 관련된 민감한 부분은 부인하거나 회피하고, 드러난 부분에 대해 최소한의 한도에서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 전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상당부분 예측가능했지만, 국민들 입장에서는 시원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핵심증인들의 불출석은 이번 청문회를 맹탕청문회로 만들어 버렸다. 2차 청문회 후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 참석을 강제할 수 있는 입법을 준비하는 바, 앞으로 이어질 청문회에서는 이러한 미비점이 개선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