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한국 외교가 사면초가에 처했다. 그야말로 '샌드위치'처럼 눌려있는 상황이다. 중국은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에 대한 보복을 노골화하고,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과 총영사관 앞 소녀상 문제를 공론화하며 전면전을 선포했다.
대미(對美) 외교도 순탄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신 행정부가 1월20일 본격 출범한 가운데 한국의 대미 외교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8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과 대북정책 및 한미동맹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취임 2주를 앞두고 급박하게 이뤄진 방미는 겉돌고 있는 한국의 대미 외교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부산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한·일 간 외교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長嶺安政)는 1월9일 일시 귀국에 앞서 한국 취재진에게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는 매우 유감"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산 소녀상 설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여과 없이 반영된 표현이다.
일본 정부는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또다시 소녀상이 설치되자 즉각 공세에 나섰다. 지난 1월6일 주한일본 대사와 부산총영사 등을 ‘일시 귀국’과 함께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했다. 한·일 고위급 경제 협의도 연기했다. 이는 사실상 외교보복 조치로 해석된다.
이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NHK 방송에서 "우리는 10억엔(약 103억원)을 냈으니 한국이 성의를 보일 차례"라면서 부산과 서울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그는 국가적 신용문제를 언급하면서 소녀상 설치는 위안부 합의 파기라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게다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경기도의회가 독도에 소녀상 설치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독도는 원래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소녀상 설치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용납할 수 없으며 극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일본 내각 핵심들이 잇따라 도발적 발언을 내놓으면서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한·일 간 영토 문제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사드 배치 확정에 따른 중국의 보복 움직임도 심상치않다. 중국은 사드배치에 대한 반발로 자국민의 한국 방문을 제한하고 한류 스타의 중국 방송 출연을 막는 등 한류 확산 금지 비공식 정책인 이른바 '한한령(限韓令)'을 강화하고 있다.
또 롯데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전세기 한국 운항 불허, 한국산 배터리 보조금 지급 제외 등이 대표적인 사드 보복 조치 사례로 볼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중국 전투기 편대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고 한·중간 군사교류 및 훈련을 사실상 중단 하는 등 민간과 군사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변국들의 전방위적 압박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미 예견됐다는 지적이다. 전략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선택에 따른 외교 정책, 그 결과를 유리하게만 해석하려는 습성이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움직임은 거북이 걸음이다. 청와대가 올스톱 상태라고는 하지만 어떤 의제 하나라도 의지를 갖고 해결해 보려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국정운영 콘트롤타워의 부재다.
이와 관련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급조된 외교 정책에다가 정부가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서 '만약'의 사태를 충분하게 대비하지 않았다"며 "사드 발표 날 외교장관이 바지를 고치러 간 것만 봐도 정부 내에서 심도 있게 논의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중국은 한국에 차기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면서 흔들기를 계속할 것"이라며 "일본도 당연히 한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는다는 프레임으로 강하게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아베 총리는 국내적으로 우익 세력의 비판을 받았던 만큼 자신의 국내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공세를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여기에다가 아베 총리가 트럼프와의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고 있어, 향후 소녀상 문제에 관한 국제적 여론전이 펼쳐질 경우 한국이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미(對美) 외교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권한대행 체제로는 사실상 정상외교가 불가능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신 행정부 출범 이후 한미 정부 간 FTA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이 공론화될 경우 정부는 대중(對中)·대일(對日)외교뿐만 아니라 대미(對美)외교에서도 고비를 맞이하게 될 전망이다.
최 부원장은 "우리 정부가 직면한 문제는 '시한부' 정부라는 점"이라며 "상황이 계속 꼬여가지만, 주변국들에 '정권 바뀌면 바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국면"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 간 합의를 파기할 경우 외교적 타격은 클 수밖에 없지만, 정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정부인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