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수정 기자]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가 2017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됐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주역으로 볼 수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권과 대기업의 정경유착 정황이 드러나 '반(反) 기업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이 국민 정서의 뇌관을 건드렸다는 분석이다.
이에 이 부회장처럼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사례가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논란이 다시금 커진 상황이다. 지난해 9월 1700억원대의 횡령·배임 혐의에도 신 회장이 불구속 기소돼 잡음이 끊기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뇌물죄로 수사 대상에 오를 경우 다시 같은 결론이 나올지는 미지수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면세점 특허권 재승인 특혜를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금을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미 49억원 상당을 두 재단에 투자한 데 이어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추가로 낸 배경에 면세점 재승인 청탁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 의혹의 골자다. 특히 신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가성 의혹'은 더 커지기도 했다.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낸 70억원이 총수 일가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직전 롯데 측에 반납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돈을 돌려준 것 자체가 추가 출연금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해석이다. 검찰 수사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윗선'이 추가 출연 과정에 관여했을 거라는 의심도 함께 나온다.
또한 롯데가 정부에 자사 소유의 성주CC 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제공하고 롯데그룹 총수 일가의 불구속 기소와 면세점 신규 사업자 선정 등을 대가로 받았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로 신동빈 회장의 구속 영장 기각과 롯데의 사드 배치 부지 제공 시점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던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해 9월 기각됐다. 공교롭게도 국방부는 바로 이날, 롯데상사에 '롯데 성주CC가 최종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되었으니 부지 취득을 위한 협의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다음날 한·미 양국은 롯데 성주CC를 사드 배치 부지로 최종 발표했다.
하지만 롯데는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다. 롯데와 신 회장은 '부정한 청탁이나 대가성은 전혀 없었다'며 '우리도 피해자'라는 입장을 항변하고 있다.
"뇌물죄 적용해야"
법조계와 시민사회단체 안팎에서 특검팀이 롯데의 뇌물공여 혐의와 관련해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며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김태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재벌구속특위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롯데는 불법 비자금 조성 외에도 면세점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이미 밝혀졌다. 이미 수년 전부터 총수일가 이권다툼으로 전국민의 지탄의 대상이 된 바 있다. 이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 구속됐어야 할 일당이 롯데일가였다. 롯데 신동빈을 비롯한 재벌총수들에 대한 즉각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신동빈 회장의 구속을 촉구했다.
임태연 중소상공인비상시국회의 위원장도 "롯데 신동빈은 지난해 비자금 조성으로 감옥을 갔어야 할 인물인데, 그때도 검찰이 결국 풀어줬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공모해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대고 탈락한 면세점을 다시 회복한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에 정의도 없고 오로지 권력과 결탁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 노동자를 갈취했다"며 "특히 전국에 롯데가 고가 쇼핑몰을 만들어서 600만 자영업자의 생존권을 위태위태하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롯데그룹을 비판했다.이와 더불어 '또 다른 뇌물', 즉 롯데의 사드 부지 제공에 대한 수사를 박영수 특검에 요청했다.
아울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뇌물죄를 적용하고, 범죄 수익도 몰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민석 법률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신동빈 회장은 지난해 2월18일 박 대통령과 독대를 했고, 이후 5월 K스포츠재단에 추가로 70억원을 후원했다가 롯데 총수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기 전날 되돌려 받았다"며 "뇌물죄 및 뇌물공여죄는 일단 돈을 주는 순간 적용되기 때문에 나중에 돌려받은 것과는 상관없이 혐의가 성립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뇌물죄가 적용될 경우 신 회장도 형사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그는 "특검은 뇌물죄를 정조준하고 있지만 롯데는 강요죄를 주장하며 방어하고 있다"며 "롯데는 다른 재벌 기업들과 달리 돈을 돌려받았기에 '강요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 회장이 뇌물 공여의 대가로 얻은 범죄 수익을 몰수·추징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또 "신 회장은 롯데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이고, 권력자"라면서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을 사주할 가능성도 있다"며 구속수사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을 계기로 '재벌총수 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거세진 가운데 향후 법원이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