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끊이지 않는 테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도전적 정책 등으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대공황 직전을 연상시키는 경제적 침체에 강력한 보호무역주의가 대세로 떠오르고, 인종 종교적 갈등까지 극에 달한 국제 정세는 전쟁 전야를 보는 것만 같다. 특히, 국내는 탄핵 정국에 세월호 메르스 AI 구제역 등 혼란이 가중되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벙커 산업 활황
중동 민담집 ‘천일야화’의 ‘알라딘과 요술램프’에서 알라딘이 곤란한 일이 생길 때마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불러 해결하는 것처럼, 현대인들이 걱정 근심을 수시로 호출하고 있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 ‘램프증후군’. 경제위기가 지속되고 자본주의와 공동체 가치관 등 전통적인 질서마저 흔들리는 전 세계적 변동기의 불안감을 상징하는 이 같은 현상은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재난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낳은 현대병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에서도 재난을 계속 걱정하는 과잉근심은 사실 뉴스보다 상업적 마케팅의 영향이 더욱 크다. 공포는 전통적으로 가장 강력한 장사이기도 하다. 세균의 공포를 부각시켜서 위생 관련 산업은 엄청난 성장을 했고, 질병과 사고의 위험을 강조해서 보험 산업이 자리 잡았다. 공포는 과장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며 근심은 대부분 불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마케팅으로 이용하고 미디어가 공포를 구체화시킨다고 해도 집단 심리에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벙커 산업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소 1년간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식수를 비롯한 완벽한 주거공간에 영화관 수영장까지 딸린 호화형 지하 벙커 분양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지만, 최근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단순한 컨테이너형에 아파트형까지 다양한 타입의 벙커가 가격대에 맞춰 팔리고 있다. 핵전쟁에 대해서조차 가능성을 열어 놓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테러와 전쟁의 위험이 더욱 커졌다. 미국 벙커 산업의 활약은 미국인의 불안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예전과 달리 가택침입 절도범이 증가하자 최근 몇 년간 은행금고를 이용하거나 보안장치를 구비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각종 설문조사에 의하면 많은 독일인들이 난민증가를 이 같은 범죄의 증가 배경으로 인식하고 있다.
강박증을 이용한 어른들의 장난감
‘어른들의 장난감’이란 타이틀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피젯 큐브(Fidget Cube)’는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단순한 놀이기구다. ‘피젯 큐브’란 3cm 안팎의 정육면체 각각의 면에 버튼 스틱 다이얼 턴테이블 등 누르고 돌리는 각종 단순 손장난 장치를 설치해놓은 것이다. 기존 키덜트 상품이 동심으로 돌아가는 스트레스의 위안용인 것과는 달리 이 장남감은 진짜 어른들만이 즐기는 장난감이다. 이 단순한 장난감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끈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강박인구를 짐작케 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손톱을 물어뜯거나 볼펜을 돌리고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등의 반복된 행동을 강박적으로 하는 습관장애의 원인을 불안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피젯 큐브’는 내면적 스트레스의 외부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불안이 극심해지면서 강박장애로 발전하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강박장애는 불안장애의 하나로서, 원하지 않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나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적 사고를 중화하기 위해 하는 강박적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이다.
우리 시대 거의 모든 사람은 만성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종종 불안을 근대성의 문화적 징후로 분석하기도 한다. 잇따른 경제위기, 빠르게 증가하는 소득불평등, 사회 전반적인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안은 현대를 특징짓는 심리적 현상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만큼 강박적 사고와 행동이 심해지면 질환으로 분류된다.
35년 전만 해도 ‘불안장애’라는 공식 진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장애는 이제 신경정신과를 찾아야 하는 정신질환 중 가장 흔한 병이 됐다. 미국에서 정신건강 관리에 드는 비용의 31%가 불안 치료에 사용된다. 한국도 다르지 않아 지난 5년 사이 불안장애로 진료 받은 환자 수가 22.8% 늘었다.
무소유·자연주의 인기
불안이 극대화되면서 반대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현상도 늘어나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심리 현상이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충족시키기 힘든 시대에 소유욕 자체를 버리는 훈련을 통해 시대적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일종의 운동인 셈이다.
산속에서 문명에서 최대한 단절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MBN의 ‘나는 자연인이다’는 그런 면에서 트렌드를 앞서가는 기획이라고 할만하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또한 현대인들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경제적 사회적 불안의 돌파구를 찾고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 실제로 귀촌 인구는 꾸준한 증가세를 띄고 있다. 2030의 귀농 열풍은 최근 몇 년간의 특이 현상이다. 취업난이 주된 이유지만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이유로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연주의는 미국 유럽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돼 밀라노 파리 멜버른 등으로 퍼져가 열풍을 일으킨 ‘누드 레스토랑’은 자연에 가까운 식사라는 콘셉트로 성공했다. 옷을 입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입고 식사를 할 뿐만 아니라, 채식이나 가공을 최소화한 요리로 구성돼 있어 인공적 현대적 도시적인 것을 거스르는 레스토랑이다.
어느 때보다 재해와 배고픔에서 안전해진 시대에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 때론 아이러니하고 비합리적인 방법이지만 불안을 이기기 위한 각종 수단들도 발전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