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9월2일 개통한 우이 신설 경전철은 ‘달리는 미술관’을 표방하고 나섰다. 열차 내부는 물론, 전철이 지나는 13개 역 또한 예술 전용공간으로 조성됐다. 고(故) 천경자 화백을 비롯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됐고, 벽면이나 바닥 계단 에스컬레이터 자체를 작품화하는 ‘아트스테이션’으로 꾸며지기도 했다. 지하철은 전부터 공공미술이 가장 활발한 장소지만, 이처럼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형태로 기획된 것은 처음이다. 공공시설에서 예술의 비중이 어느 정도로 승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도시재생과 홍보의 수단
‘도시의 미술’은 최근 지자체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분야다. 미술품이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하고 재편성한다는 깨달음이다. 특히 서울시는 공공미술 확대에 열정적이다. 올 초에 공공과 민간으로 나뉘어 있던 서울시내 조형물 관리 규정을 통합하고 ‘공공미술위원회’를 신설했다. 시민이 직접 생활 속에 숨겨진 공공미술작품을 찾아 알리고 발굴 제안하는 ‘서울시 공공미술 시민발굴단’도 만들었다.
이 결과 올 한해만 해도 수많은 공공미술 사업이 이루어졌다. ‘2017년 공유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해 서울 도심 공터에 공공미술작품 설치를 계획했다. 12월에는 가양대교 북단에 서울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공공미술작품 ‘서울의 문’이 설치된다.
서울광장에는 지난 7월부터 6개월 단위로 다른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는 1970~1980년대 사용된 스피커를 청동으로 형태를 떠내 200여개를 쌓아 5.2m 높이의 타워로 제작한 김승영 작가의 ‘시민의 목소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어울림 광장에 설치된 거울 작품 ‘#히어_어스(here_us)’는 볼록 거울의 원리를 이용해 넓고 높은 풍경을 한 지점에 집약한다. 서울시는 내년 8월까지 명소들로 작품을 이동 전시한다. 서울의 명소를 작품을 통해 알리겠다는 구상이다.
공공미술의 발전은 사실상 낙후 지역의 도시재생 수단으로 시작됐다. 10여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을 편성해 대대적으로 미술을 통한 마을 변화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상징 산업이나 특산물을 작품에 표현하거나 재료로 쓰는 등 조금 단순하고 직설적이기는 하지만 정체성을 담아내려는 노력도 시도됐다. 도시재생 수단은 여전히 공공미술의 가장 강력한 존재 이유로 인식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미술 마을 사업은 현재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광주광역시 발산마을처럼 기업과 제휴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도 소외된 지역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7개 미술대학 100여명이 참여하는 ‘서울 곳곳을 예술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흉물 논란’ 예산 낭비도 많아
하지만 이 같은 ‘마을 단장’이 지나친 상업화로 전락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양산시키고 있다. 공공미술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이화동 벽화마을은 동시에 투어리스티피케이션의 대표 사례기도 하다. 일상의 공간이 관광지화 되면서 주민이 쫓겨나가야 하는 환경에 처한 이 같은 현상은 과연 공공미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복잡한 고민거리를 주는 상황이다.
작품 선정 시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서울역고가에 설치된 ‘슈즈트리’는 흉물 논란으로 설치 9일 만에 철거됐다. 2016년 서울 코엑스 앞에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 동작을 표현한 손 모양의 조형물 또한 “지나친 시류 영합으로 촌스럽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금산의 인삼모자상이나 영덕 해파랑공원의 대게상, 괴산군의 임꺽정과 고추상 등 지자체 특산물 형상물 중 조악한 표현으로 조롱의 대상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작품에 대한 불만을 품은 시민의 훼손도 빈번하다. 시민의 공감을 사기 힘든 대형 작품은 결국 예산 낭비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장소와 관련 없는 미술품들은 도시와 어우러지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쓰레기만 돼서 설치에서 철거까지 비용만 들어가는 애물단지가 된다. 이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서울시는 시민의 투표로 작품 선정을 하는 등 시민 참여를 대폭 늘렸다.
시민이 선택하고 때로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형태는 공공미술의 진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관 주도의 공공미술에 한계가 있다. 다수의 취향이란 어떤 면에서 예술이라는 개념과는 상반되는데, 그럼에도 공공성을 판단할 다른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딜레마 때문이다. 현재 해당 도시의 상징이 된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도 초기에는 시민과 평론가들의 비난을 받아 철거 위기를 겪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공미술을 단순히 다수의 논리로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예술성과 대중성, 그리고 공공성
지난 2000년에 지하철 역사에 설치됐던 이동기 작가의 ‘아토마우스’와 강영민 작가의 ‘안티히어로’ 캐릭터들이 엇갈리게 배치된 만화적인 그림 ‘서브웨이 코믹 스트립’은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엽기적인 묘사와 파격적 설정으로 “볼 때마다 불쾌하다” “황당하다”는 시민들의 항의를 꾸준히 받다가 급기야 그림 위에 스프레이로 ‘다시 그려’라는 글을 써서 훼손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진보적인 작품은 그 작품성과 상관없이 공공미술로 적합하지 않다는 상징적 사건이 됐다. 결국 관공서가 주도하는 공공미술은 무난하고 정형화된 작품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벽을 넘기 어려운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서희씨는 “예술이 자기 표현이듯 공공미술도 그 도시인의 내면을 표현할 것이다. 몰개성은 공공미술의 숙명이 아니라, 시민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을 벗어난 공공미술이 지역의 정체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 복원 작업을 마치고 9월2일 제막한 전남대학교 사범대 외벽의 ‘광주민중항쟁도 벽화’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첫 번째 벽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의미가 큰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apmap 2017 jeju’에 참여한 작가들은 제주의 여러 지역을 답사하면서 장소에 얽힌 설화를 탐구하고 영감을 얻어 현대미술 작품으로 제작했다.
이는 공공미술에 대한 행정적 접근과 함께 도시의 공간을 창작자들에게 자유분방한 표현 공간으로 내어주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공공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어떻게 확보해 갈 것인가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과 함께 미래 공공미술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