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JTBC ‘나의 외사친’, 올리브TV ‘서울메이트’, JTBC2 ‘영국남자’, SBS ‘내 방을 여행하는 낯선 이를 위한 안내서’ 등 예능의 핫키워드로 ‘외국인’이 뜨고 있다. 유행하는 ‘외국인 예능’에는 ‘타자’와 ‘자아’에 대한 새로운 또는 고전적 코드들이 숨겨져 있다.
글로벌적 시각에 대한 요구
외국인이 TV에 대거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한층 글로벌화 된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세계인과 대화하고 뉴스와 문화 콘텐츠를 공유하는 환경에서 사고와 시각의 확장이 필수인 시대다.
JTBC 장수 예능 ‘비정상회담’은 이 같은 트렌드의 포문을 연 프로그램이다. ‘비정상회담’은 외국인이 출연해 문화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KBS ‘미녀들의 수다’의 변형이었지만, ‘미녀들의 수다’가 ‘외국인이 본 한국’에 가깝다면, ‘비정상회담’은 문화적 교류와 논쟁, 비판 등 보다 객관적이고 상호적인 형태로의 진보로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비정상회담’은 전통적인 가치관과 글로벌적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국적 상황에 대한 고민을 예능화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고찰이 테이블에서 이뤄져왔다면, 이제는 관찰로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 최근 ‘외국인 예능’이라고 할 수 있다.
MBC every1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심지어 ‘비정상회담’ 출연자의 친구가 등장한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한국을 직접 체험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유튜브 인기 채널 ‘영국남자 조쉬’를 TV로 옮긴 ‘영국남자’는 사실상 외국인 한국 여행기의 원조 격이다. ‘서울메이트’ 또한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의 모습을 담는다.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은 ‘비정상회담’ 같은 한국문화를 글로벌 기준에서 재평가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기에는 한계를 보인다. 일방적인 체험이라는 조건 속에서 굳이 비판까지 하고 나설 외국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시청자에게 쾌감을 주는 부분은 외국인이 한국문화에 감탄하고 열광하는 지점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국인 등장 프로그램 특유의 은밀한 쾌감과 불편함을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셈이다.
1980년대 외국인이 TV에 등장할 때는 두 종류였다. 선진국들의 우월한 시스템을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또 하나는 전통문화를 관람하는 외국인을 클로즈업 해 보여주는 뉴스나 명절마다 편성된 외국인 노래 자랑. 전자가 선망과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면, 후자는 한국문화를 향유하는 외국인을 통한 안도감이었다. 우리는 참 후진적이구나 하고 자학하다가 그래도 세계적으로 그리 나쁜 문화는 아닌 모양이라는 위안 사이에서 ‘단짠’ 맛을 반복하는, 한국 TV에서 ‘외국’은 그런 존재였다.
한층 포장 기법이 세련돼 졌지만, 근본적으로 여전히 우리는 타자의 시선에서 평가받는 ‘인정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최근 ‘외국인 예능’들은 확인시켜 준다. tvN ‘윤식당’은 궁중음식이 아닌 우리가 흔히 먹는 일상식을 외국인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느끼는 야릇한 즐거움이 흥행의 동력이었다. 변화는 과거가 열등감에 기반을 둔 감정이었다면, 최근엔 우월감마저 엿보인다는 점이다. 김수영 문화평론가는 “두 가지 감정 모두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두 가지 감정이 다른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외사친’에 대한 선망
‘헬조선’이라는 자조가 휩쓸고 간 자리에 ‘국뽕’이 등장한 것은 필연적 귀결일지도 모른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들 프로그램들도 균형에 신중하다는 것이다. 노골적 국수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대중적 정서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교류’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들도 많다. 대부분 외국인이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또 하나의 트렌드인 ‘여행’을 결합시킨 형태를 갖추고 있다. ‘여행’이 ‘문화예술 관람’을 앞서는 최대관심사인 시대에서 외국인 예능이 가진 ‘여행’이라는 코드는 큰 매력 중 하나다.
프로그램이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때로 한국인을 여행 온 외국인을 통해 ‘여행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히트작인 ‘독일편’은 한국문화에 대한 단순 찬양보다는 진지한 고찰로 여행과 타문화에 대한 성숙한 자세로 눈길을 끌었다. 이후 쇼핑이나 한류문화 위주의 외국인 여행에서 시청자 반응이 별로 좋지 못했던 것을 보면, 단순히 노골적 ‘국뽕’이 흥행 코드가 아님을 짐작케 한다.
‘비정상회담’의 스핀오프였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가 외국인 친구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다면, JTBC ‘나의 외사친’은 낯선 곳에서 외국인 친구를 만드는 이야기다. ‘여사친’ ‘남사친’이 순수한 친구로서의 이성 관계에 대한 욕구를 담은 단어라면, ‘외사친’은 외국인 친구에 대한 현대인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지구 어디선가 살고 잇는 동갑내기 친구의 다른 삶을 들여다보는 이 프로그램은 ‘핫 스팟’ 돌아보기라는 관광에서 문화와 삶을 깊숙이 체험하는 진보한 여행이자, 외국에 대한 보다 성숙한 시각을 담고 있다.
‘외사친’을 만들고 싶다는 교류 욕구는 외국인을 상대로 한 사업인 외식업 ‘윤식당’ 숙박업 ‘서울메이트’로 확대됐다. 외국인과 교류하는 사업을 하고 이들과 소통하는 직업에 대한 로망을 연예인을 통해 가상 실현시키고 대리만족의 쾌감을 주는 것이 이들 프로그램들의 포인트다.
문화평론가 김씨는 “외국인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프로그램들 이상으로, 외국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거나 잘 알지 못하는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다각화된 외국인 프로그램들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