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원성훈 기자]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가 '아그레망'까지 받고도 미국은 임명 철회하자, 정치권에는 격랑(激浪)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는 1일 정례 브리핑에서 "美 측은 한국 측과의 적절한 협의 이전에 관련 상황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서 우리 측에 양해를 구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당은 일제히 문재인 정부에 십자포화를 쏟아부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백미란 상근 부대변인이 낸 논평에서 "미국이 던져버린 주한 미국대사 내정철회로 코피(Bloody nose) 터진 문재인 정권"이라며 "한국 정부는 미국이 보내 온 아그레망(임명동의)에 승인까지 해줬는데 (이것이) 철회되는 과정에서는 대한민국 정부는 완전히 배제됐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그는 "한국이 배제되는 코리아 낫씽(Korea nothing)의 외교력이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미국은 한국과 상의도 없이 북한을 공격하고, 국민들은 한반도가 화염에 휩싸이게 된 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그레망'(agrément)이란, 새로운 대사나 공사 등 외교사절을 파견할 때 상대국에게 얻는 사전 동의를 뜻하는 외교 용어다. 일반적으로, 아그레망을 받고도 아그레망을 요청한 나라에서 임명이 철회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빅터 차'는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교수이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를 하고있는 인물로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바로 이 같은 점을 꼬집었다.
그는 빅터 차에 대해 거론하며 "이런 매파로 알려진 인물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했다면, 그 의미에 대해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우리 대한민국의 목표는 전쟁을 방지하고, 북핵을 제거하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특히 "그 수단은 최고의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비핵화의 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어야 하고 그리고 있을지 모르는 도발에 대해서 강력한 군사력 억제력과 방어망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 두 가지 모두 한미동맹과 한미 간의 신뢰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일갈했다.
계속해서 그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는 와중에 과연 한미동맹은 문제없이 관리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한반도의 전쟁은 북한이 시작할 수도 있고 미국이 시작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는 현실인식을 내비쳤다.
보수정당을 표방하는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른바 '코리아 패싱(한국 배제)'를 염려하면서 미국정부가 우리 정부와 상의없이 독자적 대북공격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당도 '빅터 차'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정당들과 같은 맥락의 인식을 보이고 있어서 주목된다.
국민의당의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정책회의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 절차까지 마친 빅터 차 주한미국대사 지명자를 임명 철회한 것은 외교적 무례이며, 또한 한미동맹에 이상이 생겼다는 징후"라고 전제한 후,"그만큼 미국정부가 북한 선제타격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반증이어서 평창올림픽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이동섭 당무부대표도 이날 "빅터 차 교수가 미국 對北에‘코피전략(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에 대응한 북한의 관련 시설 정밀타격 전략)을 펼치는 것은 미국인에게도 위험하고, 대북선제공격은 동북아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해서 백악관과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그는 "이것은 분명한 코리아 패싱"이라며 "상황이 이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국민의당도 미국의 외교적 결례를 꼬집으면서도 평창올림픽 이후의 미국에 의한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이에 더해 바른정당은 이날 권성주 대변인이 "잃어버린 외교부를 찾습니다"라는 제하의 논평을 통해 "중요한 건 (아그레망) 철회 배경으로 언급되는 미국의 대북정책 강도와 북한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우리 정부의 심각한 외교 공백"이라며 "주한 미국 대사의 최장기간 공석 상태 속에 벌어진 내정자 철회였음에도 우리 외교라인은 사전파악도 대처도 없이 수동적이었다"고 질타했다.
아울러 그는 "정말 몰랐다면 미국의 코리아 '패싱'을 넘는 코리아 '낫싱'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고, 알고도 방관했다면 외교당국의 근무태만"이라고 힐난했다.
그러면서 "어느 쪽이든 현재 외교라인의 전면 교체는 불가피하다"며 "언론보도에 국민과 함께 당황하는 외교부라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청와대는 미국 언론의 보도 이후에야 “아그레망을 준 이후에도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이상기류를 느꼈지만 내정 철회는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우리 외교안보 라인이 언론보다 정보수집능력이 뒤처진다는 고백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언급이어서 정치권의 비판과 우려를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외교라인의 전면 교체는 불가피하다"는 바른정당의 논평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적잖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