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동훈 기자]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소속 최조웅 의원(더불어민주당ㆍ송파병)은 지역민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의원이다. 몇 번을 봐도 소신이 바뀌지 않는, 살가운 풍광이 마음 속에 오랜 여운을 남기는 송파인이다.
최조웅 의원의 하루는 건강관리로 시작된다. 된장찌개 생선찌개 등 밥 잘 먹고, 하루 달리기 40분을 소화한다. 서울 송파구에 소재한 지역사무실을 끊임없이 찾는 시민들의 상담에 응하기 위해서는 체력관리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루 24시간 빠듯한 일상이지만, 지역구민의 일과 사회봉사라면 진심을 다한다. 아니 수없이 만난 지지자들부터 사회 봉사를 통해 만난 이웃까지,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성심을 다해왔다는 최 의원. 정치적 롤모델을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김성순 전 송파구청장을 꼽았다.
김 전 구청장은 행정가 출신 정치인으로 초대 송파구청장을 역임한 후 송파구청장 4선, 중구청장 등을 지냈다. 1990년대만 해도 송파구는 지금과 달리 대표적인 수해(水害) 지역이었다. 수도펌프 시설 등을 과감히 확충해 이를 해결한 이가 바로 김 전 구청장이다.
이런 최 의원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나침반은 ‘변화는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는 신념이다.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능히 변화시킬 수 있다는 유천하지성(唯天下至誠)위능화(爲能化)라는 중용의 구절을 이정표 삼아 힘차게 나아간다.
“저는 세상의 부조리를 내 손으로 한번 바꾸고 싶어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시민이 불편한 것, 가려운 것을 하나하나 바꾸고 개선하려면 제 자신이 먼저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성을 다해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IMF에 교통사고, 가족의 소중함
그의 꿈은 본래 정치인이 아니었다. 최 의원은 1963년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의 한 농가에서 3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마을은 남원 시내에서도 한시간씩 차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오지마을이었다.
교육열이 높았던 부모님 덕에 농사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대학을 마쳤다. 이후 그가 선택한 진로는 위탁급식 사업이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다. 그러나 희망으로 넘쳐나던 시기에 불행은 찾아왔다. 1998년 IMF가 터진 것이다. 사업이 망하면서 생활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런 찰나에 바닥보다 더 깊은 좌절이 찾아왔다. 설 하루 전날 고향에 내려가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이 사고로 최 의원은 다리를 못 쓸 정도로 다쳤다. 1년 정도 병원에서 지내며,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는데, 다리를 다쳐 막노동도 할 수 없으니 생계 걱정에 막막했죠.”
위기에 강했던 것은 여자이자 어머니였다. 그의 아내는 주저앉기보다는 이를 악물고 식당을 열었다. 최 의원은 그때 일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는 듯 했다.
“아내는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면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도 저에게 큰 힘이 되었죠. 가족들은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으리란 응원을 끊임없이 보냈습니다.”
결국 최 의원은 고통스런 재활 끝에 다시 사회로의 첫 걸음을 떼게 된다.
위기속 빛난 교섭력, 교통의 섬을 바꾸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 나의 삶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나와 가족만을 위해 산 삶에 회환이 있었고, 남은 삶은 사회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기여를 해야겠다는 다짐과 각오를 했습니다.”
그는 아내의 식당 일을 돕는 틈틈이 주변 사람들의 어렵고 힘든 사정을 듣고 돕고 나눴다. 이와 같은 봉사활동 속에 사회의 부조리도 깨닫게 된다.
“좀 더 체계적이면서 구체적으로 지역주민을 돕고 싶다”는 열정을 품고 그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지역사무실을 찾아가 당원으로 가입했다.
노력과 정성은 통한다고 했던가.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지역민들은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그 결과 구의원을 거쳐 8대·9대 시의원까지 오게 됐다.
지역민과의 약속도 최선을 다해 이행했다. 위례신도시를 포함한 그의 지역구는 남한산성에 둘러 쌓여있어 마치 교통의 섬과도 같았다. 당시 지역민들의 현안은 원활한 교통소통이었다.
게다가 지역 주둔 군부대의 이전이 지연되면서 기존 도심과 신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 구성은 안개 속처럼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런 때 최 의원의 정치력과 더불어 교섭 능력이 빛났다. 먼저 마천동과 오륜동을 잇는 위례성길의 예산문제를 조속히 해결했고, 여러 기관과 협의해 부대 이전 전 임시도로를 개통해 위례신도시와 거여·마천동이 연결되도록 했다.
이는 위례신도시가 구도심 지역과 연계돼 교육, 복지, 교통,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도록 일조했다.
또한 도시의 미관을 해치던 장지지하차도 문제를 정리해, 이곳을 기점으로 둘로 나뉘었던 지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도 성공했다.
안전시설 확충 등 발로 뛴 의정 활동
안전어린이관련 시설 확충 예산안 확보, 송파체육문화회관의 시설개보수, 인조잔디구장 시설개보수, 지역체육동호회 활성화, 학교시설 확충예산의 대폭증대, 골목길 가꾸기 사업, 가로수와 가로등 교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시설현대화사업, 자전거 주차장 확대, 성내천물놀이장 안전시설 확충, 등산로 정비 등 지역을 위해 이룩한 크고 작은 일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지만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도 시무룩해졌다. 최 의원이 속한 환경수자원위원회는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 건강한 생태계 유지 등을 선도하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 많은 사업을 추진했으나 대기질의 개선은 서울시와 정부의 노력만이 아닌, 인접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사실만을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다.
끝으로 최 의원에게 향후 계획을 물었다.
“저는 좀 더 살기 좋은 우리 지역을 위해 항상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위는 매번 바뀌고 있습니다. 구의원, 시의원, 서울시의회 행정자치위원장 등으로요. 지역 주민들께서 여러 직함으로 불러주신 이유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장기적으로 지역 발전에 기여하라는 뜻 인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뜻에 따를 것입니다.”
마음가짐에 비룡폭포를 실은 듯한 시원함, 최 의원의 신념 어린 발언에서 대한민국 정치계의 밝은 미래를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