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화순 기자] 한복디자이너이자 배우 전지현의 시외조모인 이영희씨가 17일 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82세.
1993년 국내 한복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쇼)에서 한복을 선보인 그는, 우리 한복이 세계 패션무대에서 ‘한복(Hanbok)’으로 불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다.
당시만 해도 파리 현지에서는 한복보다 먼저 서구에 알려진 기모노를 기본으로 한복을 평가했다. 파리 현지에 취재갔던 기자가 본 현지 언론의 문구가 아직 생생하다. 한복을 '기모노 코레'(한국 기모노), 한복의 아름다운 선을 ‘기모노 라인’이라 썼다. 한국인 일행 모두 분노했는데, 고인 역시 분노를 넘어 통곡했다고 했다.
이런 당시 상황은 이영희씨의 도전 의지를 더욱 굳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기자와 만났던 고인은 “한복의 아름다움을 세계무대에서 선보이고, 또 세계화도 이룰 것”을 다짐했었다.
1994년 파리 무대에 다시 섰던 그는 이번엔 저고리 없이 어깨를 고스란히 드러낸 치마만 이용한 드레스형 한복을 파격적으로 선보였다. 한국인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파리에서 ‘바람의 옷’(르몽드지)이란 평가와 함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바람을 옷으로 담아낸 듯 자유와 기품을 한데 모은 옷’이란 평가였다.
당시 고인은 “전통복식학자 석주선 박사로부터 ‘옷은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고 용기를 내어 디자인한 옷”이라 말했다.
불혹의 나이에 아이들 과외비라도 벌어볼까 하고 한복 만들기를 시작했던 고인은 2008년 구글 아티스트 캠페인에서 ‘세계 60인의 아티스트’로 선정됐다. ‘색의 마술사’로도 불렸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한복 하나로 세계적인 아티스트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평가받기까지 고인의 노력은 대단했다. 파리에서 머물지 않고 2000년 뉴욕 카네기홀 패션쇼 개최, 2004년 뉴욕 맨해튼 ‘이영희 한국 박물관’ 개장, 2005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1개국 정상들의 두루마기 제작, 2007년 워싱턴 스미소니언 역사박물관 한복(12벌) 영구 전시, 2010년 파리 오트 쿠튀르쇼 등을 숨가쁘게 이어갔다. 2015년 고인은 동대문 DDP에서 ‘이영희 전-바람, 바램’ 전시로 40년간 매진해온 ‘한복의 세계화’를 집대성해 보여주었다.
가족으로는 딸 이정우(패션디자이너), 아들 선우(미국 변호사)·용우(청담컨텐츠 이사)씨 등 3남매를 남겼다. 영화배우 전지현의 남편 최준혁씨는 외손자다. 삼성서울병원장례식장 17호, 발인 19일. 02-3410-6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