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본시장이 전례 없는 거대한 혼돈의 도가니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지금 우리 증시가 마주한 현실은 단순한 조정을 넘어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 신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코스피 지수의 변동성은 60%를 가볍게 웃돌며, 변동성이 크기로 시쳇말로 악명 높은 가상자산 비트코인마저 추월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이는 전통적인 자산 시장의 위험 지표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로, 인접한 일본 닛케이 지수 변동성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충격적인 수준이다. 이처럼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급등락 속에 한국거래소는 올해 들어 수십 번의 매도·매수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하며 불안한 숨을 몰아쉬고 있으나, 시장의 브레이크는 번번이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블룸버그를 비롯한 유수의 외신들은 한국 자본시장의 이러한 기형적 단면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랜 기간 주식시장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한국인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에 집중된 인공지능(AI) 열풍이 투심을 극단적으로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혁신 산업에 대한 관심이 건전한 투자가 아닌 무분별한 투기로 변질된 것이 본질적인 문제다. 문제는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 대다수가 수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고 있는가.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스타벅스의 '탱크 해프닝'과 배재고등학교 야구부의 '탱크데이' 구호 사건을 보며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스타벅스가 탱크를 활용한 마케팅을 진행했을 때, 그 누가 이것이 우리 현대사의 아픈 기억과 연결될 것이라 상상했겠는가. 우리에게 탱크는 단순히 철갑을 두른 기계가 아니다. 6·25 전쟁 당시 남침의 선봉으로 삼천리 강토를 유린했던 공포의 상징이었으며, 동두천에서 탱크에 의해 희생된 효순·미선 양의 비극,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짓밟았던 고통의 실체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와중에 이병태 전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의 행보는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 논쟁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그는 배재고 사태에 대한 징계 논의가 불거지자,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영국 사상가 토마스 모어를 소환하며, 자신의 분명한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자신의 신앙과 도덕적 양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끝까지 헨리 8세의 권력에 동조하지 않았던 토마스 모어처럼, 나 또한 신념을 지키기 위한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결
지구촌의 뜨거운 축제, 월드컵이 열리면 경기장의 함성만큼이나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는 것이 글로벌 기업들의 광고 향연이다. 맥도날드와 코카콜라, 도미노 피자 등등...이들은 화려한 신기술이나 파격적인 변신을 자랑하지 않는다. 반세기 전과 다름없는 클래식한 맛을 월드컵이라는 무대에 반복적으로 각인시킬 뿐이다.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스타트업이 판치는 시대, 이 ‘음식료 제국’들의 일관성은 경이로운 생존의 기록이자 신뢰의 증거다.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이들을 찾는 이유는 그 맛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서가 아니다. 전 세계 어디서든 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정확히 구현될 것이라는 ‘변함없음’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빅맥 세트 하나를 주문하는 행위는 단순한 끼니 해결을 넘어, 자신이 신뢰하는 가치를 보장받는 대가다. 이 지점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 정치는 국민에게 이토록 견고한 ‘맛의 신뢰’를 주지 못하는가. 정치의 ‘맛’은 왜 보존되지 못할까? 한국 정치에서 여야 교체는 자연스러운 민주주의의 생리다. 그러나 뼈아픈 것은 정당의 정강과 정책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엿가락처럼 휘어지는 현실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구호는 실종되고, 상대의 붕괴만을 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