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들지 않은 전쟁영웅

2017.02.21 10:57:41

무기 없이 75명의 생명을 구한 기적의 전쟁 실화 ‘핵소 고지’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2차 세계대전 치열했던 핵소 고지 전투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총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사람들을 구한 데스몬드 도스의 전쟁 실화. 멜 깁슨 감독 작품으로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 제74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3개 부문노미네이트 됐다. 제73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2016 전미 비평가 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 TOP 10’에 이름을 올렸고,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다.


비폭력주의자의 참전, 실화의 무게


비폭력주의자인 데스몬드 도스는 전쟁으로부터 조국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지 않아도 되는 의무병으로 육군에 자진 입대한다. 총을 들 수 없다는 이유로 필수 훈련 중 하나인 총기훈련마저 거부한 데스몬드 도스는 동료 병사들과 군 전체의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된다. 결국 군사재판까지 받게 되지만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데스몬드 도스에게 군 상부는 오키나와 전투에 총기 없이 의무병으로 참전할 것을 허락한다.


핵소 고지 위에서의 격렬한 총격전 속에서 데스몬드 도스는 홀로 남아 부상당한 동료들의 목숨을 구하고, 후퇴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전장을 헤치고 다닌다. 이 전투에서 데스몬드 도스는 팔이 골절되고 다리에 수류탄 파편이 박히는 등의 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약 100여명의 부상자 중 75명의 생명을 구해낸다.


실존 인물인 데스몬드 도스는 총을 들지 않은 군인 최초로 미국에서 군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자 미군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특히 ‘명예의 훈장’은 전투 중에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눈에 띄는 용맹을 보여 준 군인이라 판단될 때 수여하는 훈장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데스몬드 도스의 전쟁 실화는 그 자체가 드라마틱한 요소들을 많이 갖고 있다. 비폭력주의자의 참전이란 아이러니는 전쟁과 휴머니즘에 대한 성찰을 제시한다. 인물 자체가 반전의 코드로 전쟁의 한 복판에 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우리에게는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경험이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웅담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반대해 영상화되지 못했다가, 실존인물이 사망을 불과 몇 년 남겨놓고 승인해 사망 이후인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영화화됐다.


참혹함이란 전쟁의 본질을 살린 전투 장면


‘아포칼립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브레이브 하트’ 등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멜 깁슨은 이번 영화에서도 특유의 보수적인 전개를 고수한다. 보편적 영웅담에는 무난한 선택이자, 전형적 멜 깁슨의 문법이다.


극 초반 가족 간의 관계와 아버지와의 갈등,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 등의 드라마가 누적되면서 후반부에 주인공의 신념과 용기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장치가 된다. 하지만, 허구적 성격이 강한 전반부의 드라마가 다소 작위적이고 진부한 느낌은 있다. 갈등 또한 지나치게 표피적이라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웅담을 거부했던 실존인물이 우려한 지점을 피해가지 못한 느낌이 든다.


멜 깁슨 감독은 데스몬드 도스의 내면 풍경을 전개하는 동시에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치열했던 핵소 고지 전투를 리얼하면서도 서사적으로 담아내는데 힘을 실었다. 영화의 전쟁 장면이 돋보이는 점은 참혹함을 강조하는 현실감이다. 특수효과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면서도 CG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 선택이 전투의 사실감을 살린다. 전쟁의 잔혹성이라는 본질을 잘 표현한 것이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핵소 고지의 전투신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인공 데스몬드 도스 역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의 연기가 돋보인다. 데스몬드 도스의 아내이자 그의 용기를 북돋아주는 도로시 역은 테레사 팔머가 맡았다. 글로버 대위 역을 맡은 샘 워싱턴은 데스몬드 도스와는 또 다른 신념을 지닌 군인을 연기했다. 주인공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 톰 도스 역에 연기파 배우 휴고 위빙을 캐스팅했다.


각본가 로버트 쉔컨과 앤드류 나이트는 실존인물의 일대기와 영화적 허구를 적절히 섞어 보편적 서사를 구성해냈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의 미술 감독 베리 로빈슨이 데스몬드 도스의 고향과 군대의 막사, 핵소 고지의 대조적인 3개의 공간을 만들었고, 영화 ‘프리실라’로 미국 아카데미와 영국 아카데미를 휩쓴 의상 디자이너 리지 가디너가 1940년대 의상은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복까지 재현해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레전드 오브 타잔’ ‘호텔 르완다’ ‘왓 어 걸 원츠’의 작곡가 루퍼트 그렉슨 윌리엄스가 OST를 담당했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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