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는 남북국의 역사다

2009.09.15 10:09:09

우리는 오랫동안 통일신라와 발해시대만을 남북국의 시대로 인식해왔다. 고려와 조선시대는 한반도 내의 왕조 정통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북방의 역사를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오랑캐의 나라로 밀어내고 조선시대에는 특히 소중화주의가 풍미하면서 야만적인 오랑캐의 땅으로 매장했다. 그 결과 북방의 역사는 당연히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버렸다. 금나라가 그렇고, 청나라가 그렇다.
여진에서 비롯된 청이 중원을 장학하여 패권을 잡자, 조선의 지배세력들은 존명사대(尊明事大)로 저항하며 만동묘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사림(士林)의 영수에 의해 일어났다. 그 이후에도 조선조의 사대주의에 의해 청은 대국으로서 무조건 숭배해야 할 중화의 나라였을 따름이다.
청나라의 시조가 우리와 같은 씨족이며 형제였다는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병자호란 당시에 후금이 조선에 대해 형제의 관계를 강조했던 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의식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주자학에 물들고 사대주의에 빠져있던 조선왕조와 서인세력들은 동북아 정세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오랑캐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대명의리에 따른 대가는 참혹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기보다 허장성세의 북벌론을 내세워 자신들의 무능과 비열한 노예근성을 덮어갔다. 청이 대륙의 주인으로 등극한 이후에도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의 유교주의적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았다.
북학파의 일원이었던 유득공 등에 의해 고구려 멸망 이후 새로 등장한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해 남북조 시대라는 문제의식을 가졌으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그저 막연히 우리 조상들이 뛰놀던 만주벌판이라는 아주 추상적인, 또 원시적인 기억만이 민초들 사이에 구전되고 조상의 땅을 잃어버린 채 한반도에 갇혀버린 현실을 탄식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발해가 멸망하고 얼마 뒤 다시 등장한 금나라는 분명 그들 스스로 선언하듯 신라의 후예들에 의해 건국된 우리의 또다른 역사였다. 지금 금나라의 역사를 전공하는 이조차 거의 없는 한심한 실정이지만, 금의 건국과정과 그 이후의 과정을 보면, 금나라는 분명 우리의 후예들이 세운 나라이고, 금의 후신인 청나라의 가계도 김씨(金)라는 점을 뚜렷이 하고 있다.
현재 만주족의 핵심 성씨가 김씨라는 얘기다. 역사적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이 금나라 역사가 이제까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중국의 역사로만 인식해왔다. 길지 않았던 금나라의 역사탓도 있고, 곧이어 등장한 몽골제국의 화려한 기록 때문에 금나라의 역사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면도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금나라의 역사와 고려와의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후금과 청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후금은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지만, 여진의 만주족이 세운 나라가 후금이고 그 나라가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한 것이므로 청의 역사는 고려와 조선의 또 다른 역사기록이 아닐 수 없다. 단선적인 왕조사의 시각으로 그들 말대로 형제의 역사이며, 우리 자신들의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왕조사 중심의 기존 역사시술을 그냥 답습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겨레가 나아갈 방향과 내일을 위해서 잃어버린 금나라와 청의 역사를 정리한다면 한민족의 역사는 더욱 풍부하고 다양해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역사기술의 변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금나라와 청나라 역사연구의 실증적 자료들이 더 쌓여야 하고, 이를 체계화하는 숱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근 만주원류고가 국내에 소개되고, 금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현실을 반영해 더 많은 분들의 참여와 시도들이 계속되길 기대한다.

김부삼 kbs6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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