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밀산 항일유적기념비를 세웠나

2009.10.26 08:10:10

십리와 항일투쟁유적지 기념비가 지난 17일 북만주의 밀산시 조선족 동포부락 뒷산에 있는 소나무 숲 언덕에 세워졌다.
필자는 기념헌화를 하면서 1백년 만에 이제사 찾아온 저희를 용서하시고 높은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조국의 운명을 바꿔보고자 몸부림쳤던 선열들께 조금이나마 빚을 갚게 되었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2006년 『도산 안창호 평전』을 쓰면서 1908년 북만주의 봉밀산 지역은 한말의 애국지사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연유를 통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항일비밀결사체였던 신민회의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이 이곳에 독립전쟁의 근거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거나 근왕파에 속했던 유림세력도 이곳을 주목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도산은 미주국민회를 통해 모금작업을 시작하여 당시 거금인 5만 달러로 약 3백만평의 토지를 매입해 5백여 가구 2천명의 마을을 만들고 동명학교를 세웠다. 이런 사실들을 1년 전인 2008년 밀산시를 직접 방문하여 김정득 전 농업국장의 증언을 통해 재확인했다.
그래서 필자는 밀산시의 조선족 부시장인 맹고군님과 농업국장을 지낸 김정득 님을 통해 밀산시 당국의 공식결정을 요청하였고, 시당국은 논의를 거쳐 기념비 건립사업을 승인하였다. 이에 따라 필자는 류청로 부경대, 강용찬 목원대, 류진춘 경북대 교수와 도산기념사업회 안병소 사무국장, 김선주 무지개복지법인 이사장, 임현재 대전 동인연합의원 병원장, 서인규 하나은행 서교지점장, 이관표 엄앤드이종합건축사 대표, 홍연표, 홍성종 중대의대교수, 정범규 선생 등에게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모금사업을 제안하여 천여만원을 모금하였다.
그동안 밀산시 당국은 기념비 건립장소 선정과 환경조성 작업을 진행하여 십리와 뒷동산 소나무 숲 안에 기념비 건립장소를 확정하고 우리가 모금한 돈으로 진입로와 기념비 둘레 조성사업을 완료했다. 그리고 기초부분은 산동성에서 대리석을 가져오고 기념비는 사천성에서 백옥돌을 높이 2미터, 너비 1미터로 깎아 한글비문과 중국어비문을 함께 새겨넣었다.
비문내용은 중국시 당국의 공식사업임을 감안하여 신민회 지도자 안창호 선생 등이 밀산 십리와 항일독립운동근거지 건설작업을 시작, 미주 대한인국민회가 5만불을 모금, 이강, 김성무, 정재관 선생 등을 파견, 토지를 매입하고 500여가구 건립 등의 사실을 분명히 하되 용어 등은 현지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몇 차례 초안을 주고받은 끝에 어투 등에서 아쉬운 점은 있지만, 중국측 의견을 존중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하여 밀산시 지역에 최초의 한글비문이자 항일유적기념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십리와 항일투쟁유적지 기념비는 첫째 100년 만에 조국의 광복을 위해 천리먼길인 북만주 밀산지역에서 고군분투했던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후손들이 추모하고 영원히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는 국외의 항일운동이 3.1운동 전후 정치적으로 상해를 중심으로 진행돼 많은 국민들이 상해 중심의 항일운동인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일제와 목숨 걸고 싸웠던 많은 독립운동이 북만주 밀산 지역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조차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져 갔다. 직접 목숨을 던졌던 선열들의 치열한 실천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항일독립운동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의 한반도 주변 정세가 한말의 정세와 유사한 측면이 많아지고 있는데,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성공과 실패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내일이 없다는 역사의 철칙에 비춰볼 때 고군분투한 선열들의 성공과 실패를 교훈삼아 오늘의 우리에게 자성의 거울로 삼자는 것이다.
넷째, 일제시대 중국의 항일인사들과 함께 싸웠던 역사를 소중히 하고 이를 발전시켜간다면 한중간의 우애친선도 돈독해질 것이다.
이제 항일투쟁유적지 기념비를 십리와에 세웠지만, 이것으로 사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항일운동과정에서 북만주 밀산지역이 차지했던 독립운동사상의 위상과 역할도 좀더 학술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 동시에 밀산지역의 십리와, 한흥동, 신한촌, 홍범도 부대의 둔전지, 한때 3,500명에 달했던 대한독립군단의 근거지와 서일, 홍범도, 김좌진, 이범석, 이청천 등 이곳에서 활동했던 항일운동을 기념하는 기념관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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