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정리, 갈 길 멀다

2009.11.15 18:11:11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다. 그게 왜 지금 필요하냐는 얘기를 태연스럽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제 와서 과거의 역사, 그것도 식민지배의 굴욕과 고통을 겪은 시대를 민간인들이 나서서 한 분야를 정리했다는 것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친일명단에 게재된 인물의 타당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국이 광복된 지 60주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에 증거의 멸실, 증인과 당사자 사망 등의 사정이 생겼고, 조상의 치욕스런 과거를 그냥 시인할 후손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 정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와 내일을 살아야 할 후손들, 그리고 주변국가와의 올바른 정리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다 지난 일을 이제 와서 들추어내어 무엇 하느냐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과거의 역사를 그렇게 흐리멍텅하게 인식하게 되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마친 숱한 선열들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뿐 아니라 망국노가 되어 죽음과 고통에 내몰렸던 수난의 역사를 그냥 그렇고 그런 역사로 우리 스스로 당연시하게 된다. 그래 가지고서는 당면한 현실의 문제에 엄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고, 겨레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과거의 잘잘못을 분명히 따지고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는 민족만이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치욕의 역사를 과거로 끝내려면 두 눈을 부릅뜨고 냉정하게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 중, 일의 관계를 보더라도 과거사 정리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사회의 지도층이 군국 일본이 저지른 숱한 범죄행위에 대해 아무런 반성 없이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인물들이라고 신사참배를 일삼게 된 것은 한국의 잘못이 크다. 피해자인 한국에서조차 과거사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 판에 가해자인 일본에게 과거청산을 제대로 요구할 수 없었다. 일본의 침략행위를 비판하고 군사대국화를 반대하려면 침략행위에 앞장선 자들을 색출하고 그 책임을 묻는 작업이 선행돼야 일본사회도 그 책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이스라엘이 유태인 학살자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체포해 심판하고 있는 사실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일부 언론과 단체들이 과거사 정리는 외면하면서 흠집 내기에 열중하는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보수일수록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태도를 더 중시하고, 따지는 법인데, 한국의 보수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 때문인지 과거사에는 눈을 감고 망각의 늪에 빠지길 기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탁류가 아무리 도도하게 흘러간다고 해도 역사적 진실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며, 의롭고 진실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탄생되어 역사를 기록해간다. 이번 친일인명사전 발간으로 그동안 우리를 갑갑하게 해왔던 미완의 숙제가 하나 해결된 셈이다. 그러나 앞으로 해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독립운동사료와 유적,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조사작업도 계속돼야 하며 일제경찰과 헌병, 독립운동단체에 침투했던 밀정조직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고, 독립운동에 대한 종합적인 정리와 평가도 있어야 한다. 만약 지금 시기에 이런 작업을 시급히 추진하지 않으면 자료멸실과 증인 사망 등으로 영구히 진실이 묻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동안 진행돼온 해외독립운동 자료와 유적 발굴사업이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올해로 중국지역의 발굴조사사업이 끝나게 되지만, 각 항일운동세력들이 전개했던 다양한 항일운동 내용들을 온전하게 발굴하지 못했다. 중국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한국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었다. 정부당국이 나서서 공식적으로 중국정부에 한-중이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한 기록뿐 아니라 독자적인 항일운동 기록과 자료도 협조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특히 중국 일부 지역에서 재중동포들이 성금을 모아 건립한 항일추모비 등이 뽑혀지는 사건 등이 일어나고 있으므로, 재발방지도 당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징용피해자에 대한 조사와 보상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신청자의 절반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서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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