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안보정책 '힘에 의한 평화'...대북정책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는 원칙'

2023.05.02 09:30:56

보편적 가치 기반한 남북관계 정상화 추구
'워싱턴 선언'으로 美 확장억제 공약 구체화
"억제·단념에도 위기관리 위해 대화 노력해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윤석열 정부의 안보정책 기조는 북핵 위협에 압도적으로 대응하는 '힘에 의한 평화'이다. 또 대북정책 기조는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는 원칙'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화를 통한 평화를 추구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압도적 대응을 통한 평화로 전환한 것이다. 또 문 정부에서 이룬 남북합의 정신은 존중하되 북한의 불합리한 태도나 잘못된 관행은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지난달 초 발간한 통일백서는 첫 장에서부터 '현재의 경색된 남북관계의 근본 원인이 북한의 핵 위협에 있다'고 지적하며 자유·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남북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백서는 "북한은 만성적 경제난 속에서도 핵·미사일 위협과 도발을 지속하며 한반도 안보 불안을 가중시켰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였던 2022년 통일 백서엔 "북한의 도발"이란 표현은 없었다.

 

전임 정부 때와는 달리 북한 정권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사실상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것도 새 전환이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한미 간 확장억제를 강화하며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완전히 실패했다"면서 "말로 외치는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대북 억제력 확보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와 6·25전쟁 종전 선언을 강조한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이 김정은 정권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었다는 문제 의식이 깔려 있다.

 

남한을 겨냥한 북한의 핵 무기 개발은 이제 실존적 위협이 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핵무기를 남한에 선제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을 공언하고, 이를 법제화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수중 핵무기 '해일'과 전술핵탄두 '화산-31', 핵무기 종합관리체계 '핵 방아쇠'를 연달아 공개하며 대남 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북한의 핵 공격 의사를 저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미국의 핵을 포함한 모든 전력을 동원하는 확장억제에 대한 담보를 강화하는 전략을 택했다. 확장억제는 동맹국이 핵 공격을 받으면 미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동일한 전력 수준으로 보복 응징 타격을 가한다는 개념이다.

 

핵 위협에 맞대응할 가장 강력한 카드는 핵 보유지만, 비핵국으로서 한국의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면 현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취할 방안은 한미간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한편, 우리 자체의 비핵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은 북핵 위협 고도화에 맞서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보다 구체화하고 그 실행 과정에서 한국의 관여도를 높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워싱턴 선언'에는 핵협의그룹(NCG)의 신설과 전략핵잠수함(SSBN) 등 미 전략자산의 정례적인 한반도 전개 확대, 핵 위기 상황에 대비한 도상 시뮬레이션 등 미국의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보다 구체화한 내용들이 담겼다.

 

특히 새롭게 창설된 NCG는 향후 우리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지만 미국의 한반도 관련 핵 대응 의사결정 과정에 한국의 관여도를 늘리고 한미 간 지속적인 소통을 이어갈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은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SSBN을 포함한 전략 자산을 한국에 더 자주 전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해 핵추진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등의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해왔는데, 여기에 전략핵잠수함을 추가로 포함하는 것이다.

 

SSBN은 전략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함께 미국의 '핵 3축'으로 꼽힌다. 다른 전략자산과 달리 은밀하게 이동해 정밀한 타격이 가능한 만큼 '억제' 측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SSBN이 북한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략자산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를 보여주고, 북한에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겠다는 메시지 발신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전임 정부는 2020년 이후 북한이 계속 거부하고 도발하는 데도 관여하는 일방적인 관계에 기댄 정책을 폈다. 국가 간의 상호성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윤석열 정부는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형태로 돌리려는 노력을 했다는 데 일단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에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부분으로 우리는 핵이 없기 때문에 미국과 협력을 할 수밖에 없다"며 "북핵 위협에 대한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명시한 '워싱턴 선언'은 이전과 비교해서 확장억제의 제도적 신뢰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고 대화가 단절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북한의 대남 정책에 따라 대북 정책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며 "현 상황에서 북한을 움직일 방법은 북한이 핵 개발로 얻을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줄이는 게 최선이다"고 진단했다.

 

이어 "올해는 북한이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3년 차이기 때문에 경제 개발을 이루지 못하면 김정은 정권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북한의 각종 도발 시 단호하게 대처하며 대북제재·압박 조치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조처도 자체적인 대북 억지 능력과 같이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다만 한반도 위기관리를 위한 실질적인 대화 복원의 노력은 부족했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북한이 핵 질주를 계속하면서 통일부의 역할이 어느새 남북관계 개선보다 대북 압박으로 좁아지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통일부는 남북대화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평화통일로 한 걸음 나가는 게 기본 업무인 부서인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며 "긴장을 감소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 제재해야 하지만 징벌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중국 등에 중재자 역할을 요청하는 등 대화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의 3가지 원칙이 억제·단념·대화인데 따로 가거나 선후 관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국면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밀고 당기기가 정교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 즉 유인책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1차적으로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 문제의 우선순위가 낮다는 문제가 있다. 북한 문제를 총괄하는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워싱턴에 상주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주재 미국 대사를 겸임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의 대북 관심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며 "미국 내 북한 문제의 관심을 높이는 설득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경의 tkho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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