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반복되는 ‘응급실 뺑뺑이’ 해결책은?

2023.06.26 17:35:28

응급실 과밀화, 컨트롤타워 부재
의료진 책임 묻지 않는 법적 장치 필요
“저수가·경증환자 중심 응급의료체계 등도 개선해야”

 

[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최근 119구급대가 환자를 구조했는데도,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2005년부터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마련해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지만,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한정된 의료진과 병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치료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수술할 의료진 부족이 가장 큰 문제


지난달 31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한 도로에서 70대 노인이 차량에 치였다. 사고 접수 10분 만에 구급대원이 그를 구조해 10분 만에 도착했지만, 인근 대형병원들이 중환자 병상 부족을 이유로 입원 불가를 통보했다. 당장 수술이 필요했던 이 남성은 100㎞ 떨어진 의정부의 한 병원으로 향하다가 결국 구급차안에서 심정지로 사망했다. 사고가 발생한 용인은 물론 수원, 안산 등 병원 11곳에서 입원을 거절당한 결과였다.


앞서 지난 3월 대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대구 북구의 4층 높이 건물에 10대 학생이 떨어져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를 다쳤다. 이 학생은 병상이나 치료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2시간여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사망했다. 이 학생은 발견 당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건은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이처럼 응급실에서 거절당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는 매년 7,000건에 달하고 있다. 그동안 보건복지부는 권역응급의료센터 확충 등 여러 방안을 내놨지만, 응급환자가 병원을 떠도는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5년 동안 119 구급대 1차 재이송 건수는 3만 1,673건, 2차 재이송 환자는 5,545명으로 응급실을 단번에 이용하지 못한 상황은 모두 3만 7,218건이었다. 특히 119 구급대 사유별 재이송 현황을 살펴보면, 전문의 부재가 1만 1,684건(31.4%)으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병상 부족 5,730건(15.4%) 순이었다. 이 통계는 응급환자를 치료할 ‘전문의’가 부족해서 생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정 “중·경증 이원화 확대”


지난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응급의료체계의 가장 큰 취약점은 배후진료과 또는 최종진료과 의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수술할 의료진이 병원에 없거나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1일 응급의료 긴급대책으로 중경증 이원화, 정보관리 인력 확대, 비번 집도의 추가 수당 지급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여당이 발표한 응급의료 긴급대책에 따르면 지역별 컨트롤타워인 ‘지역응급 의료상황실’에서 환자 중증도와 병원별 가용 자원 현황을 고려해 환자 이송을 지휘, 관제하고 이를 통해 이송하는 환자는 병원에서 수용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대책의 핵심은 지역 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이송된 환자는 병상이 없을 경우 경증 환자를 빼서라도 병상 배정을 의무화하여 이를 통해 이송하는 환자는 병원에서 반드시 수용하도록 했다. 상황실이 컨트롤 타워로서 병상 등 현황을 모두 파악한 뒤 이송 거부를 막겠다는 의미이다. 


경증 환자의 상급병원 과밀화를 막기 위해 경증 환자는 구급대가 권역별 응급의료센터 이하 기관으로만 이송하고 중증 환자는 권역별 응급의료센터에 이송을 추진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정부는 구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응급실이나 권역외상센터 등에 근무하는 의료진에 대한 혜택을 강화할 예정이다. 지난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은 응급의료시설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특별수가를 지급하고, 정부 예산을 직접 지원하는 두 가지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


그 밖에 병상·의료진 현황이 담긴 종합상황판을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외상센터 등에 설치하고, 정보의 정확도를 높일 정보관리 인력도 추가로 지원할 예정이다.

 

 

의료계, ‘중증환자 우선’ 실효성 우려


이렇게 정부·여당이 중증, 경증을 분리해 환자를 받는 이원화 제도를 확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 인력과 응급 병실 수 자체가 부족한 만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 대한응급의학회 기획이사는 “전공의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응급실을 많이 커버할 수 있는 전공의들이 부족해져 각 임상과 교수들이 다 커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 특별법은 전공의 근로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을 말한다. 응급실 과밀화도 응급환자 수용 곤란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김 이사는 “1차나 2차 응급의료기관을 방문해 경증이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고 퇴원하고 중증이면 대학병원으로 보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은 모든 환자들이 다 대학병원 권역센터 응급실로 몰리고 있어 과밀화상태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응급환자가 병원을 전전하는 문제는 병상 부족도 큰 원인이다. 대형병원의 경우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환자들로 인해 응급실 병상이 부족하고 중증 응급환자를 대응해야 하는 특성상 중환자실 병상도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응급의료체계 컨트롤타워의 부재도 응급실 수용곤란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김 이사는 “응급의료 전체를 컨트롤 하는 게 서울에 중앙응급의료 상황실 하나밖에 없다”며 “응급환자를 전국의 빈 병상과 의사를 연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여서 지역별 응급의료상황실을 설치해 컨트롤 할 수 있어야 된다”고 밝혔다. 


응급의료체계가 미비한 현실 속에서 사회적 공분과 부담은 현장 의료진이 떠안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 지방병원의 응급실 관계자는 “자칫 환자를 수용했다 사망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해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열심히 진료할수록 소송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달 31일 입장문을 통해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은 의뢰한 병원의 배후 진료 능력 부족 때문”이라며 “환자를 치료할 만큼의 의료자원이 없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중증외상환자라면 최소한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수술팀이 갖춰져야 응급실에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며 이들 “선의로 행한 응급의료조차 치료 결과가 나쁠 경우 민·형사 소송을 감내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라며 “이송문의 거절에 대한 언론재판과 실제 법적 처벌까지 가시화될 때 응급의료진들의 이탈은 더욱 가속화되고 응급의료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의사들이 필수 의료 분야를 기피하는 원인으로 의료사고 책임 문제가 크다고 보고 있다. 환자 사망 위험이 큰 수술 등을 하다가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형사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하다는 뜻이며, 이 때문에 의사 단체에서는 면책 등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다.


지난 10일 의료계는 “의료진이나 중환자실 부재 등으로 최종 치료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부득이하다고 판단해 환자를 전원시키지 않고 수용·진료할 경우 의료진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1차적으로 검사나 응급 처치를 한 후 최종 진료가 불가능하면 가능한 곳으로 전원을 해야 하는데 다른 곳도 부족해 환자를 수용하지 않다 보니 전원을 할 수가 없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의료인이 소속된 의료기관의 능력으로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 의료를 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경우 전원을 결정하고 지체 없이 적절한 응급의료가 가능한 다른 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전원의무’가 명시돼 있다. 의사가 이 전원의무를 지키지 않고 진료하다가 환자가 사망하면 법적 책임을 지게 된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 3차 응급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이나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병상과 중환자실을 일정 비율 비워두고 만성화된 응급실 과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025년 의대 정원 확대, 추후 논의·구체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8일 의료현안협의체에서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의대정원 확대를 포함한 의사 인력 확충 방안에 대한 논의를 추진 합의했다. 


양측은 ▲과학적 기반에 기반한 적정 의사인력 확충방안 논의 ▲확충된 의사인력에 대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유입방안 마련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개선방안 마련에 합의했고, 의대 증원은 2025년 입시부터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형훈 복지부 의료정책관은 “의과대학 증원 논의가 의료계 내부에서 여전히 금기시돼 있고, 의협이 의료계 내부 이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의료현장에서의 의사 역할과 전문성이 대한민국 보건의료 정책의 혁신에 반영되지 못한다면, 의협이 의사의 권익 보호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직능단체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은 “의대의 정원이 늘어난다고 해도 13년 후에야 전문의가 배치된다. 그런 공백기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의대 정원 증원에만 의논하지 말고, 현재 의대생, 인턴들이 필수의료과에 지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기존 건강보험의 틀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정부, 지자체, 국회에서의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병상 확충 등 근본적인 대책 필요


응급실 과밀화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못 받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경증환자로 넘쳐나는 탓에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죽어가는 외상환자를 살리려면 제 기능을 하는 권역외상센터에 인력과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응급환자를 수용해 치료할 수 있는 인력과 병상을 확충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정이 ‘응급실 뺑뺑’이 대책을 내놨지만, 의료현장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응급의료의 실태를 모르니 대책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현실을 직시해야 정확한 원인을 찾아 분석해 적절한 대책이 나올텐데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진에게 응급환자 병상을 강제로 배정하라는 식의 책임만 지워선 해결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응급실에서는 응급 처치를 할 수 있을 뿐 수술·입원 같은 최종 치료까지 가능한 것은 아닌데 당정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또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경증 환자들을 분산시킬 수 있는 중간 단계의 의료기관들을 마련하고 권역외상센터도 제대로 운영되는 곳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저수가·경증환자 중심 응급의료체계 등도 전반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경의 tkho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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