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순의 아트&컬처]아티스트 그룹 ‘잇은’, 관객과 매력적인 ‘시각적 소통’ 펼친다

2024.08.22 21:39:33

홍정욱 김효정 협업기반 부부 시각예술 그룹
28일~9월 14일 노화랑 ‘inter-’전 열어
언어적 소통 없이 시각적 소통으로 작업
구체적 형상, 서사 배제하고 조형 관계 실험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아티스트 그룹 ‘잇은[itt-eun]’이 전시 ‘inter-’를 오는 28일부터 9월 14일까지 노화랑(대표 노세환)에서 초대기획전을 갖는다.

 

‘잇은’은 설치작가 홍정욱(49)과 평면작가 김효정(48)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시각예술 그룹으로, 그룹명 ‘잇은’은 ‘연결의 의미’인 ‘잇다’에서 출발했다. 협업하는 두 작가 사이의 연결, 공간과 작품의 연결, 작품과 관객의 연결 등 이어짐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번 전시는 ‘잇은’의 세번째 전시다.  

 

일찌감치 작품 설치를 끝낸 노화랑에서 홍정욱 작가와 함께 작품을 보았다. ‘잇은’의 작품은 여러 가지 면에서 국내에서 보기 힘든 신선함을 갖고 있다. 개념과 담론 보다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조형미를 추구한 데다가, 작업 방식 또한 독특하다.  

 

캔버스도 기존의 네모난 규격화된 틀을 벗어나 있다. 캔버스와 틀의 경계도 자유롭고, 다채로운 오브제와도 즐거운 동행도 신선하다. 김효정의 회화와 홍정욱의 입체, 설치가 작품 마다 함께 하면서 작품은 더욱 크리에이티브하게 확장되었다.    

 

김효정이 완성한 페인팅에 밸런스를 맞춘 홍정욱의 프레임 위 페인팅도 있고, 프레임을 뚫고 나가는 둥근 선형의 칼러풀한 와이어, 작은 원기둥의 구조물도 보인다. 다양한 구조의 틀을 바탕으로 점, 선, 면과 같은 도형의 기본 요소들이 교차하여 배치되고 틀 밖으로 예민하게 뻗어있기도 하다. 평면적, 입체적 요소들이 상응하며 새로운 조형미를 드러낸다.

 

조명을 받은 작품들의 그림자도 색다른 형상을 만든다. 와이어의 그림자가 사람의 옆 얼굴로 보이기도 하고, 새로운 오브제들이 공간감을 살려내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모빌은 가느다란 와이어에 매달린 오브제들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공간적, 시간적 요소를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작품의 와이어와 우드볼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특유의 섬세한 디테일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작업공간도 다른 두 작가는 사전에 작품을 위한 ‘언어적 소통’이나 ‘논의’ 없이 작업한다. 서로의 예술성을 절대적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홍정욱은 “어떠한 설명 없이 상대방이 건네는 조형물에 자신의 색을 더하거나 입체적인 요소들을 더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면서 “단 한번도 계획했던 대로 진행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잇은’은 시각예술로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 속에서 예측 불가능하지만 안정적인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한다. 국내외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2015년 노르웨이에서 두 사람이 함께 한 전시 ‘inter’부터 ‘잇은’ 프로젝트는 준비되어 왔다. 그후 ‘잇은’이 결성됐고 2022년 ‘just because(그냥)’전, 2023년 ‘OCTO-’전, ‘being’전을 진행했다.

 

함께 작업하는 과정은 어떨까. 홍정욱이 캔버스를 짜서 건네면 김효정은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 캔버스를 돌려 받으면 홍정욱은 거기에 잘 어우러지는 나무 구조물을 짜거나 아크릴판, 와이어, 우드볼 같은 오브제를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때로는 순서가 반대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작업하는 동안 서로 터치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작업을 완성해 하나의 작업을 완성시킨다.

 

홍정욱은 “전시명 ‘inter’(사이)는 그리 가깝지도, 또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감, 하지만 ‘사이 좋은 관계’ ‘사이 좋은 전시’를 은유한다”고 말한다. “진행이 잘 될 때는 서로의 작업물을 보고 곧바로 작업이 완성되기도 한다”면서 “어떨 때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달이 지나서 갑작스레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평소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간의 사이(inter)를 유지하며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을 영감 삼아 작업을 확장해 나간다.

 

‘잇은’은 작품에 대한 마침표는 작업실이 아니라 그것이 연출되는 공간이라는 신념으로 환경(situation)과 작품의 연결성을 강조한다. 전시장 벽면에 드리워지는 그림자와의 조화, 작품 간의 거리감, 작품과 관객 사이의 교감을 통해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문현정(독립 큐레이터)은 “이들의 작품은 궁극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향한다. 미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형상, 그럼에도 뻗어나가는 운동성을 토대로 표준화된 질서에서 벗어나기를 갈구하는 이미지, 이상을 향하는 그들의 예술은 근본을 탐구함으로써 유의미해진다”면서 “그렇기에 ‘잇은’의 작품은 관념적 세계를 넘어 예술을 다시 이상적인 곳으로, 그리고 질료와 물질의 즉물적 영역으로 회귀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

   

‘잇은’의 두 작가는 어쩌면 이렇게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알고보면 홍정욱과 김효정은 14년차 부부다. 홍익대학교 미대 선후배 사이로 9년간 연애한 후 결혼, 7세 아들 이든을 두었다. 그룹 ‘잇은’은 아들 이든의 탄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름도 서로 연관이 있다.

 

‘잇은’의 두 작가는 작품보다 사람이 먼저 보일까봐 굳이 ‘부부 작가 전시’라는 타이틀을 사양한다. 그리고 철저하게 “사람 보다 작품을 편견없이 보아달라”고 청한다.  

 

 

이화순 칼럼니스트(Ph.D) artvision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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