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신, 너무 힘들다”

2012.05.18 17:32:47

독자적 여성 캐릭터 창조... “임상수 감독은 진짜 페미니스트” 극찬
인터뷰/ ‘돈의 맛’의 윤여정

대한민국 여배우 역사에 남는 파격적인 캐릭터를 섭렵해온 윤여정. 임상수 감독과 또 한번 손잡고 더욱 파격적인 캐릭터로 돌아왔다. 이번 신작 ‘돈의 맛’에서 65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정사 신에 도전했다.

故 김기영 감독이 연출한 ‘화녀’로 데뷔해, ‘충녀’ ‘어미’ 등으로 충격적인 여성상을 연기했다. 이후 TV와 영화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동하여 제8회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조연상, 제10회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한바 있다. 그녀 배우 인생의 제 2막은 임상수 감독과 함께 시작됐다. 임 감독과 함께 작업한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하녀’로 그녀 안에 숨어 있던 다양한 모습을 선보여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돈의 맛’에서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재벌 백씨 집안의 표독스런 안주인 역을 맡은 그녀를 만났다.

-이번 연기변신은 어땠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베드 신이 참 힘들다. 매우 곤욕스럽다. 사람들은 자꾸 얘기하는데, 베드 신을 찍는 날은 나나 강우나 시합 나가는 선수 같다. 내가 벗었다고 하면 '백금옥'이라는 여자가 김강우가 아닌 '주영작'이라는 남자아이를 탐하는 것이다. 더 부담스러웠던 것이 김강우 씨는 너무 어린 후배이기 때문이다. 같은 또래면 서로 '이 신을 어떻게 찍을까?' 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 어른으로서 위엄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너무 의연한 척 했다. 임상수 감독은 안무가처럼 안무를 짠다. 내가 김강우 씨에게 '안경을 벗으면 아무 것도 안보여'라고 말했더니 김강우 씨가 '저도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라고 답하더라. 이러면서 베드 신을 찍는 것이다. 내가 벗은 게 아니고 '백금옥'이라는 여자가 벗은 것이다.

-NG가 많이 나지 않았나.

NG없이 가야 한다. 정말로. 근데 임상수 감독이 저에게만 애드립 대사를 줬다. 김강우 씨는 몰랐던 것이다. 내가 그 애드립 대사를 하니까 김강우 씨는 속으로 놀랐다고 하더라.

-당혹스러웠나 보다.

윤여정 : 'NG를 내야 하나, 웃어야 하나' 생각했다고 한다. 이렇게 감독님이 못된 구석이 있다.

- OK 싸인이 났을 때는 어땠나.

영화가 다 끝난 것 같았다. 그런데 찍을 신들이 많이 남아있더라.

- 임상수 감독과의 인연이 매우 깊다.

같이 작업을 많이 했다. ‘바람난 가족’때 처음 만나서 특이한 감독이라 생각했다가 그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이해하고 이제는 거의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수준이 되었다.

- 임상수 감독님과는 ‘그때 그 사람들’, ‘하녀’에 이어서 오늘의 ‘돈의 맛’까지 계속 작업을 해왔‘다.

‘바람난 가족’이 내 생각에는 시나리오상으로 생각했던 것 보다 영화를 훨씬 잘 만들었다. 나는 임상수 감독이 진짜 페미니스트이고 우리나라에서 진일보한 여성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문소리 씨가 맡았던 역할과 내가 맡았던 엄마 역할은 연속극이나 영화에 별로 없다. 엄마 캐릭터는 그만의 탈이 있다. 그것에서 못 벗어난다. 나중에 임상수 감독에게 이 말을 했더니 맞다고 했다. 그때 '임상수 감독이 바라는 '엄마의 상'이 있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많이 앞서가는 캐릭터다. 그의 철학을 높이 사기 시작해서 임상수 감독이 단역을 부탁해도 출연했다.

-부자의 진짜 모습을 그리기 위해 어떤 특징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부자라고 해서 우리와 다르진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부자가 아니라서 모르지만, 부자도 화날 때 화나고, 싫을 때 싫을 것이다. 부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돈일 것이다. 그 돈 때문에 부자가 됐고, 돈 때문에 '백금옥' 역할도 만들어졌을 것이다. 부자가 우리와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다 가졌다면, 사사로운 것이 더 갖고 싶지, 다 갖고 있다면 뭐가 더 갖고 싶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부자라고 해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부자라면'이란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두 작품으로 칸에 가게 됐는데, 소감이 어떤지, 두 작품 중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고 싶은지,

배우들은 예전에 했던 역할과는 다른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다. 다음에 똑같은 역할이 주어지면 안하고 있다. '백금옥' 역할 제의가 됐을 때 기꺼이 도전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한 도전이다. 나는 임상수 감독과 같은 감독들을 죽기 전에 만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칸을 안 가보고 싶은 배우가 어디 있겠나. 물론 칸 영화제는 배우보단 감독의 영화제이지만, 내 노후가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계획한 바에 의해서 '두 상수'를 만난 것은 아니나 '두 상수'에게 보답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이 '무료로 출연하겠다'이다. 다음 번에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정춘옥 kbs6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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