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3회)

2007.01.05 17:01:01

김상필 회장은 며느리를 눈부신 듯 바라봤다. 아들 지욱이와 결혼한지 겨우 한 달이 됐으니 한참 꿈같은 신혼재미를 느낄 때다. 나경미 역시 아직 처녀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 흘렀다.
“웬일이냐, 전화도 없이...”
“아버님, 신문 보셨죠?”
묻고 있는 나경미는 어두운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를 중매시켜 준 백낙원 사장이 살해됐는데도 표정은 마냥 밝았다.
“뭐 신경쓸 건 없다.”
김회장은 보던 신문을 접어서 한쪽에 치우며 애써 밝은 얼굴로 며느리를 바라봤다.
“그래도 그분은 저희들 결혼에 무척 애를 쓰셨는데... 정말 안 됐어요. 그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요.”
“곧 밝혀지겠지, 전모가... 그보다도 지욱인 지금 회사에 있다든?”
“네.”
“허허, 지욱인 네가 보고 싶어서 안달일 텐데...”
“아이 아버님두...”
“그래, 그 녀석 너한텐 잘해 주냐? 가끔 외출도 하고?”
“네, 어젠 같이 명동에 나갔는 걸요.”
“거 잘 했구나. 네가 오구서부터 우리집이 몰라보게 환해졌어. 친정에도 가끔 연락하고 해라.”
“염려마세요, 아버님. 어머님은 제가 없는 편이 더 좋으시대요.”
“허허, 그럴 리가 있겠니.”
그때 노크소리가 나고 비서실장 주강호가 얼굴을 내밀었다.
“회장님, 우일산업 박전무님이 오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나경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님, 전 그만 가보겠어요.”
“아니 왜... 차라도 마시고 가렴.”
“괜찮아요. 일찍 들어오세요, 아버님.”
나경미는 하얀 다리를 내 보이며 회장실을 나갔다.
“그래, 조심해 가거라.”
대그룹의 총수이지만 며느리에게는 무척 자애스러웠다. 나경미와 엇비켜 우일산업 박동권 전무가 회장실로 들어섰다.
실 종
삼청동에 자리잡은 우일그룹 김상필 회장의 저택.
나경미의 남편 김지욱은 그의 오랜 친구 우형빈과 함께였다.
"어서 들어오게.“
지욱이 친구를 안내하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독일산 셰퍼드가 요란하게 짖었다.
“저 놈의 개는 언제나 나를 몰라보는군.”
“자네가 하도 오래간만이니까 짖어대는 건 무리도 아니지.”
김지욱은 현관문을 열며 습관처럼 아내를 불렀다.
“이봐 경미, 경미!”
그러나 아내는 나타나지 않고 어린 가정부 유리가 부엌에서 나왔다.
“안 계신데요.”
“없어? 어디 나갔는데?”
“회사에 가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
지욱이 음악을 틀어놓고 친구 우형빈과 양주 반 병을 거의 비우도록 나경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난 자네집에 오면 좀 어리둥절해진다구."
우형빈은 얼음을 채운 글라스를 기울이며 지욱을 바라봤다.
"아니 왜?"
"글세 뭐랄까... 집이 너무 커서 그런가. 하하. 자네 와이프가 너무 미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지.“
“원 사람도...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이리 늦을까...”
“아따, 그 샐 못참아서 안달이군. 자네 결혼 때 사진 보여준댔지.”
“보여주지.”
지욱은 서가에서 두툼한 앨범을 가져와 형빈에게 넘겨주었다. 첫장을 넘기던 형빈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꼭 맷돼질 잡아다 놓은 것 같군. 주례선생이 뚱뚱보라서 자넨 첫아들을 돼지같이 살찐 녀석을 낳을 거야.”
“마음보를 잘 쓰라구. 그렇게 악담하면 자넨 자식을 잘 낳을 줄 아나?”
이런 농담을 주고 받으며 그럭저럭 양주 한 병을 비우자니 두시간 넘게 지났다. 그때까지 나경미가 돌아오지 않자 지욱은 짜증이 났다.
“유리야! 유리야!”
“네, 아저씨.”
밖에서 유리가 뛰어 들어왔다.
“회사에 연락해 봐. 이 사람이 왜 이리 늦어?”
“네, 전화해 보겠어요.”
유리가 나가자 우형빈이 또 지욱을 놀려댔다.
“이보리구. 친구가 있는데 신부만 찾을 건가?”
“그런 게 아니구, 이렇게 늦는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안다구. 자넨 신혼재미가 꿀맛이겠군. 너무 안달하지 말게. 혹시 친정에라도 들렀는지 아나.”
“친정에 간다면 유리가 모를 리가 없어. 말해 놓고 갈테니까.”
우형빈은 양주잔을 비워 김지욱에게 권했다. 유리가 왔다.
“아저씨, 회사에선 네 시간 전에 아줌마가 떠나셨대요.”
“너한텐 암말 없었니?”
“네, 어디 들른다는 말씀도 없었구요. 회장님이 그러시는데 네 시간 전에 회장님께 일찍 들어오시라면서 나가셨대요.”
“알았다.”
나경미는 밤 12시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가 볼만한 곳은 지욱이 다 연락해 봤지만 허사였다.
나경미는 어디로 갔는가? 우일그룹 본사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누구에겐가 끌려갔는가?
아니면 대낮의 서울에서 증발했는가?
새벽 4시.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운 김지욱은 커튼을 열고 미명의 새벽하늘을 바라봤다. 멀리서 교회의 차임벨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지욱은 정말 기도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제발... 제발 돌아와 줘, 경미. 제발...)
그는 돌아서서 따라놓은 술잔을 또 입으로 가져갔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아버지의 사회적인 지위를 생각해서 아직 경찰에도 연락하지 못했다. 지욱은 속이 탈 대로 탔다. 아내가 가볼만한 곳을 아무리 추리해 봐도 떠오르질 않았다. 물론 친정에도 여러 번 연락을 취했다. 전 국회의원인 그의 장모 유병숙도 딸이 친정에 온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욱은 방안을 서성거리며 아내가 가서 밤을 새울 만한 곳이 어딘가 열심히 생각해 봤다.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아버지 김회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욱아, 나다.”
“네, 아버님.”
지욱은 도어를 열었다. 밤을 새운 듯한 김회장이 가운 차림으로 들어왔다.
“아버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아직 연락이 없냐?”
“곧 연락이 있겠죠.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염려말라니. 어젯밤 그렇게 찾았는데도 없는 걸 보면 변이 나두 단단히 난 게야.”
“뭔가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겠죠.”
“예감이 이상해. 아무래도 사위스런 생각이 자꾸 앞서는구나. 백사장의 죽음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욱은 강하게 그걸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필시 그 사람은 절 골려주려고 이럴 겁니다.”
“골려주다니. 네가 무슨 짓을 했길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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