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발달과 인간 정체성의 변화

2007.06.28 11:06:06

[문제]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인간의 신체 일부를 대체하거나, 전체적으로 인간의 능력과 유사한 수준의 기계가 발명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미래 사회에서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모호해질 수 있다.
다음은 미래 사회를 가상하여 만든 애니메이션에 관한 분석을 담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인간성’의 기준을 제시문을 참고하여 논술하시오. (1,600±100자)
<공각기동대>는 기술이 정말로 ‘끔찍하게도’ 발전한 세계4차 대전이후의 어떤 시기를 다룬다. 일본 회사들이 세계의 지배권을 행사하는데, 그것은 공각기동대(Shell Task Force)라고 알려진 보안군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이들은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돌아다니며 범죄자를 찾아내고 첨단무기를 사용해서 처참하게 응징한다.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인간의 ‘고스트’를 얼마든지 조작하고 파괴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모두 ‘터미네이터’가 된다. 어떻게 행동할 지에 대하여 이미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인간들, 그 사회의 ‘소중한’ 주체가 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군대에서, 공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미 프로그램화 되어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혼은 프로그램이다. 더 이상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의미에서 실재도 없다. 회사는 사람들이 정보에 좀 더 편리하게 엑세스 할 수 있도록 신체의 성능을 더욱 ‘개선’시켜준다. 그러나 그것은 좀 더 편리하게 사람들의 신체에 엑세스하게 해주며 신체에 대한 통제력을 ‘개선’시킨다.
문제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도무지 문제란 생겨날 수도 없을 것 같은 이 사회에 문제가 발생한다! 일종의 ‘버그’가 발생한 셈이다. ‘공각기동대’는 ‘버그’들을 ‘디버깅’하기 위해 출동한다.
하나의 사건이 시작된다. 정보기술의 개발을 통해 전 세계를 네트를 통해 넘나들면서 각종 프로그램들을 조작하고 파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외무성!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독자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인형사(Puppet Master)로 불리는 그 프로그램이 통제를 벗어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음모가 세계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인형사를 회수하기 위해 달려든다.
인형사는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고 도처에서 출몰하는 (ever-changing and omnipresent) 막강한 범죄자이다. 인형사는 과학기술의 극한적 발전이 산출해낸 과학기술의 이질적 지대이다. 그것은 기존의 기술이 닦아놓은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며 추적을 따돌리고 해킹한다.
인형사를 추적하는 6과와 9과의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인간들의 군상을 만나게 된다. 허무주의 시대 인간들의 행진! 인형사로부터 고스트 해킹을 당한 청소부는 장소를 계속 바꾸면서 엑세스를 시도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한 부인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순박한 청소부가 인형사로부터 단순히 사기 당해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만 해도 우리는 그토록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사결과 이 청소부는 부인이나 예쁜 딸이 없는 독신자였다. 부인에 대한 기억도, 예쁜 딸에 대한 기억도, 머리 속에 있는 가족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모두 가짜다. “확실히 내 딸이야…”라고 말하는 청소부의 눈빛은 온통 슬픔 뿐이다. “그 거짓 꿈을 어떻게 지울 수 있죠?” “유사체험도 꿈도 정보는 전부 현실이고 환상인거야…” 그토록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기억, 자신이 그토록 동일시해왔던(identify) 정체성(identity)의 보루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우리의 기억은 타자의 기억이고 우리의 목소리는 타자의 목소리다!
쇼윈도 안에 있는 마네킨이 클로즈업 되지만 그 앞을 무심코 걸어가는 인간들과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인형이 된 인간들, 프로그램화된 터미네이터들이 열을 지어 행진한다. 수동적 허무주의, 즉 허무주의의 본질이 실현된다.
쿠사나기 소령 역시 자기 고스트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영혼 역시 그녀의 전뇌(사이버네틱)에 의해 심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동일성이 어떤 것인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 더 이상 비유적 의미가 아닌 사실 그대로 기계인 자신의 신체에 대한 극심한 회의에 빠진다.
“참 편하지? 마음만 먹으면 체내에 심은 화학플랜트로 알콜을 소독해서 말짱해질 수 있어.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기술이라도 실현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어. 인간의 본능같은 거야 대사의 제어지각의 예민화, 운동능력이나 반사의 비약적 신장…”
이제 그녀는 조금씩 변이를 꿈꾼다. 그녀는 자신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돌아간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심지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떤 도덕적 위안도 가질 수 없을만큼 그녀는 삐딱(!)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성의 공간에 잠수한다. 바다는 실제 바다이며 또한 정보의 바다이다. 그녀는 네트에 끊임없이 잠수하면서 또한 바다에 틈날 때마다 잠수한다. 바다는 생명체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새로운 생명체 역시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다.
소령은 잠수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두려움, 불안, 고독, 어두움,… 그리고 어쩌면 희망? 해면으로 떠 올라갈 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수 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자신이기 위해서는 놀랄만큼의 많은 것이 필요해. 타인을 가리기 위한 얼굴, 그리고 의식하지 않는 목소리, 눈 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릴 때의 기억,… 그것만이 아니야. 내 전뇌(사이버네틱)가 엑세스 할 수 있는 방대한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들 전부가 내 일부이고 나라는 의식 그 자체를 만들어내고… 그리고 동시에 나를 어느 한계로 제약해.”
인간은 이 많은 것들로 ‘구성’된다. 이 많은 것들의 교차점에 인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내 사이버네틱이 엑세스할 수 있는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이 나라는 의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나를 어느 한계로 제약한다. 나는 ‘나의 능력만큼 엑세스 할 수 있고, 그것은 또한 나의 한계다.’ 이제 나는 나를 바꾸어줄 방대한 정보와 네트를 가진 어떤 신체와의 만남을 꿈꾼다.
-고병권, ‘공각기동대와 철학적 문제’
[학생 답안]
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몸에 인공심장과 같은 기계를 이식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케빈 워릭 박사가 그의 팔 속 신경에 전자 칩을 이식하여 생각만으로도 기계를 조종 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머지않은 미래에는 네트워크 사이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사이보그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사이보그란 기계적인 도움으로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이보그에 관한 대표적인 영화에는 <공각기동대>가 있다. 이 영화에서 쿠사나기 모도코라는 휴머노이드(사이보그)가 나온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영화의 말미에서 쿠사나기와 대조되는 프로그램인 ‘인형사’와 융합하며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한다.
영화 <공각기동대>에서 나타나듯이 미래의 사이보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생명체의 정의’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한 쿠사나기와 같은 사이보그의 영혼이 네트워크를 떠돌아다니게 될지라도 그들은 이성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이다. 사이보그들은 생물학적으로는 기계이기 때문에 인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이 존재하고 감정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인간이 될 수 있다. 이성이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미래에 나타날 휴머노이드는 산소와 영양소로 생명을 유지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살아가고 있고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쿠사나기는 휴머노이드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불안, 고독, 희망 등의 감정을 느낀다고 언급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이 있고 감정에 대해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아무리 사이보그라 해도 그들은 인간이다. 그녀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형사와 결합함으로써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선택하였다. 또한 인형사는 자신과 맞는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한 능동적인 신체이다. 그러므로 쿠사나기와 인형사와 같은 사이보그들은 인간이다.
반면에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데카르트’의 기준이 있다. 데카르트는 인간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 번째, 기계는 인간이 하듯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기 위해 말이나 신호를 사용할 수 없다. 두 번째, 비록 기계가 인간만큼 또는 더 잘, 많은 일을 할 수 있어도, 기계는 인간처럼 이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내부 장치의 배치에 따라 움직인다. 때문에 기계는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각기동대>에서 등장하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들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는 데카르트의 기준을 무색하게 한다. 이 영화에서 쿠사나기 모도코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과 흡사한 사이보그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기계이다. 하지만 쿠사나기는 자신 스스로가 판단하고 유추할 수 있으며 인간과 동일한 언어를 구사한다. 이처럼 쿠사나기는 인간과 기계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의 기준을 구사나기에 적용하면 모순이 생기게 된다. 때문에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인형사’라는 프로그램은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인간은 그가 생명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그의 망명 요구를 거절한다. ‘인형사’는 인간에게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과학은 생명을 정의할 수 없으니까….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발생한 생명체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현재의 과학은 생명체를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미래의 사이보그들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
[총평]
논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였습니다. 도입부 및 본론 중 ‘신체 내 전자 칩 이식’ 사례나 데카르트의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기준 등을 적절히 활용하였습니다. 논제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논의에 부합하는 배경지식을 찾아내어 결합시킨 노력의 흔적이 보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흡사한 사이보그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이성과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들고 있습니다. 기준이 명확하고 비교적 설득적인 근거를 들고 있지만, 보다 정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굵은 글씨로 표시한 단락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흔히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사유의 능력 즉, 이성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쿠사나기처럼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이성에 의한 판단을 내리는 사이보그는 인간이라고 봐야 한다. 비록 호흡과 물질대사라는 생명체의 특성을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고려해 본다면 현재의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마무리 부분에서는 ‘인공생명에게 인간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생명체의 개념을 현재까지의 과학 발달 수준에서 거론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논거가 보강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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