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미군 망명자 엇갈린 진술“진실 판단은 관객의 몫”

2007.08.31 15:08:08

북에 대한 편견을 깨고 평양의 진실하고도 새로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영국의 대니얼 고든 감독이 3번째 북한 다큐를 들고 3번째로 한국을 내한했다.
1966년 영국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이뤄낸 북한 축구단의 후일담을 담은 ‘천리마 축구단’, 북한 최고의 집단 예술인 매스게임을 준비하는 북한 청소년들에 대한 일상의 기록 ‘어떤 나라’에 이어 북한의 미군 망명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선보이는 고든 감독. 서울 방문 소감에 대해 그는 “평양과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는 차이가 많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촬영 허락을 받아내다
“영화를 찍기 전 북한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뉴스에서 보았던 이미지들과 ‘천리마 축구단’에 대한 것이 다였다”며, “영화를 만들면서 큰 선입견이 없어 차라리 다행이었다”는 고든 감독. 그의 북에 대한 다큐는 모두 ‘천리마 축구단’에 대한 순수한 애정에서 시작됐다. 원래 축구광팬이었던 고든 감독은 세계무대에서 기적을 이뤄낸 북한의 축구단에 대한 호기심과 열망을 오랜 시간 가슴에 품게 됐고 급기야 그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북한 입성에 성공한다. 원래 정치적 의도로 북한에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던 만큼, 그의 영화는 정치적 선입견이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북한을 포착해 세계인의 관심을 모았다.
후속작들은 ‘천리마 축구단’을 촬영하다 기획됐다. ‘푸른 눈의 평양 시민’ 또한 ‘천리마 축구단’을 위해 북한 방문 중 북한에 미군 망명자들이 살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을 알게 되면서 시작됐다. 북한 당국에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뜻을 전한 고든 감독, 그러나 북한 당국은 망명자들을 카메라에 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진을 신임하기 시작한 북한 당국은 결국 제작진과 작업 파트너들의 계속된 요청에 못 이겨 촬영을 허락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4년 고든 감독은 네 명의 미군 망명자 중 당시 북한에 생존해 있던 두 명의 망명자, 드레스녹과 젠킨스를 만나 촬영을 시작했다. 드레스녹과 젠킨스의 첫 인터뷰를 순조롭게 마친 제작진,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젠킨스는 부인을 따라 일본의 미군에 투항하기에 이르고, 기존과는 상반된 진술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북한 정부는 민감하게 촬영에 대해 반응했고, 그래서 이후로는 적은 분량의 촬영 밖에 진행할 수 없었다”며 고든 감독은 아쉬워했다.
하지만 제작진들은 북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따라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DMZ 지역에서 촬영을 하는데 성공했다. 고든 감독은 “DMZ 지역은 클린턴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라고 언급한 바 있다”며,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군사 지역에서의 촬영을 통해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은 보다 다양한 영상을 추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슈지만 정치적 해석 피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린 이번 영화는 1960년대 38선을 넘어 북으로 간 미군 망명자들의 과거와 현재를 심층 취재하여 구성한 빅 프로젝트. 영화는 북에 간 망명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체제의 선전용으로 안락한 삶을 보장받은 그들의 과거를 추적하며 관객에게 행복과 체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탈영해 월북한 4명의 미군 망명자들은 정치 선전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동원됐다. 특히 그들이 가장 큰 활약을 벌였던 분야는 영화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영화를 통한 사상 교육과 정치 선전 등에 열을 올렸는데, 그가 제작한 영화가 바로 ‘이름 없는 영웅’이라는 첩보 시리즈물이다. 네 미군 망명자들은 각자 이 영화에서 서양인 악당 역으로 출연했는데 시리즈의 인기가 올라가자 네 미군 망명자들에 대한 북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망명 당시 평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들을 주시하는 북한 사람들의 시선에 괴리감을 느꼈던 망명자들은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인기 스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평양 사람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북한 사회에 적응해나갔다.
드레스녹은 이 같은 평양에서의 삶이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와 반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북한에서의 삶이 지옥 같았다고 말하는 젠킨스. 과연 둘 중 진실을 말하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대니얼 고든은 이 사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양쪽의 입장을 카메라에 담아 관객들에게 선택의 몫으로 남기고 있을 뿐이다.
고든 감독은 “정치적 이슈에 관한 이야기지만 정치적 요소가 꼭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고 말했다.
“서울과 평양, 도시 달라도 사람은 비슷”
고든 감독은 촬영과 관계된 소소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으로 판문점을 꼽은 고든 감독은 북한 쪽의 판문점을 가 본 적이 있는데 북한 쪽 경계선에 외국인인 자신이 나타나자 신기한 듯 쳐다보던 남한 병사들의 모습이 기억난다며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눠서는 안 된다는 규칙 때문에 자신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지만 어리둥절해하며 고든 감독과 촬영 스텝들을 지켜보던 그들이 어느 순간 모두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점심시간이라 자리를 비웠다는 것.
남한의 냉면은 평양의 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며 음식에 대한 소감도 말했다. 고든 감독은 옥류관 냉면을 많이 먹었는데, 냉면발이 우동면처럼 굵고 종류도 물냉면 한 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불고기라며 정말 맛있다고 평했다.
고든 감독은 현재 차기작으로 쉐필드 북쪽 지역에서 열리는 그레이하운드 견들의 경주에 관한 영화를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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