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청춘들의 강펀치 ‘울보 권투부’

2015.10.20 21:54:53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으로서 부딪치는 ‘차별’이란 장애물에 당당히 저항하는 10대들의 순수한 열정을 담아냈다. 2014 DMZ국제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조선적’

 다큐멘터리의 배경이 되는 곳은 도꾜 조선 중고급학교.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며 일본 사회 속에서도 민족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학교’다. 현재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의 무상화 정책에서 유일하게 배제돼 재정적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조선적’이라는 국적을 일괄 부여 받은 재일동포들은 특수신분으로서 일본에서 괄시를 받고, 한국에서는 친북계로 낙인 찍혀 입국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학교’라 불리는 조선학교는 한때 160여 개가 있었으나 지금은 7, 80개교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다. 단순히 우리말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재일동포들의 만남의 장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학교가 처한 현실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멀고도 낯선 존재였던 ‘조선학교’를 알린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2007), 60만 재일동포의 염원을 마음에 품고 전국 제패에 나선 조선학교 럭비부 선수들의 이야기 ‘60만번의 트라이’(2014)를 통해 ‘우리학교’가 관객들에게 소개돼 왔으나, ‘우리학교’가 처한 현실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셈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존재,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이들의 현재를 기록한다는 점에서 ‘울보 권투부’는 또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차별을 딛고 혹은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스포츠에 몰두하는 특별한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자기 인생의 중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가고, 치열한 청춘의 시간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울보 권투부’는 기존 재일동포 영화들과는 차별점을 가진다.

핵주먹을 꿈꾸는 솜뭉치

 영화는 진짜 남자가 되고 싶은 울보 소년들이라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포진해있다. 먼저, 뛰어난 책임감으로 부원들을 살뜰하게 챙기는 유삼, 장난기 가득한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권투를 좋아하는 원호, 훤칠한 키에 새하얀 피부로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인 경우, 전국고교 종합체육대회에 진출한 에이스이자 권투부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승응 등 땀범벅, 눈물범벅, 콧물범벅이 된 채 남자의 상징인 권투 연습에 매진하는 울보 아이들의 모습은 캐릭터 다큐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관객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1986), ‘극사적 에로스’(1974) 등을 연출한 일본 다큐멘터리계의 거장 하라 카즈오 감독의 수제자인 이일하 감독은 “주인공들은 정말 권투가 좋아서 하는 아이들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감독의 전언처럼 ‘울보 권투부’는 각자의 꿈을 향해, 그리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고교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을 통해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친구들과 울고 웃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 그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찾기 위해 나아가는 진정한 과정이 맞지 않느냐고 ‘울보 권투부’는 끊임없이 묻고 있다.
 영화 말미에서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권투부 김상수 코치가 하는 말은 영화의 주제와도 통한다. “권투를 통해서 기술, 기량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고 싶다. 경기의 승패보다도 고된 훈련으로 키운 정신력이 사회에 나가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학생들에겐 졸업 후의 인생이 훨씬 길기 때문에 권투부에서 배운 것이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기쁠 것이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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