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23회)

2007.12.17 13:12:12

“목재소? 목재소라...”
지욱의 눈에는 이글이글 이상한 빛이 일어났다. 그는 보이지 않는 범인을 향해 말할 수 없는 증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눈은 마치 광인의 눈처럼 번들거리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주 구천동에서 목재소는 보지 못했는데...”
“목재소는 어디든지 있어.”
하긴 그랬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었지만, 전국적으로 전기톱이 있는 목재소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 많은 전국의 목재소를 찾아 나설 수는 없었다. 또 설사 문제의 목재소를 찾는다 하더라도 범인이 거기 머물러 있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지욱은 어제 오영숙으로부터 들은 아내가 처녀시절에 서정숙이 경영하는 비밀요정에 나갔다는 사실을 우형빈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우형빈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었다. 한동안 아무 소리없이 창밖을 내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그 여잘 만나야지.”
“자네가 만나겠어?”
“자넨 마주치기 싫은가?”
“마주치기 싫어도 만나야겠어. 어쩌면 그 여자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는지도 모르잖아?”
“그건 아직 추측일 뿐이야. 그러나 만나는 봐야겠어. 서정숙의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똑똑히 봐둬야 할 거야.”
“지금 그 여자 어디 있지?”
“그거야 수소문해 보면 돼. 아니 내가 자리를 마련해 보지.”
“그렇게 해 주게.”
우형빈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장소는 남산식물원 앞이었다. 너무 더워서 남산은 한산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이 식물원을 내리쪼이고 있었다. 땅에서도 열기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남산의 열대식물들은 제철을 만나 듯이 윤기있는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서 서정숙을 만난다는 게 좀 어색했지만 지욱은 담배를 깊이 빨면서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렸다.
정확하게 약속시간이 되니까 식물원 앞 보도를 걸어오는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의 임자는 물론 서정숙이었다. 그녀는 수수한 양장에 마치 연인을 만나는 여자처럼 사뿐사뿐 걸어왔다.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얽혔다. 지욱이 쏘는 눈으로 서정숙을 바라보자 그녀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죄송합니다. 나오시게 해서...”
“오히려 제가...”
서정숙은 말끝을 흐렸다. 지욱은 벤치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네.”
어디선가 참새소리들이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서울시내에서는 기생하지 못하는 많은 참새들이 남산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욱은 다시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 댔다.
“바쁘실텐데 제가 시간을 뺏은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이런 자리는 있어야겠죠.”
“어째서 그렇습니까?”
지욱은 담배를 빨면서 너무나 야무지게 나오는 서정숙에게 반감을 느끼며 짓궂게 물었다.
“그걸 되물으시면 제가 오히려 대답이 궁해지는군요.”
역시 서정숙은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지욱은 새로운 증오심을 되씹으며 말을 꺼냈다.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뭔데요? 아버님과의 관계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거구요.”
“물론입니다. 노후의 아버님을 보필해 주는 정성은 늘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진정인가요?”
“아버지는 외로운 분이십니다.”
지욱은 태우던 담배를 구둣발로 짓이겼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게 아닐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서정숙이 숲을 떼지어 나는 챔새떼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럴까요? 제가 아는 서여사는 결코 외롭지 않았을 텐데요.”
“무슨 뜻이죠?”
서정숙은 비로소 고개를 약간 돌려 지욱을 쳐다봤다. 지욱은 그 시선을 느꼈으나 마주보지는 않았다.
“서여사는 아주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인기라구요?”
서정숙은 약간 미소했다. 약간은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특히 죽은 경미에겐 말입니다.”
지욱은 경미란 단어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무슨 말이 듣고 싶어요?”
“왜 아내를 비밀요정에 끌어들였습니까?”
“그게 알고 싶어서였군요?”
“그렇습니다. 경미가 돈 때문에 그런 델 나갔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구나 서여사가 경영하는 곳에 말입니다.”
“예측하신 대로예요. 난 학교를 졸업하고부터 요정을 경영하고 있었어요. 경미가 거길 나온 건 순전히 자신의 자발적인 희망에 의해서였습니다.”
“경미가 원했단 말입니까?”
“그래요. 경민 그런 애였죠. 날 무척 따랐고 남자들의 세계에 호기심이 많았더랬습니다. 견학이랄까? 사회공부랄까? 그런 심경으로 뛰어들었던 거죠.”
“정말입니까?”
“난 거짓말은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예요.”
서정숙은 야무지게 말했다. 그 커다란 눈에는 아무런 복잡한 감정은 숨겨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경미는 체면을 생명보다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호기심 하나로 그런 델 뛰어들어갔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먼가 서여사의 계략이 작용했을 겁니다.”
“계략이라구요? 무서운 말을 쓰시는군요. 내가 요정을 경영하고 있다고 그런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는가요? 파리에 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걸 경영하게 된 거구, 여자가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난 학비를 벌어서 파리유학을 한 셈이죠. 그렇다고 언니처럼 따르는 경미를 이용해서까지 공부는 하지 않았어요. 손만 내밀면 여자는 숱하게 있었어요. 그런데 왜 내가 아끼는 후배를 끌어들였겠습니까?”
“아버지를 돕는 것도 생활수단의 일부인가요?”
“묘한 델 찌르시는데,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닙니다. 아버님은 지금 내가 요정을 하는 줄 모르고 계세요.”
“그 얘긴 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싶은 건 경미를 죽인 범인이 누구냐 하는 겁니다.”
“왜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죠? 날 범인취급하는 거예요?”
서정숙은 발딱 일어났다. 몹시 노한 기색이었다. 지욱도 일어났다. 두 사람은 등을 돌리고 서로 반대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범인취급이 아닙니다. 서여사는 경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경미가 죽기 전만 해도 경미의 단골의상실을 경영하고 있었으니까요. 난 그 사실이 웬지 가슴이 서늘한 겁니다. 경미가 아버지의 며느리가 됐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서정숙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뒷모습이 약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돌아섰다.
“이상하게도 경미는 내 주위를 뱅뱅 도는 아이였어요. 그렇게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 것을 인연이라고 하나 봐요. 하지만 지욱씨 부인이 된 경미와 갑자기 멀어질 수는 없었어요. 경미는 내가 만든 옷이라야 입곤 했으니까요. 그때 내가 경미의 비밀요정을, 그것도 내가 경영하는 곳에 나왔던 여자라고 회장님한테 고자질해야 옳았을까요?”
“경미는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신문을 봐서 알겠지만 범인은 지독한 놈입니다. 아버님도 충격이 크고 회사도 비난을 받고 있어요. 그런 것보다도 아내를 잃은 내 충격이 더 큽니다. 난 꼭 범인을 잡고야 말겠습니다. 혹시 짚이는 점이 없습니까?”
“글쎄요. 나도 뭐라고 말할 수 없으리만치 충격을 받았어요.
(계 속)
시사뉴스 webmaster@sisa-news.com
Copyright @2024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 (05510)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35가길11 (신천동) 한신빌딩 10층 TEL : (02)412-3228~9 | FAX : (02) 412-1425
창간발행인 겸 편집인 회장 강신한 | 대표 박성태 | 개인정보책임자 이경숙 | 청소년보호책임자 박정민 l 등록번호 : 서울 아,00280 | 등록일 : 2006-11-3 | 발행일 : 2006-11-3
Copyright ⓒ 1989 - 2024 SISA 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sisa-news.com for more information
시사뉴스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 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