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24회)

2008.01.01 15:01:01

경미가 그런 불행을 당한 게 비밀요정과 무슨 상관이 있죠?”
“서여사, 혹시 방용철이란 사람을 아시겠죠?”
“경미를 귀찮게 따라다니는 남자라고 알고 있어요. 경미가 언젠가 말하더군요. 그러나 만난 일은 없어요.”
“방용철이 한정원의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여러 번 거길 드나들었어요. 그리고 또 방용철은 죽기 전에 서여사의 의상실 앞에 가서 한 3,4분 동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모르신단 말입니까?”
“몰라요. 그 사람이 왜 의상실을 들여다 봤을까요? 그리고 그 사람은 왜 피살됐죠?”
“그래서 묻는 겁니다. 경미를 해친 자가 방용철도 해쳤을 겁니다. 경미의 과거를 잘 아시면서 느껴지는 점이 없습니까?”
“전혀 짐작이 안 가요. 그리고 나는 요정엔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방용철이 한정원엘 드나들었다고 해도 나는 그를 만날 수 없었어요.”
“그럼 왜 방용철이 요정엘 갔을까요? 그의 수입이 그런데 드나들만치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글쎄요. 저로선 알 수 없는 얘기군요.”
“그럼 백사장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찰이 모르는데 나라고 알 수가 있나요?”
“백사장은 잘 아십니까?”
“몰라요. 아버님 방계회사 사장인 것만은 알고 있지만요.”
지욱은 서정숙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묻겠습니다. 아내를 어처구니없이 잃은 못난 사내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하고 오해는 말아 주세요. 아버지는 한정원을 하는 걸 모르신댔는데 주비서는 왜 자주 한정원엘 드나듭니까?”
순간 서정숙의 얼굴에 약간 난처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내 태연해지면서 서정숙은 고혹적인 입술을 열었다.
“주비선 술을 마시러 왔겠죠.”
“아닙니다. 주비서 얘긴 아버지의 심부름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겠죠. 그런데 주비서가 한정원에 드나든 게 뭐가 그리 이상하죠?”
“주비서는 두 번이나 마주쳤는데 술 마신 기색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저는 그가 서여사를 만나러 간다고 밖엔 해석할 수 없습니다.”
“지욱씬 지금 나하고 주비서를 의심하고 있군요?”
“그러나 그게 어떤 종류의 의심인지가 문제겠죠?”
“어떤 종류의 의심? 호호, 묘한 표현이군요? 지욱씬 설마 아버님을 사이에 둔 저와 주비서의 간통을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이상한 곳으로 유도하시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거 관심도 없고, 내 소관도 아닙니다. 다만 이상한 건 이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한정원에 드나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건 내 죄라는 건가요?”
“그렇게 듣지 마십시오. 절 도와 준다고 생각하십시오.”
“알겠어요. 경미를 알았다는 게 불행이었던 것 같군요. 저도 알아보겠어요. 이만 실례합니다.”
서정숙은 등을 보이며 천천히 식물원을 빠져나갔다. 지욱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대학시절 에스 언니라면서 서정숙을 따라다녔을 경미의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뭔가 저 여자에겐 분명히 비밀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비밀이 뭔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길이 없었다.

또 하나의 의문
그럴 즈음 호남선 특급열차에서 다량의 마약을 소지한 중년부인이 시경 마약과 형사들에게 붙잡혔다.
임보경. 43세의 여자.
가방 속에 다량의 헤로인, 히로뽕, 코카인 등과 약간의 극독물을 넣어 운반하다가 불심검문에 붙잡힌 것이다. 그런데 약간의 극독물 중에 필로카르핀이라는 비소화합물이 발견돼, 이 여자가 마약밀매업자의 판매책이며 혹시 백낙원 사장과 나경미를 죽인 배후인물이 아닌가 보고 밤을 새워 임보경을 심문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만성 헤로인 중독자로 이성이 마비되어 횡설수설해 정확한 자백을 받아 낼 수 없었다. 그 배후가 누군지도 알아낼 수 없었다.
이 사실은 신문에 보도되었다. 임보경의 사진도 곁들여져 있었는데 우일그룹 종합 조정실에 찾아온 우형빈은 그 기사를 지욱에게 보였다.
“어떻게 생각해?”
“글쎄... 독약 성분이 같다는 건 좀 관심이 가지만...”
지욱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용철이 쫓던 사람이 중년부부라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리고 자네 결혼반지를 무주에서 부친 것도 중년부부였고.”
“하긴 그렇군.”
“이번에는 중년부인, 어쩌면 그 남편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했는지도 모르지. 아무튼 이 중년부부가 마약 밀매업자의 끄나풀인 것은 틀림없어. 좀 이상하지 않나?”
“모두 같은 인물이란 말이지?”
“그래, 지금 체포된 임보경과 그날 팔당에 태우고 갔던 택시 운전기사와 대면했지. 바로 방용철이 피살당하던 날 중년부부를 태운 운전사였네. 그 운전기사는 임보경을 애기를 안았던 중년부인이라고 말했어.”
“그럼 그 애기는 어디 갔지?”
“마약과에 가서 알아봤더니 정말 놈들은 교묘하더군. 그날 방용철이 피살된 현장에서 깨어진 석고조각을 발견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지. 그 석고에 마약이 묻어 있었다고 말이야.”
“사실은 그 석고가 어린애였네.”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석고로 만든 어린애였네. 그 속에 다량의 마약을 숨겨가지고 다녔던 거야.”
“그럼 애기가 우는 것은...?”
“녹음장치였네. 소형 녹음기에 애기 우는 소리를 녹음해서 필요할 때마다 녹음기를 틀었던 거야. 사람들은 애기가 우니까 그게 설마 마약덩어리인 줄은 몰랐거든.”
지욱은 생각에 잠겼다. 전화로 아내의 목소리를 낸 것도 틀림없이 녹음기의 조작이라고 확신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주강호 비서실장이다.
“아, 손님이 계셨군요.”
“상관없어요. 얘기해봐요.”
“회장님 심부름으로 왔습니다만.”
“주비서는 언제나 회장님 심부름이군?”
지욱은 주강호를 꼬집었다.
“아니, 무슨 말씀이시지요?”
“엊그제 한정원엘 왜 갔었어요?”
“회장님 심부름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강호는 민망하리만치 쩔쩔매고 있었다.
“틀려요. 아버지는 그런 요정을 알지도 못했어요. 아버지가 모르는 요정을 주비서는 알고 있었단 말이오. 주비서는 서마담과 어떤 사인가요?”
“아니, 어떤 사이라뇨?”
“꼬릴 접지 말고 얘기해 봐요. 아버지가 모르는 요정엔 왜 갔어요? 어떤 심부름으로 간 건가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서여사가 비밀로 해 달라고 해서요. 회장님이 아시면 꾸중하실 거라구요.”
“그래서요?”
“회장님께서 황내과에 입원하고 계셔서 그걸 알려드리려고 갔었습니다.”
“알았어요. 주비서가 할 말도 아버지가 계속 황내과에 머물 거란 얘기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답답한 입원실엔 왜 계시는지 모르겠군. 아버님을 집으로 모시고, 황박사를 왕진하게 하시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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