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어둠을 오가는 조성희식 판타지

2016.06.07 10:45:38

한국형 안티히어로 성장물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고전 소설 ‘홍길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탐정 홍길동의 개인적 복수 과정에서 민중을 학살하려는 악의 조직의 실체가 드러난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탐정물, 느와르, 안티히어로 액션 등 복합장르를 취했다. ‘늑대소년’ 조성희 감독의 신작이다.


1980년대 배경의 만화적 세계


 가난하지만 따뜻한 가족애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두 명의 어린 자매의 집에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찾아온다. 할아버지는 이 날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두 자매를 숨기고 납치범에게 끌려간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찾는 자는 또 있었으니 그가 바로 탐정 홍길동이다. 그는 거대 탐정 조직인 활빈당의 유능한 조직원이자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악몽에 시달리는 피폐한 인간이다. 그는 어머니를 살해한 김병덕을 죽여 복수하기 위해 찾아왔으나 원수의 집에는 두 자매만 남아있다. 두 자매는 할아버지를 찾아줄 공무원이라는 말을 믿고 홍길동과 동행한다. 김병덕을 찾는 과정에서 홍길동은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 단체 광은회의 실체와 함께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헐리우드의 안티히어로물, 일본의 탐정만화 등의 장르를 연상시킨다. 조성희 감독은 영화의 빛과 색, 의상 등 미술적 효과에 매 장면 공들여 동화적이자 만화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또한 잔혹하지만 상처받은 히어로, 순수하면서 발칙한 꼬마아이 말순, 선과 악을 넘나드는 김병덕, 우둔하지만 정의롭고 따뜻한 전직 조폭 여관주인 등 캐릭터의 입체성에도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전작 ‘늑대인간’과 상통하는 강점이다.
 1980년대 복고적 배경도 전작과 비슷하다. 각종 소품과 의상 등은 시대를 부분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하지만 고전 탐정물의 전형적 패션을 취하고 있는 주인공을 비롯한 몇몇 캐릭터의 복장은 시대를 벗어나 장르화 돼 있다. 리얼리티보다는 모호한 시대와 장소를 묘사하는 조성희식 세계관이다.
 빛과 어둠을 오가는 조성희식 판타지는 고전소설 ‘홍길동’과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 부정적 인간 홍길동이 민중을 구제하면서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처럼, 이 영화 또한 주인공의 성장물이자 민중을 구원하는 영웅 판타지다.




비논리적 전개, 의도된 신파


 하지만 아쉽게도 각종 익숙한 장르의 버무림으로 탄생한 이 판타지의 세계는 새롭거나 창의적인 인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익숙한 장르의 공식으로 관객에게 쾌감을 주기에도 힘에 부치는 느낌이다. 부분적으로 매력적인 영상들이 적지 않은 이 영화는 영상의 완성도에 비해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스토리의 완성도다. 주인공의 ‘추리 독백’이 점차 줄어가고, 후반으로 가면서 한국적 신파마저 등장하면서 느와르와 코미디가 공존하는 안티히어로물이던 영화의 색깔이 산만해진다. 신파는 느와르의 깊이를 떨어트리고, 이중적 정체성과 가족애와 살인 사이의 도덕적 갈등마저 철학보다는 신파로 해결된다. 주인공의 변화 과정은 감성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며 근거가 부족하다. 이 지점이야말로 ‘홍길동’이라는 이름보다 더 한국적인 요소다. 악의 실체 또한 살인과 노동력 착취를 일삼는 사이비 종교라고 두루뭉술하게 표현될 뿐이지 신념의 배경도 설명되지 않으며 악행의 이유도 명확치 않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는 결말이 탐정인 주인공의 추리력과는 동떨어진 활빈당이라는 단체를 만든 개인 자본의 힘이라는 점이 장르적 쾌감을 현격히 떨어트린다. 이 영화가 사실상 스타일만 탐정물이지 진정한 탐정물이라고 보기 힘든 이유다.
 이 영화는 모든 장르에 욕심을 내고 모든 장르를 버린다. 하지만 신파를 비롯한 이 모든 불완전한 설정이 흥행의 전락이라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영화에서 악은 감정이 없는 존재다. 실체를 불명확하게 함으로써 냉혹함은 곧 악이라는 단순 등식이 강조된다. 인간애가 부각된 아이들이나 이웃과는 대치된다. 이들의 사랑이 홍길동의 상처를 회복하고 비인간성에서 구원한다. 대중성을 의식한 의도된 단순함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헐리우드 장르를 코스프레하고 있는 지극히 한국적인 드라마인 셈이다.
 이제훈 특유의 오버된 연기나 극단적 요소가 공존하는 얼굴은 비현실적 캐릭터에 부합된다. 말순 역의 아역배우 김하나의 연기는 신선하다. 자칫 대중성을 잃을 수 있는 느와르적 분위기를 해소시켜주는 핵심 캐릭터인 말순은 귀여운 코미디를 비교적 작위적이지 않게 잘 소화했다. 활빈당이나 광은회 등 조직에 대한 묘사는 겉핥기식인데 시리즈물인 특성상 속편에서 구체화할 수 있을 듯하다. 감독의 세계관을 비롯해 캐릭터와 상상력 등이 가능성을 가진 만큼 더 나은 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킬링타임용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영화다.

정춘옥 ok337@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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