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이 이념을 배반할 때

2018.08.09 10:27:58

현대인의 위선과 편견을 꼬집은 블랙코미디 <더 스퀘어>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더 스퀘어’라는 새로운 전시를 앞둔 스웨덴 스톡홀름의 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티안의 일상과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 현대사회의 이면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제70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화제작이다.

예술에 대한 조소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3년 전 북유럽을 열광 시킨 예술 프로젝트 ‘더 스퀘어’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를 만들었다. ‘더 스퀘어’ 프로젝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신뢰 배려 평등의 가치관이 약속된 사각의 공간을 도심에 설치하는 작업이다. 

지식인이자 중산층인 크리스티안은 이 같은 작품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설명하고, 자신 또한 선한 이념을 당연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념이 시험대에 올려지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본성은 자신의 이념을 매번 배반한다.

영화는 스웨덴의 엘리트 계층인 크리스티안을 비롯해 예술가 언론 대중 이민자 노숙자 등 다양한 계층을 통해 상류층과 예술, 또는 문명의 허구와 위선을 비웃는다. 더불어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사회의 첨예한 문제인 이민자와 난민, 빈부격차 등의 계층 문제에 대한 유럽인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는다. 예술과 일상, 전시와 비전시, 영화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인의 편견을 날카로운 유머로 풀어놓는 솜씨가 대단하다.

<더 스퀘어>는 현대미술에 대한 가득한 조소로 시작한다. 전통적 조각상을 철거한 자리에 제작된 ‘더 스퀘어’ 작업은 인부들에 의해 진행된다. 전시장에 가득한 모호한 설치 예술들에 대해 영화 속 관람객들도 시큰둥한 눈치다. 심지어 청소부가 훼손시킨 작품을 몰래 사진을 보고 대충 원래 상태대로 복원하자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도 될 것 같은 비주얼의 작품이기는 하다. 예술가는 언론과 전시홍보팀과 함께 논란거리나 트렌드와의 접목으로 작품을 알릴 방법에만 몰두한다. 자극적 홍보 영상에 대한 조회수가 많아지자 유튜브에서 광고 계약을 요청하는 전화가 오는데 그들도 영상물은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난민과 이민자 문제의 본질

현대예술에 대한 이 같은 조롱은 점차 그럴듯하고 멋져보이는 이념만 나열하고 실제는 편견과 이기심에 가득한 중산층, 선진국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확장된다. 크리스티안은 원하지 않았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행인을 돕게 된다.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으로 우쭐함도 잠시, 지갑과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핸드폰 위치 추적으로 한 빈민가에 범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크리스티안은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로 도난품을 돌려달라며 폭력적 언어가 담긴 협박장을 아파트 주민 전체의 우편함에 넣는다. 아파트 주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드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예기치 않은 억울한 피해자를 만든다.

자신이 만든 문제를 회피하며 거칠게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은 난민 문제에 대한 유럽인의 속마음을 떠올리게 한다. 궁지에 몰린 크리스티안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념과 현실의 차이에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 또한 유럽의 현실을 비유한다.

불평등과 신뢰의 무너짐 등 점차 냉담해져가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고 고고한 이상을 추구하지만 예술가 자신 조차 실천 불가능한 정치적 철학과 미학은 단지 사기에 불과한 것일까? 

선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알리기 위한 자극적 홍보 수단은 얼마나 잘못된 것일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은근한 엘리트주의와 은근한 허영은 여전히 대중에 게 영향력이 있는게 사실인데 말이다. 영화를 지배하는 이 같은 고민들은 현대예술의 딜레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예술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겉모습은 우아하지만 돌발상황에서 비굴한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크리스티안은 인간 그 자체다.

현대사회의 가장 민감한 주제를 선명하면서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촘촘한 은유와 유머 넘치는 에피소드들로 빚어낸 점이 돋보인다. 평등과 연대를 절대 가치로 여기는 유럽이라는 ‘스퀘어’에서 난민을 대하는 속내가 그와 반대되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이 영화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도움을 필요로하는 타인을 외면하는 심리는 결국 공포와 나약함이라는 본성이다. 영화는 이 본성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를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자의 입장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인생의 가변성에서 찾는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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