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감성과 유머로 빚은 SF 신세계

2018.09.19 15:55:04

생명공학·AI시대 불안감, 디스토피아 풍경 표현 <업그레이드>



[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미래 도시, 불한당의 습격으로 아내를 잃고 전신마비가 된 그레이는 인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첨단 칩 ‘스템’을 두뇌에 이식하고 아내를 살해한 범 인을 찾아나선다. <겟 아웃> <23 아이덴티티> <해피 데스데이> 등을 통해 공포물의 명가로 떠오른 블룸하우스에서 첫 번째로 선보이는 액션이다. <쏘우> <인시디어스> 등의 각본 주연으로 알려진 리 워넬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화제작이다. 

독창적 인공지능 격투씬

<업그레이드>는 일견 역사적 SF물의 종합전시장 같다. 신체가 훼손된 인간이 ‘반 로봇’으로 압도적 존재가 된다는 소재 는 <로보캅> 등을 통해 이미 익숙한 소재 다. 이 외에도 가상세계에 사는 인류와 인체 한계의 초월을 보여준 <매트릭스>, 다른 자아가 몸을 지배하는 <기생수> 등 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감독 스스로 밝혔듯이 분위기와 구성 등의 면에서도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같은 80 년대 SF 액션들을 연상시킨다. 심지어 심령물의 단골 소재인 ‘악령 신체 강탈’ ‘귀신 들림’ 등과 상통하는 장면도 꽤 된 다. 

이처럼 기존 작품들과 많은 부분을 공 유하는데도 이 영화는 진부하기보다 신 선하고 독창적이다. 리 워넬 감독 특유의 B급 정서와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이 등 장하지 않는 점 등의 새로운 시도들이 인 상적이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인공지능 의 미래에 대한 경고와 인간 정체성에 대 한 통찰을 분명히 담고 있고, 현재 엄연 히 존재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이야기 도 놓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담론 조 차도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것을 감독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듯, 이 영화는 심오한 표정을 애써 짓지 않는다. 

<업그레이드>의 핵심 매력은 오히려 저예산에서 찾을 수 있다. 화려한 비주얼 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하고 액션씬도 스케일보다는 아기자기한 설정과 감각적 연출에 초점을 맞췄다. 디스토피아적 배 경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에 깔린 유머 감각은 단연 돋보인다. 고전적이고도 전 형적인 장르물의 미덕을 모두 갖춘 것이 다. 극중 주인공이 아날로그 마니아인것 처럼, 이 영화는 미래에 대한 흥미로운 묘사와 함께 복고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액션 장면은 초현실이라는 면에서 <매 트릭스>와 비슷한데, 전혀 다른 인상적 비주얼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의지와 관 계없이 움직이며, 감정을 배제하고 수치 적으로 정확하게 상대를 공략하는 인공 지능 격투씬은 새로운 재미를 준다. 유혈 이 낭자한 살해 장면들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인간과 대립되는 로봇의 냉혈 함을 강조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가장 로봇에 가깝고, 냉정한 인간마저도 감상 적인 약점을 지닌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흥미롭게 고 찰한다. 

‘가상 현실’의 지배 경고 

캐릭터 또한 신선하다. 아내가 눈앞에 서 살해당했다는 강력한 복수의 동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레이는 폭력에 익 숙하지 않고 오히려 질겁하는 현실적인 보통 시민이다. 신에 맞먹는 전지전능한 인공지능이 몸에 들어오면서 그레이와 갈등하는 장면이나 자신의 신체가 행하 는 장면에 놀라는 그레이의 반응은 묘한 아이러니와 유머를 빚어낸다. 나약한 소 시민이나 왕따가 화가 나거나 자극을 받 으면 슈퍼 히어로가 된다는 80년대 흔한 B급 코믹 액션물과 흡사하게, 장애인인 주인공은 인공지능 ‘스템’의 힘으로 ‘슈퍼 맨’으로 변신한다. 탐정 콤비물처럼 ‘스 템’과 그레이는 함께 힘을 합쳐 범인을 탐색하고 싸우면서 관객에게 통쾌한 카 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업그레이드>는 첨단 문명을 극도로 거부하던 그레이가 오히려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면서 생명공학과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불안감을 잘 표현했다. 로봇 이 지배하는 미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인 간이 외면할 수 없는 세계가 될 것이다. 영화에서 표현됐듯이 그 세계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경이적인 것이다. 하지 만,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없고, 불의의 사고에서 완전한 해방을 주지도 않는다. 실시간 범행 현장을 감시하는 드론이 날 아다니지만 범행을 막을 수 없으며, 범인 을 단번에 잡아내지도 못한다. 최첨단 시 대에도 천막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여 전히 존재한다. 

‘스템’은 타협적인 모습으로, 처음에는 절대 복종적인 형태로 다가와 점차 ‘숙주’ 를 지배한다. 지배 방식은 <매트리스>처 럼, 가상현실에 인간을 가둬두는 것이 다. 모든 SF는 사실 미래가 아닌 현실 고 발이다. 안락하고 행복한 우리의 현실과 일상은 사실 수많은 불공평과 부조리, 지 배계층의 부도덕에 눈감은 거짓 행복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상현실’이 기도 하다고 영화는 말한다. 이미 현대인 들은 휴대폰 등 첨단 문명의 노예가 돼가 고 있는 중이지만, 단지 지배적 파워를 지닌 것은 기계 뿐만이 아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을 조종하는 것이 미래의 ‘칩’일 수도 있지만, 현실에도 수많은 억압들이 우리 자신을 강탈하고 있다. 이것이 <업 그레이드>의 메시지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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