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 하나로 사고하다

2008.05.06 13:05:05

혁명가이자 사상가, 문학가, 대실천가, 헌정의 혼 등으로 불리는 그는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전 생애를 통해 중국사회의 변혁을 위해 노심초사했던 인물이다. 오늘날 그의 생과 사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새로운 중국으로 ‘과도’ 이를 위한 ‘다변’
중국 근현대사에서 양계초(1873~1929년)의 위치는 여러 방면에서 뚜렷하다. 양계초가 살았던 시기는 중국이 근대화를 위해 나름의 갖가지 방법으로 몸부림쳤던 때로, 그는 그의 사상과 사상의 실천으로써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한복판을 지키게 된다. 양무운동, 변법운동, 의화단운동, 신해혁명, 복벽, 5·4운동, 북벌전쟁 등이 양계초 생애에 일어났다. 이들 가운데 몇몇 역사적 사건은 그의 성공과 실패, 영광과 좌절과 결코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책이 이 같은 양계초의 생과 사상에 대한 종합적이고 실체적인 접근으로 눈길을 끈다. 양계초의 삶은 크게 두 가지, 과도(過渡)와 다변(多變)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옛 중국에서 새로운 중국으로의 ‘과도’, 낡은 백성에서 참신한 백성(新民)으로의 ‘과도’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다변’, 새로움(新)에 대한 끝없는 추구를 드러냈다.
새로운 중국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양계초는 그의 스승 강유위와 함께 그때까지 통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 유가 이론을 새로이 재해석했으며, 그 결과 고문경학을 대신하여 금문경학의 관점을 취하였다.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양무운동이 중체서용(中體西用)의 기치 아래 서구 자연과학의 성과를 도입해 군사력의 증강을 꾀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양계초가 앞장선 변법운동은 금문경학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중국사회를 개조하고자 한 것이다.
영웅이 있어 시대를 움직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 법이다. 그는 영웅적 인물을 갈망하는 시대에 태어나 활동했다는 점에서 행운의 풍운아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가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불운의 선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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