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도시 경성의 모던 풍경

2008.06.24 16:06:06

상업이라고는 종로 네거리 ‘육의전’이 전부였던 조선. 이 땅에 가혹한 외세의 식민지배와 함게 자발적으로 요청하지 않은 근대화의 충격이 물밀 듯이 밀어닥쳤다. 번개불 먹는 괴물 같은 ‘전차’에서부터 현실인지 호면인지 구별이 안 되도록 생생한 ‘활동사진’까지. 근대화, 그 달콤한 황금빛 유혹을 둘러싸고 조용했던 변방 도시 경성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짧은 치마 입고 대모테 안경쓰고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서 광복 전후까지, 근대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그 반세기 동안의 엄밀한 보고서인 도시에 역사적 격동기를 숨가쁘게 관통해야 했던 치열한 근대적 모색의 기록이다.
하루가 다르게 정신없이 변화하는 조선 근대화의 정점 경성. 그 안에는 ‘활동사진’에 열광하고 높은 하늘을 나는 안창남의 비행술에 박수를 보내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대모테 안경을 쓰고 젬병 모자를 눌러쓴 모던보이도 있었고, 짧은 치마와 작은 양산으로 멋을 낸 모던걸도 있었다.
또한 조선 3대 재벌로 꼽히며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김성수와 민영휘, 최창학과 같은 부자들도 있었다. 그들의 재산 규모와 축적 과정, 향후 앞날에 대한 전망은 서민들에겐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따라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거리였다. 그런 부자들이 즐겨다니던 고급 요릿집 명월관과 식도원에는 한달에 당시 4만원이나 저금하던 기생들도 있었다.
토착상인들의 힘겨운 투쟁
하지만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당시를 살아가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당장 내일 아침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서민 계층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입이 떡 벌어지는 높은 이자와 야박한 변제 독촉으로 서민들의 고혈을 빤다는 원성에도 불구하고 당장의 끼니 해결이 급했기 때문에 임시변통을 해주는 전당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되는 물건이면 전당포에 갖다 맡기고, 겨우겨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월등한 자본과 무력을 앞세워 야금야금 침약의 야욕을 드러내는 일본에 맞서 토착상인들은 힘겨운 투쟁을 전개해야 했다. 민족 자본을 형성하고 경성 상계의 주권을 지켜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던 시기였다.
‘경성상계’는 당시 경성을 주름잡으며 자가용을 타고 다니던 사람들은 이야기에서부터 신문기자, 의사, 두부장수, 인력거 인부 등 당시를 살아가던 다양한 사람들의 현실적인 경제생활을 함께 보여주며 근대화와 함께 뿌리내리기 시작한 경성의 자본주의 진행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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