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가상자산 열풍, 제도마련 나서야

2021.05.03 11:07:40

9월 특금법 시행으로 대부분 거래소 폐쇄 전망
‘금융상품’ 인정 … 제도권 품어 안아야

 

[시사뉴스 김정기 기자]  지난 20일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은 ‘아로와나 토큰(ARW)’을 리스팅(상장)했다. 한글과컴퓨터 그룹 계열사 한컴위드가 발행한 ARW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금거래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한다. 
50원에 리스팅 된 ARW는 30분 만에 5만3800원 10만% 급상승하는 진기록을 세운다. 4월 30일 오후 1시 27분 기준 1만2930원이다.


ARW는 어떤 기준으로 상장되고 왜? 올랐을까? 이를 설명할 전문가는 아무도 없다. 주식시장에서 급등과 급락 시 적용되는 사이드카도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무용이다. 해외와의 연동으로 24시간 운영되는 거래소의 특성상 잠든사이 코인거지가 될 수도 있다.


가상자산의 특징인 익명성 탓에 ARW 리스팅 후 10만%의 차익을 누가 보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법적으로 수사할 수도 처벌도 불가능하다. 그 누군가가 10만% 차익을 실현할 때 최고점 5만원에 매입한 다른 사람은 현재 자산이 1/3 토막났다.

 

우후죽순 거래소…수익은 상장피


지금까지 가상자산거래소는 플랫폼 제작을 통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었다. 거래소 오픈에 소요되는 비용은 사전에 제작된 프로그램을 자신이 원하는데로 수정(커스터마이징)하는데 까지 대략 1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비트와 빗썸 등 대형거래소를 제외한 소규모 거래소의 수익은 상장피. 코인 또는 토큰을 제작한 회사가 특정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희망하는 경우 대략 비트코인 기준 2비트를 받는다.


누구나 간단한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된 (중국 프로그래머 기준 500만원 정도) 토큰을 거래소에 2비트(23일 기준 1억8천만원)를 내면 어엿한 블록체인 기업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 이 과정에서 타인에게 토큰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거래소에 상장 후 펌핑(가격을 올리는 행위)과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과 수익을 챙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참석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암호화폐 거래소가 200개라는데 등록이 안 되면 다 폐쇄된다” 밝혔다.


은 위원장이 밝힌 거래소 폐쇄 기준은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에 따른 것으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금융회사로 정의 가상자산을 자금세탁과 테러 자금조달 규제를 마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거래소는 올해 9월 24일까지 시중은행과 실명인증 계좌 제휴 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등록해야 한다. 선행 조건으로 ISMS(정보 보안 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 실명인증 계좌 제휴를 맺고 있는 가상화폐 거래소는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개 거래소뿐 다른 거래소의 경우 등록이 안 되면 폐쇄해야 한다.


ISMS 인증은 보안수준 강화를 통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이뤄지며 4월까지 19개 거래소가 통과했음에도 대부분 거래소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은행을 통한 ‘실명인증계좌’ 제휴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상자산과 관련한 사고가 이어지자 은행에서는 거래소와의 제휴를 꺼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ISMS 인증 후 실명인증 계좌 제휴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리는 현실에서 실질적으로 업비트와 빗썸 등 빅4를 제외한 거래소는 폐쇄 수순으로 가고 있다” 밝힌다.

 

 

백서도 없는 코인 ‘스캠’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자산은 백서(White Paper)에서 출발한다. 개발사가 만드는 ▲블록체인은 무엇을 위해서 제작되며 ▲플랫폼 유지를 위한 코인(토큰)은 몇 개를 발행하고 ▲발행된 코인(토큰)은 어떤 경제체계(이코노미)를 통해서 유통되는지 ▲개발진은 누구이고 어드바이저(협력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어놓은 것이 백서다.


백서는 블록체인상에 기록되며 이에 대한 수정을 위해서는 코인(토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투표가 진행된다. 개발과정에서의 기술적 코드와 알고리즘은 개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깃허브(GitHub)’ 사이트에 공유되어 검증된다. 좋은 프로젝트는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코인(토큰)을 선발매하고 투자금을 받는다.


개발업체 관계자는 “지금 코인과 토큰을 개발하고 거래소를 통해 유통시키는 국내 블록체인 기업 중 자체 개발자가 있는 곳은 5%가 안된다”고 말한다. 기존의 개발과정을 무시하고 손쉽게 찍어내듯 가상자산을 발행하고 상장피를 통해 거래소에 리스팅시켜 “수익만 챙기는 경우가 대다수다”고 지적한다. 흔히 스캠으로 불리는 이런 코인들의 경우 금융피라미드와 유사한 형태로 자금을 모집한다. 


토큰 및 지갑 발행 → 조직을 이용한 투자자 모집 → 상장피를 이용한 거래소 리스팅 → 가두리 (거래소 입금 후 출금을 막아버리는 조치)와 자전거랠 활용한 펌핑(가격 올리기) → 최고점에서 팔고 빠지는 식으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법 행위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수익은 개인투자자 능력 … 손해는 정부가 보호?


지난 2018년 ‘한국디지털금융포럼’ 행사가 열린다. 당시 삼성코인이라 소문이 났던 써미츠 코인이 주최한 이 행사에 거물급 국회의원들이 줄지어 참석한다.


써미츠 코인의 공동대표였던 이모 씨는 목사 출신으로 정관계 인맥을 자랑하며 돈을 끌어모았다. 거물급 정치인들의 덕담은 투자자를 움직였고 1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200여억 원을 투자했다.


현재 이모 씨는 공공대표 강모 씨와 함께 사기혐의로 구속 재판을 받고 있다. 써미츠 코인은 2021년 4월 30일 북한의 해킹부대가 국내 공공기관과 개인을 대상으로 ‘써미츠 피해자 보상, 고객 대응 매뉴얼’ 이라는 제목의 악성코드를 배포하며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상자산 투자는 현재 아무런 규제가 없이 이뤄진다. 코인(토큰)을 만들어 판매하는 과정에서 유사수신행위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어떤 제재도 없이 맘껏 투자하고 맘껏 수익을 보고 망하기도 한다. 일각에서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향해 “투자는 자기가 하고 손해는 정부가 책임져라 한다”고 비난하는 이유다.

 


28일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외신기자 간담회를 통해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금융거래정보 분석 강화 등을 통해 6월까지 불법행위를 집중 단속할 계획”이라 밝혔다.


홍 직무대행이 밝힌 불법행위는 ▲자금세탁 ▲투자 사기 ▲불법 다단계 유도 등으로 “가상자산 거래 투명성 제고를 위한 특금법 개정안이 3월 25일부터 시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2022년부터는 연250만원 이상의 거래수익은 20%의 세금을 부과한다. 

 

 

미국과 일본 가상자산 ‘금융상품’으로 인정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는 가상자산에 대한 실체 인정에서 출발한다. 특금법을 통한 거래소 규제와 거래소득에 대한 세금 부과라는 정책을 마련했음에도 정부는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대책도 없다.


세계적으로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과 일본. 미국은 가상자산별로 증권거래위원회와 상품선물위원회에서 인정과 규제를 하고 있다.


지금 비트코인의 상승을 주도하는 기관투자자들도 이런 법령에 근거해 투자하고 수익을 거둔다. 미국은 이런 수익을 자본소득으로 과세한다.


일본은 금융청이 승인한 ‘화이트리스트에 등재된 코인만 거래소에 상장’ 가능하다. 금융자산으로 인정하되 강한 규제를 통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 면허를 발급받은 거래소만 운영이 가능하고 수익은 잡소득으로 규정해 55%의 세율을 적용한다. 미국과 일본 모두 제도권 안에서 가상자산의 발행과 유통, 수익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당국의 시각은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22일 국회 정무위 발언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회에 출석한 은 위원장은 “제도권 안에 안들어 왔으면 좋겠다” 잘라 말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가상자산 거래 규모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넘어서는 가운데 주요 정책담당자들의 시각이 너무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제도적 장치를 거친 철저한 관리를 통해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 또 다른 전문가는 “정부가 부정하기엔 시장이 너무 커졌다”며 “실체를 인정하고 상응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고 ▲거래소 설립과 운영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 ▲가상자산에 대한 평가와 이를 통한 거래소 상장 ▲합리적 과세로 요약된다.


또한 “새로운 제도마련에 시간이 드는 만큼 범정부 차원에서 현행법 테두리에서 불법을 적발하고 투자자를 보호할 장치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권고한다.


전세계적으로 가상자산의 시가총액은 약 2300조로 추정된다. 국내에서도 250만여 명이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있다. ‘실체가 없다’라는 말로 정부 당국이 외면하기엔 거대해져 버렸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규칙이 지배하는 운동장”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기 sisanews@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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