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을! 일자리 나누기를 외침

2009.02.02 18:02:02

일자리 나누기 의병시대 수칙
기업 : 고용 안정성 유지
노조 : 근소득 감소 감수
정부 : 일자리 나누는 데 드는 비용 재정에서 지원
시민사회 : 일자리 나눈 기업 상품 구매 캠페인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출, 민간소비, 투자 가운데 어느 하나 믿을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반복되는 명예 퇴직, 실직과 노숙, 양극화를 비롯한 심각한 사회갈등이 우리 앞에 닥쳐 올 것이다.
그들은 '명예'를 강제로 나눠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경제주권을 내주던 겨울이 코앞에 닥친 어느 날, 세상은 월급쟁이들에게 원치 않는 명예를 나누어주었다. 느닷없이 하사 받은 우울한 명예와 함께 그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숱한 사람들을 명예퇴직으로, 실업자로 몰아가면서 버텨 낸 나라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세계경제 3대 기관차인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모두 살아남기 전쟁에 들어갔다. 일본에 이어 미국도 정책금리를 0%대로 낮췄다. 미국, EU, 일본은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공급을 통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들이 2009년에 마이너스 성장을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기관의 대체적 전망이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 중국은 경제 성장률 8%가 마지노선이라 한다. 중국 정부는 정책금리를 경쟁적으로 낮춰 1년 만기 대출금리가 5.31%에 이른다. 지난 9월 중순 이후 5번에 걸쳐 1.89%포인트를 인하한 것이다. 미국, EU, 일본 등의 경기부진으로 해외수요가 위축될 것은 뻔하다. 이를 메우기 위해 중국은 풍부한 국내저축을 바탕으로 소비를 대대적으로 진작하고 공항, 고속도로, 항구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해 대규모 투자를 벌여 내수경기를 떠받치려 하고 있다.
설령 어렵사리 중국이 8% 성장을 지켜낸다 해도 한국의 수출 감소는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대부분이 중국이 해외에 파는 상품에 들어가는 원부자재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이 늘지 않는 한 중국으로의 수출이 어려운 것이다. 한 마디로 90년대 말 경제위기를 이겨내는 데 큰 힘이 되었던 수출확대 정책을 펴기가 한 층 더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얇은 지갑 사이로 떨어지는 눈물
지난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성장은 지속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소득 증가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단적으로 2004년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평균 4.8%에 달하나 국민총소득 증가율은 2.8%에 불과하다.
이처럼 소득이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GDP 성장에 55% 정도 기여하는 민간소비는 크게 활성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가처분소득의 150% 수준에 육박하는 막대한 가계부채, 부동산 가격과 주가폭락에 따른 부의 자산효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악화로 인한 신용경색, 고용악화로 인한 미래 수입 불안까지 겹쳐 민간소비는 상당기간 되살아날 희망이 거의 없다.
우리 경제의 설비투자는 2006년 이후 2007년 상반기까지 평균 9% 정도 증가를 기록해왔다. 하반기 들어 증가율이 급락하더니 마침내 2008년 2분기에는 0.7% 증가에 그쳤다. 건설투자는 마이너스 증가율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불행히도 향후 전망은 이보다 더 어둡다. 수출시장 악화, 내수 부진, 신용경색으로 설비투자도 마이너스 증가율을 보일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부의 대대적인 SOC 투자에도 불구하고 건설투자도 부동산 경기 악화로 앞이 캄캄한 상황이다. '믿었던 광교'마저 대규모 미달사태를 맞고 말았다.
수출, 민간소비, 투자 상황이 한결같이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데 정부는 인원 감축을 골자로 하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몰아치고 있다. 대통령 스스로 직접 나서서 대기업에 대해 알아서 구조조정 하라고 채근하기도 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는 50여만 명과 공기업 및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까지 직장을 찾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새 일자리는 만들어내지 못해 노동시장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신규 일자리 창출은 2007년 11월 28만1000 개에서 2008년 11월에는 7만8000 개로 급감했다. 비경제활동인구는 35만6000 명이나 증가했다. 경제 일선에서 밀려나는 사람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고용을 보장하는 건 사장이 아니라 시장이다.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금 및 단체협상을 할 때였다. 1990년대 말 경제위기 때 '명예' 훈장을 붙여 숱한 동료들을 떠나보낸 후유증으로 노사불신이 극심했다. 협상에 앞서 노동조합은 조합원 완전고용 보장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들의 주장을 이해 못할 바 아니었다.
["여러분의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의 힘에 못 이겨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사장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차를 사주는 시장입니다."]
시장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용도 없다는 말로 노조를 설득했다. 협상은 성공적이었다.
서로 다른 위기, 극복방식도 달라야
90년대 말 아시아 경제위기는 한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외환 수급 악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명예퇴직 등 고용감축을 통한 눈물어린 희생 등 과감한 구조 조정으로 경쟁력을 회복한 기업들은 원화 가치 하락에 힘입어 수출시장을 적극 개척하며 짧은 시간에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었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사뭇 다르다.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래 미국, EU, 일본 등 전 세계가 처음으로 동시에 겪고 있는, 그 넓이와 깊이를 여전히 가늠키 어려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우리가 설령 원화 평가절하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원가를 낮춰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더라도 물건을 사줘야 할 상대인 미국, EU, 일본은 물론 중국마저 형편이 어려워 단지 수출 확대로 단기간에 이를 이겨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앞서 말했듯 민간소비 또한 빠른 속도로 증가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이처럼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는데 기업이 선제 투자를 하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미분양 아파트가 차고 넘치는 현실에서 주택경기가
활성화되리라 여기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위기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수출, 민간소비, 투자 가운데 어느 하나 믿을만한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 위기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반복되는 명예퇴직, 실직과 노숙, 양극화를 비롯한 심각한 사회갈등이 우리 앞에 닥쳐 올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시장을 안정시킬 특별한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우리 민족에게 시련이 닥칠 때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섰던 선배들의 '의병정신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코자 한다.
오늘의 경제위기에서 일자리를 지키고 만드는 일은 나라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자 한 의병활동과 다름없다 하겠다. 신분의 높낮이, 배움의 많고 적음, 출신을 불문하고 누구의 명령이나 부름 없이 분연히 일어나 기꺼이 열정과 목숨을 바친 의병정신이야말로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가르침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민족과 그 역사를 같이하다시피 한 의병정신은 우리나라가 국난에 처했을 때 처방할 수 있는 역사의 약(藥)과 같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시 의병정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타협과 사회적 신뢰를 조직화하고자 한다면 자기를 내던지는 헌신과 희생에 기초한 '의병시대'를 열어야만 한다.
일자리 나누기 '의병시대'를 위해서는 각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기업은 다시 맞은 경제위기가 엄중하지만 지난 외환위기 때 같이 '명예훈장'을 달아주면서 사람들을 삭풍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지는 않아야 한다. 노조는 완전고용은 시장만이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고 위기극복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즉 노동시간 감소와 그에 따른 소득 감소 등 고통을 나눠지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과 노동조합이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을 나누고 합쳐 '일자리 나누기'를 할 때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특히 연구개발, 인력훈련, 해외시장 개척 및 네트워크 구축을 적극적으로 지원, 제도화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지금의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나가기 위해서 '일자리 나누기'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 하는 곳과 연대해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가야 한다.
일과 가사의 균형 있는 사회 만들기 캠페인,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한 기업상품과 서비스 우선 구매, 노동조합에 참여 촉구, 정치권에 일자리 나누기 지원을 위한 입법 활동 촉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처한 중차대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처방은 일자리에 달려 있다. 앞서 진단한 대로 수출, 민간소비, 투자가 하루 아침에 호전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 방안으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깊은 고민 끝에 이 고비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우리 역사 속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의병들에게서 구하면서, 위기와 시련 앞에 흘린 의병들의 눈물이 이 땅에 뿌린 역사의 씨앗이었음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병시대'를 함께 열어가자고 간곡히 호소한다.



김명완 happyland@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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