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잡기

2009.02.04 21:02:02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은 생활의 슬기가 담겨있는 말이다. 요즈음처럼 당국의 위기대응이나 사회 현안문제에 대한 처방이 엇박자를 내서 내일에 대한 국민들의 희망이 캄캄할 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 말 뜻은 더 깊이 신중하게 생각하고 여러 측면을 살펴 판단하라는 뜻이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구경꾼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시내에 나갔다가 책방에 들러 오랜만에 귀한 책을 발견했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라는 책이다. 청나라 시대에 여진족의 역사를 깊이있게 고증한 책으로 알려졌는데, 직접 볼 기회가 없었다. 우리의 뿌리와 연관이 있는 책이니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인데, 너무 두꺼웠다. 노인틀니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 마당에 이 책을 잡고 있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다.
또 기왕에 우리 뿌리와 연관된 만주, 몽골에 관한 공부가 더 필요하니 아예 관련 책을 모아보고 독서계획을 세워야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책을 내려놓고 경제분야 코너로 가서 최근 상황을 분석한 책들을 살펴보고 한권을 골랐다. 금리인상으로 부동자금을 모아서 건설부실로 발생할 은행을 튼튼히 하고 통화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생각이 달라도 젊은 사람의 주장이니 참고할 바가 있을 터였다.
사무실로 돌아와 출판 쪽에 오래 몸담고 있는 지인에게 만주와 몽골에 관한 책 리스트를 뽑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손에서 놓으면 바보가 된다고 학생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말해온 터라, 사실 어떤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또 필자를 잘 모르지만 새벽편지를 읽고 있는 분들을 만나면 직접 쓰는 글이 맞느냐는 얘기도 듣는다. 좀 엉뚱한 질문같기도 한데, 지도층 인사들의 풍토가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대필시키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모양이다. 자기 이름으로 나가는 글을 어떻게 타인에게 대필을 시키는지 모르겠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읽은 책은 『토정 이지함 평전』을 비롯한 역사책 몇 권과 블랙스완의 『화폐전쟁』 같은 당면한 경제위기에 관한 책들이다. 글도 일주일에 한두 꼭지씩 썼지만 나라현실을 주로 걱정하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는 것들이 전부다. 그러다보니 민생문제와 통일에 관한 체계적인 글을 쓴다는 계획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토정평전을 쓴 신병주 박사는 화담학파나 남명학파에 관한 글을 많이 쓴 실력이 있는 중견학자다. 필자는 평소 18세기 후반에 가서 실학이 일어났다는 기존 학설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신박사는 아주 꼼꼼하게 사료를 토대로 16세기 중반에 활동한 토정 이지함의 사상과 실천을 통하여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신박사에게 고맙고 수고했다는 전화를 걸고, 출판사에도 돈이 안되지만 의미있는 책을 출판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제사 하는 얘기지만, 좋은 책을 읽으면 그것으로 충분했지 글쓴이나 출판사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그게 매우 잘못된 태도라는 반성이 있고 난 뒤부터는 짬을 내어 아주 좋은 책에 대해서는 꼭 감사전화를 하곤 한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독서와 관련해서 부끄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8년 감옥생활에서 잡지구독은 전부 불허했는데 유일하게 교도소측이 허용한 책이 일본의 문예춘추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잡지이기 때문에 문제될 글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문춘에서 일본 정가의 소식뿐 아니라 경제흐름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돼서 꼬박 구해서 읽곤 했다.
세상의 문으로 나온 이후로는 접할 정보들이 많으므로 구태여 문춘을 읽을 필요가 없어서 책방에 들르면 일본서적 코너에 가서 한번 훑어보는 정도였다. 연말에도 일본서적코너에서 입화륭(다찌바나 다까시)라는 평론가가 쓴 교양필독100선이라는 글을 구해 읽었다. 그가 권한 100선 중에는 내가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도 여러 권이 있었다.
흠! 이건 뉴스감인데... 이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이 물론 나와는 사유체계가 다르지만, 그래도 동시대 지식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자연과학이나 뇌생리학처럼 필자가 자주 접하지 않는 분야의 필독서가 있다는 것은 분명 문제있다! 일본의 기술력이 우리와 차이가 많이 나고 기초과학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야말로 국력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배운다는 것은 평생 끝이 없는 일이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분야가 더 많아진다. 힘써 독서하고 부지런히 고민해야 한다


김부삼 kbs6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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