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로 찾기 ‘방주득 모델’

2009.02.17 09:02:02

사방천지가 힘들다는 아우성이다. 절망과 체념의 물결이 넘실댄다. 이렇게 절망을 이겨나갈 정책이 겉돌고 국민들의 마음을 다잡아 일으켜세우지 못한다면 절망은 그냥 현실이 될지 모른다. 이런 절박하고 갑갑한 안팎의 사정에서 뜻밖의 소식이 날아왔다. 포천에 있는 원단공장에 가보자는 거였다.
필자가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인간의 대지’에 평소 후원하는 김부칠 님의 전화였다.
한국에서 섬유사업은 끝났다는 말이 나온지는 오래됐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해외탈출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섬유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산업섬유이고, 한국은 이 부문이 아직 7% 수준에 지나지 않는 실정인데 도대체 어떤 비법을 갖고 있는 것일까. 특히 한국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섬유회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방주득(房珠得) 사장이라는 인물에 관심이 갔다.
마침 김부칠 님과 동향출신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여하튼 공고를 다녔지만 대단한 친구이니 만나보면 안다는 것이었다. 고향 발전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포천의 공장에 도착해보니 방주득 님이 마중나와 있었다. 그의 손을 마주잡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손톱에는 기름때가 훈장처럼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작업복 차림의 그에게 순박한 기술자의 냄새를 느꼈다. 우선 공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규모가 매우 컸다. 중소업체로 생각했기 때문인지 의외였다. 의외인 것은 또 있었다. 운동장에 잔디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대형공장도 잔디를 깐 경우는 드문데 왜 잔디축구장을 만들었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싱거웠다. 이왕 쉬는 시간에 축구하는 거 제대로 차게 해주고 싶어서...
필자는 그 말을 듣고 그만 목이 메었다. 70년대 전국의 공장에서 겪었던 지옥같은 노동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장안은 완전 자동화였다. 그 넓은 공장에 일하는 사람들은 관리직을 포함해서 100여명에 지나지 않았다.
방사장은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특허도 갖고 있는 첨단장비를 설명했다. 한국의 SK, 삼성 같은 회사에서 생산한 원료를 중국에서 1차로 가공하여 그의 공장에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여 고급원사를 만들고 이 원사로 원단을 짜는 장비였다. 왜 중국이나 방글라데시로 나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기술이 있는데, 왜 나가느냐며 오히려 반문했다.
지금도 앞으로도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공장을 다 둘러본 뒤 차 한잔을 나누면서 기술개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이 공고의 기계과를 나와서 섬유회사에서 밥을 먹어왔는데, 평소 관심을 갖고 고민해보면 실마리가 풀렸다는 것이었다.
독일에서 수입한 기계보다 더 성능이 좋은 기계를 만들 때도 그런 방식으로 기술수준을 높일 수 있었다. 바로 이거였다! 그의 자신감은 허장성세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산현장에서 체득된 기술혁신에서 나왔다. 그가 바로 일본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모노쓰구리를 직접 실천하는 한국의 산 모델이구나.
일본이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갖고 있는 비밀은 바로 그들 특유의 기술혁신, 즉 현장에서 기술을 익혀 한 차원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연간 12조원이 넘는 기술개발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성과가 거의 없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실험과 생산현장에 기반한 기계와 바이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활로찾기에 모범사례인 ‘방주득 모델’의 특성을 생각해보았다. 첫째, 그는 가난한 환경이 원망스러웠지만, 좌절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숱한 난관을 이겨왔다. 둘째, 한국사람들이 조금 살만해지면 현장을 떠나는데, 그는 끝까지 현장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답도 거기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그의 기름때가 묻은 손가락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셋째, 그는 한 우물만을 파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원단을 만들어 국제시장에 내다팔려면 위기감을 갖고 세계 최고의 기술수준을 갖지 않으면 안되는데, 딴 마음을 먹어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이 경제난 속에서도 공장을 더 증축해서 새로운 생산라인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다. ‘방주득 모델’이야말로 시양산업이라고 모두 떠나버리는 현실에서 의연하게 섬유산업을 지켜가는 지름길이자 한국경제의 활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주득 건투!!


김부삼 kbs6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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