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처럼 그려낸 성적소수자들의 소통

2009.05.07 15:05:05

한 번도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 없는 섹스 테라피스트 소피아(숙인 리). 그녀는 게이 커플 제이미(PJ 드보이)와 제임스(폴 도슨)를 상담하던 중 ‘숏버스’라는 언더그라운드 살롱을 소개받는다. 비밀스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예술과 정치 등 다양한 대화를 나누지만, 역시 으뜸은 섹스에 관한 것이다.
각각의 방에선 남녀 커플 혹은 쓰리섬 그리고 그룹 섹스와 동성애자 커플의 찐한 성의 향연이 펼쳐진다. 소피아는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성행위에 열중하는 커플이나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까지 모여드는 이 곳 분위기에 충격 받았으나, 서서히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이 염원하던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쓰는데 (중략)
타이틀명 '숏버스'는 말 그대로 '짧은 버스'를 의미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반 버스를 타고 등교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통칭하기도 한다. 소위 어딘가 모자라고 남들과 다른 이들을 조롱하는 뜻으로 해석되는 '숏버스'. 아마도 이 영화에 국한한다면, 일반적인 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성적 소수자를 지칭한다고 하겠다.
감독 존 카메론 미첼은 어릴 때에 '섹스'라는 말을 감히 들을 수조차 없는 가톨릭과 군인 아버지라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헤드윅>과 성적 소수자 등의 실제 성행위라는 파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준 <숏버스>를 연출했다는 사실이 다소 놀랍다. 더욱이 그는 에이즈 확산 문제로 전 세계가 홍역을 치르던 80년대 초 커밍아웃을 했다.
당시 게이를 향한 일종의 마녀사냥이 벌어지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의 이러한 행동은 분명 용기있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그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솔하고 당당하게 성을 표현했으며, 그 결과물의 하나가 바로 <숏버스>에 해당된다.
주지하듯이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일반적인 성적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 속에서 감독의 성적 가치관을 느낄 수 있다. 더욱이 이 영화에는 감독 자신이 어느 여성과 오럴섹스를 하는 까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지적하라면, 아마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언급할 것 같다. 그만큼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연기라기보다는 실제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여기에는 감독이 배우들에게 대본과 똑같이 대사 처리를 하면 해고하겠다는 엄포를 놓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더욱이 감독이 직접 섹스신에 참여할 정도로 배우들과 혼연일체(?)가 되지 않았던가.
<그림1>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다소 투박하고도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주는 <숏버스>.
영화 속 여러 섹스신은 여타 영화에서 보여지는 아름답다거나 말초적인 느낌과는 확실히 다르다. 자극적이거나 몽환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하는 카메라웍을 거의사용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이 자기 방식대로 자유롭게 소통하고 성행위 하는 걸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숏버스>는 이제까지 경험했던 가장 색다른 언론시사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보라. 상영직전 영화 수입 관계자가 이 영화를 개봉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얘기하고 심지어 영화 개봉에 힘쓴 변호사의 법리 해석 설명까지 하는 상황을 말이다. 보통 시사회장과는 다른 뜻 모를 비장함 마저 느껴지는 극장 안 분위기. 하긴 2007년 4월 제한상영가 1차 결정 이후 근 2년 만에 개봉 결정이 났으니, 한편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경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가 상영되었지만, 종영 후의 관객 반응은 다소 시큰둥했다.
아마도 기대에 못 미쳤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두 차례의 심의 보류 끝에 어렵게 개봉되었다는 것과는 달리, 충격적인 장면이 없어서인가. 그렇지 않으면 관객의 내공(?)이 상당해서 이 정도로는 눈도 깜짝 하지 않는 건가.
아마도 이에 대한 해답은 섹스영화에 대한 한국의 이중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즉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포르노를 금지하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인터넷 강국이다.
<그림2>
다시 말해서 매일 밤 수백만명의 섹티즌들이 화끈하고도 색다른 사이트를 서핑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흥행 여부는 여타 영화에는 볼 수 없었던 성행위 장면을 보여주는데 달려 있지 않다.
이 영화보다 훨씬 자극적인 야동으로 이미 내성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거리'가 아닌 '극적 개연성'이나 '관객과의 호흡'에 기대해야 할 것이다. 즉 영화 속 등장인물의 행동이 관객들에게 설득력을 얻거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때, 이 작품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과 흥행 성적이 함께 상승할 것이다.

김명완 happyland@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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