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감청’ 美 기밀문서 유출 파장...동맹국 지속 도감청 의혹

2023.04.10 07:02:41

김성한 前안보실장-이문희 前외교비서관 대화
우크라 살상 무기 지원 美 요구관련 대응 고심
대통령실,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할 예정”
尹 대통령, “사안 잘 살펴보라”는 취지의 지시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을 감청해온 의혹인 담긴 미국 정부의 기밀 문건이 유출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유출 문건은 모두 100여 쪽으로 중앙정보국 CIA와 국가안보국(NSA),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보 기관의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운데 한 건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포탄 공급을 압박할 가능성에 대한 한국 관리들의 우려가 담겨 있다. 또 다른 한 건에는 CIA가 작성한 보고서의 정보 출처가 전화나 전자 메시지를 도청하는데 쓰이는 '신호 정보 보고'(시긴트)로 명기돼 있다.

 

뉴욕 타임스는 미 정보당국이 동맹들까지 도감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건 유출이라고 지적했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문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기밀 문서다. '1급 기밀' 문서도 포함돼 있으며 문서 다수는 미국 정보기관끼리만 공유(Secret/NoForn)하라고 적시하고 있다.

 

유출된 문건의 전체 범위는 불분명하지만 확인된 것만 100여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WP는 자체 확인한 50여 쪽의 문서엔 국가정보국(NSA), 중앙정보국(CIA), 국방정보국(DIA), 국가정찰국(NRO) 등 거의 모든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 활동이 담겼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6일 펜타곤이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한 데 이어 추가 내용을 후속 보도하고 있다.

 

문건엔 미국이 한국 대통령실 외교안보 고위 관계자들을 도·감청한 정황이 담겼다.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다.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 사이에서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밀 문건은 미국이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를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신호 정보(signals intelligence·시긴트)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 "유출된 문서들은 미국이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고 비밀 유지 능력에도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긴트는 전자장비를 통해 수집한 정보를 의미한다. 미 정부기관이 정보를 불법 도·감청했음을 시사한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전 비서관은 김 전 실장에게 "한국이 미국의 탄약 (지원) 요청에 응했을 때 미국이 최종 사용자(end user)가 되지 않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 원수들 간에 통화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위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이 정책을 바꾸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건의했다.

 

이 전 실장은 또 "임기훈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이 3월2일까지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을 약속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이 시점이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일정과 맞물린다는 점에서 "(한국) 국민들은 이 두 가지(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가 거래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것"을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이달 26일 미국 방문 일정은 지난 7일 발표됐다.

 

김 전 실장은 대신 "미국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것"이라며 폴란드에 155㎜ 포탄 33만 발을 수출할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문건엔 나와 있다. 폴란드를 통한 '우회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이 전 비서관은 폴란드가 '최종 사용자'로 불리는 것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로 탄약을 보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폴란드가 무엇을 할 것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는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면서 "한국은 외국에 판매한 무기나 무기 부품을 한국의 승인 없이 제3국에 재판매하거나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문건 내용에 대해 "지난해 말 한국이 미국의 (탄약) 비축량을 보충하는 것을 돕기 위해 포탄을 판매하기로 동의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한국은 최종 사용자가 미군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내부적으론 윤 대통령의 최고 보좌관들이 그것(탄약)이 우크라이나로 가게 될 것을 우려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관련된 문서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지원해 달라는 미국의 압력과 전쟁 국가에 살상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공식적인 정책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한편 미 당국은 지난 6일 뉴욕타임스의 첫 보도 전까지 유포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밀 내용은 문건을 찍은 사진 형태로 지난 2월28일, 3월2일 게임 채팅 플랫폼 디스코드(Discord)에 처음 공유됐다. 국방부는 기밀 취급에 관한 통제 수위를 높이고 자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법무부도 유출 경위 수사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제기된 문제에 대해 미국 측과 필요한 협의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내부 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도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해당 사안을 잘 살펴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통령실은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여러 차례 불거졌지만 한·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정도는 아니었고, 한·미동맹은 여전히 굳건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철우 tallj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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