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공단, 독촉‧압류‧급여제한 체납자 ‘처벌’ 방식 문제없나?

2023.09.04 16:22:09

공공기관 성과 평가와 직결돼 ‘압박 징수’ 의혹 여전
“법적으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고압적인 공단
대부분의 장기 체납자 ‘도덕적 해이’와 무관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건강보험공단(공단)이 뒤숭숭하다. 당장 정부의 주요 노동개혁 과제인 직무성과급 도입에 대한 노조 반발이 거세다. 건강보험노동조합(노조)은 8월 30일 조합원들의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74.73%(투표참여 조합원 대비 찬성률 90.01%)로 가결돼 파업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조는 8월 31일부터 준법 투쟁을 시작으로 쟁의행위 수준을 단계별로 높여가며 단체행동권을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건강보험료율 결정도 미뤄졌다. 내년 건강보험료 인상폭을 놓고 진통이 계속되면서 결정이 9월로 미뤄졌다. 익년 건보료율 결정이 9월 이후로 늦어지는 것은 지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건보료율 인상률을 최소화하겠다고 공언했다. 내년 인상 폭은 올해(1.49%)보다는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이의신청 및 심사청구 건수가 2020년 이후 3년째 증가하는 등 가입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공단의 경영공시에 따르면 이의신청 및 심사청구 건수는 2020년 2,775건 → 2021년 3,220건 → 2022년 4,843건으로 급속하게 증가했다.  

 

 

공공기관 성과 평가와 직결돼 ‘압박 징수’ 의혹 여전


공단 내부의 ‘도덕적 해이’나 ‘시스템 문제’도 지속적으로 지적됐다. 지난해 9월에는 46억원대 횡령 사건이 밝혀져 보건복지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했다. 당시 감사에서 공단의 내부 시스템을 점검한 결과 회계처리에서부터 자체 감시 절차까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공단의 정보시스템 운영, 회계업무 관련 조직, 인사 분야에서 총 18건을 지적했다.

 

특히, 횡령이 약 5개월간 이어졌음에도 내부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공단의 관리시스템 부재가 도마에 올랐다. 또 공단의 회계규정에는 ‘지출원인행위’와 ‘지출업무’를 분리하게 돼 있는데도 같은 부서에서 두 업무를 함께 수행하고 있었던 데다, 지출업무 담당이 지출원인행위 관련 서류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 실질적인 심사는 불가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공단 재정관리실이 시행한 ‘지출 관련 사고 방지를 위한 자체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루어졌고, 회계 업무 소관 부서장 등의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횡령 사건 당사자가 작성한 허위보고서가 그대로 결제됐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공단은 채권업무 관련 권한과 부서를 분리해 상호점검체계를 강화하고 업무담당자의 정보 임의 수정을 막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국세수입이 감소하는데도 공단의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일고 있다. 7월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6월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1~6월 누계 국세수입은 178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39조7,000억원(-18.2%) 감소했다. 반면 공단의 3월 31일 공시에 따르면 1월~3월 건강보험료 징수율은 99.9%로 나타났다. 국세 징수 규정을 준용해 징수하는 건강보험료는 사실상 세금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건강보험료 징수율이 거의 100%에 달하는 건 강제징수 실적이 곧 공단 경영평가와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공단은 2021년과 2022년 연이어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우수, 양호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수십억원의 내부 횡령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양호평가를 받았다는 건 높은 징수율이 반영됐을 것이란 견해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임원 출신 한 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공단이 좋은 기관평가를 받는 건 높은 징수율이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이 ‘압박 징수’를 한다는 비판의 근거로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공단 본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징수율이 높은 이유는 공단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밤낮으로 일한 결과”라며 “공단에 대한 성과평가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법적으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고압적인 공단


경기도에 소재한 한 영세사업체 사례는 이런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 사업체 대표 A씨는 2000년경 한 사업체를 인수해 경영 중이다. 인수 당시 해당 사업체는 약 7억원이 넘는 금액의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어 있었다. 사업체 인수 후 A씨는 꾸준히 체납보험료를 분납해 1억 이하로 줄었다가 약 4억3천만원이 남아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경기가 악화하면서 약속한 분납액을 납부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자 관할 공단지사는 사업체 법인통장을 압류를 넘어 제3채무자 압류까지 진행해 강제 폐업을 유도하고 있다.

 

결국 A씨는 지인들로부터 돈을 변통해 직원들 급여를 지급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공단지사를 찾아가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올해 내에 2천만원 납부와 분납 계획을 밝히고 압류 해제를 간곡히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다. 담당 B과장은 처음 만남부터 끝까지 “압류 해제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과정에서 B과장은 “돈 내라고 말 하는 게 아니다”, “이의신청하고 법적으로 하라”며 시종 고압적으로 A씨를 상대했다. 얼마를 내야 압류 해제가 가능하지 물어도 그는 해제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공공기관 공직자가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장기 체납자 ‘도덕적 해이’와 무관


건보재정 건전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공단의 압박 징수 강도도 커졌다는 불만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건보재정의 건전성은 체납자 징수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연간 2천억원에 이르는 의료기관의 요양급여 부정 수급부터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정부 국고지원 방식, 공공의료체계 등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이 얽혀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취약 계층과 영세사업자의 경제 소득이 악화하면서 납부하고 싶어도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생계형 체납자의 경우 정부가 체납 분 일부를 조정하거나 징수권을 유보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영세사업자의 경우 정부 차원의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건강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경제적 취약계층 14만5,000세대를 대상으로 심사를 거쳐 결손처분(징수권 유보)을 했다. 공단은 지난해 8월 29일부터 건보료와 연금보험료를 체납한 사업장의 체납 정보도 한국신용정보원에 제공하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에 체납정보가 등록되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분류돼 해당 사업장의 대표자는 신규 대출이 어렵고, 신용카드 발급·사용에 제한을 받는 등 모든 형태의 신용거래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공단이 체납보험료의 자진 납부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위 A씨의 사례를 볼 때 그 약속이 현장에서 지켜지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다. 


공단은 체납을 무조건 ‘도덕적 해이’로 돌리고, ‘형평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촉과 체납처분(압류), 급여제한 등의 ‘처벌’을 가하고 있다는 불만은 이미 오랫동안 나왔다. ‘체납자’들은 생존과 건강을 위협당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도 보장받지 못한다. 하지만 관련 통계가 생산된 이래 단 한 번도, 체납크기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리를 위한 관리’가 실효성도 없고, 비효율적임을 말해준다. 건강보험은 국가의 사회보장제도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제도다. 건강보험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에게 가혹한 추심자가 아닌 사회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공단의 핵심 미션은 ‘징수율 제고’에서 ‘가입자의 수급권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장기적으로는 조세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의료이용 시점의 비용부담을 없애고, 다른 사회보장 제도들과의 통합적 연계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건강보험 체납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철우 tallj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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