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은,국격이다 “영웅들 헌신, 제대로 기억하는 나라”

2024.06.24 09:56:32

국가보훈부 출범, 관 주도 보훈 패러다임 전환 신호탄
보훈 예산, 진영간 인식차... 尹 참전 유공자-文 독립 유공자
국민과 함께하는 ‘일상의 보훈’으로 통합 구심점 역할 확대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독립된 조국에서 See You Agai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클로징 자막이다. 일본 제국주의 앞에 나라 주권이 풍전등화이던 시절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의병활동을 그려 큰 인기를 얻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독립을 하고, 전쟁의 참화 위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취하며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 수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면 나라에는 국격(國格)이라는 게 있다. 개인의 재력이 곧 인격이 아니듯, 국력이 바로 국격은 아닐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국가와 국민에 헌신한 영웅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다. ‘보훈’의 의미를 일상에서 새겨야 하는 이유다.

 

국가보훈부 출범, 관주도 보훈 패러다임 전환 신호탄

 

선진국의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품격 있는 나라’로 정의할 수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한 나라의 정부나 시민들이 갖추어야 할 예의를 지칭한다. 보훈은 바로 그 ‘예의’의 핵심이다. 해마다 6월이 되면 일제로부터의 독립과 한국 전쟁, 민주화 등에 헌신하고 희생한 이들과, 국민에 봉사하다 순직한 공무원들을 기리는 행사들이 줄을 잇는다. 이렇게 6월이 ‘보훈의 달’이라는 상징을 갖게 된 건 1963년에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되면서다. 이후 독립, 호국, 민주 등을 포괄하는 역사와 정신을 새기는 달이 되었다.

 

6월이 보훈의 달로 불리게 된 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날들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의병의 날’과 현충일, 6.10민주화 항쟁, 한국 전쟁 등 우리 역사의 영광과 상처가 새겨진 날이 많다. 아직 생소한 6월 1일 의병의 날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말 독립군에 이르기까지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의병 정신을 기념하는 날이다. 2010년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애국정신을 계승하는 날로 자리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인 음력 4월22일(양력 6월1일)에서 유래됐다. 이렇듯 6월은 민족과 나라를 지키고, 국민에 헌신한 이들을 기리고 유족에게 예의를 다하는 달로 자리매김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최근에는 정부 주도 행사만이 아니라 기업이나 시민이 스스로 준비해 펼치는 보훈행사가 느는 추세라고 한다.

 

국가보훈부 출범은 우리나라 ‘보훈 위상’에 대한 일대 전환의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국가보훈부는 2023년 6월 5일 공식 출범했다. 전쟁 희생자 구호 업무를 위해 1961년 군사원호청(1962년 원호처로 승격→1985년 국가보훈처로 개칭)이 설치된 이후 62년만에 장관급 부처로 승격한 것이다. 기존 차관급 부처였던 국가보훈처의 ‘부(部) 승격’엔 ‘일류보훈 실현’이란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평가다. 보훈부 장관은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 심의·의결에 참여하고 필요한 경우 직접 부령(部令)을 발령하거나 부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또 지방자치 관련 위임사무 부여 및 지방행정의 장에 대한지휘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원활한 보훈정책의 추진과 보훈업무의 질적 수준을 제고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보훈부 관계자는 “‘보훈가족’의 입장을 정부 정책에 더욱 충실히 반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특히, 개정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보훈부는 19개 행정부 가운데 9번째 위치에 있다. 신생 부처가 중간 이상 ‘서열’에 위치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보훈 예산에서도 진영간 인식차... 尹 참전 유공자-文 독립 유공자

 

보훈이 국정의 중요 어젠다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부지만, 예산이 수반된 실질적인 ‘보훈 위상’ 강화는 문재인, 윤석열 정부 때 부터다. 나라살림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당시 국가보훈처 지출액이 4.9조원(박근혜 정부 편성)이었던 것이 윤석열 정부 3년차인 2024년 올해 6.4조원으로 예산이 늘었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2018년는 전년 대비 11.2% 증가한 5조 4,863억원으로 첫 5조원 시대를 열었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 2019년은 5조 5,116억원, 2020년 5조 6,795억원, 2021년 5조 8,349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처음 편성한 2023년 국가보훈처 예산은 2022년 대비 5.3% 증가한 6조1,886억원으로 첫 6조원 시대를 열었다. 2024년 국가보훈부 소관 예산은 전년 대비 23.5% 증가한 6조 4,057억원이다. 지난 7년간 30%, 연평균 3.8%가 증가한 셈이다. 다만, 같은 기간 중앙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에서 1%로 감소했는데 이에 대해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의 재정확장 시절 지표와 건전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 지표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무리다”며 “오히려 보훈처를 부로 승격시키며 실질적으로는 예산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윤석열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보훈 예산 세부 사업 지출 내역 차이다. 나라살림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상대적으로 독립운동 유족의 보훈 예산을 늘렸고, 윤석열 정부는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자와 유족의 보훈 예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 예산 중 보상금 지급 총액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4.2%, 윤석열 정부 2년간 연평균 4.1% 증대해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6·25 자녀수당의 경우,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6% 증대에 비해 윤석열 정부에서는 2년간 연평균 16% 증액으로 크게 확대됐다. 단가 인상과 대상자 증가로 증액 폭이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독립유공자 및 유족 지원 예산은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81.5%로 큰 폭으로 증가했으나, 윤석열 정부 2년간엔 연평균 2.7% 증가에 그쳤다. 이에 대해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원은 “문재인 정부는 독립운동 유족의 보훈 예산을 늘리고자 했고, 윤석열 정부는 상대적으로 한국전쟁 및 월남전 참전자와 유족의 보훈 예산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보수 정부는 참전 유공자 보훈 예산을, 진보 정권은 독립유공자 보훈 예산에 방점을 찍었다는 의미다. 진영 간 역사 인식 차이가 보훈 예산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일상의 보훈’으로 통합 구심점 역할 확대

 

보훈은 공동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산하는 역할을 해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통합을 이루는 구심점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 하지만 지난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나, 올해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문제, 최근의 ‘민주유공자법’처럼 외려 국론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정부의 보훈 정책이나 예산이 정권의 역사 인식과 연결돼 추진된다면 보훈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서연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은 “보훈 예산 지출에 정부의 역사 철학을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정권이 바뀌더라도) 최소한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유지될 필요는 있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보훈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이 일상에서 보훈을 실천하고 그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보훈부가 출범하며 제안한 ‘일상 속 살아있는 보훈’은 적절했다는 평가다. 이를 위해 보훈부는 ‘보훈 토크콘서트’ 등 국민 모두가 일상에서 보훈문화를 체험하고 보훈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시급한 것은 보훈가족이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보훈안전망 구축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국가유공자 보훈보상금을 2008년 이후 최대폭으로 인상해 보훈안전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급액이 낮았던 상이 7급의 경우 9%, 6.25 전몰자녀수당은 20.5% 대폭 확대해 균형있는 보상이 되도록했다.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강화했다. 전몰·순직군경의 미성년자 자녀를 대상으로 민관이 경제적, 정서적으로 지원하는 맞춤형 정책인 ‘히어로즈 패밀리’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보훈은 나라가 존속하는 한 계속 해야하는 과제다. 유호근 전 한국보훈학회장은 “보훈은 이념, 세대, 계층을 초월한 공통의 가치다”며 “따라서 지속가능한 보훈 정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 전 회장은 “보훈 선진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국민과 함께하는 보훈, 국민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로 스며들고 자리잡아야 한다”며 “국민과의 소통, 국민의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철우 tallj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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