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지난 4일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재판관 8인의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 12·3 비상계엄으로부터 122일, 탄핵 소추 의결서 접수 111일 만이다. 다행히 탄핵 찬성·반대 측 모두 우려했던 유혈충돌 사태는 발생되지 않았고, 탄핵 후 비교적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권과 경제계 모두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여야는 6월 대선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하고 있다.
헌재, 최장기간 심리...재판관 전원 일치 노력
헌재는 앞서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은 각각 63일, 91일 동안 심리를 진행했으며, 마지막 변론기일이 끝난 지 각각 14일, 11일 만에 결론을 내놓은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지난 2월25일 최후 변론기일을 마친 후 38일 만에 결론이 나왔다. 탄핵 소추 의결서 접수 후 111일 만의 결론으로 최장 심리를 기록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9분경 대국민 담화를 통한 비상계엄령 선포했고, 당시 국회는 계엄군의 국회 투입과 보좌진, 시민들과의 대치 끝에 이튿날 오전 0시2분경 비상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가결시켰고, 이어 탄핵소추를 추진했다. 첫 탄핵소추안은 국민의힘 의원들 대다수가 불참해 표결 불성립으로 폐기됐고, 2차 발의가 추진돼 지난해 12월14일 재석 300명 중 204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헌재는 가결 당일 오후 6시15분경 탄핵소추안을 접수했다. 주심에는 정형식 헌법재판관이 지명됐다. 헌재는 탄핵심판의 준비 절차 성격인 변론준비기일을 지난해 12월27일과 지난 1월3일 두 차례 진행하고, 이어 같은 달 14일 정식 재판인 첫 변론기일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헌재는 ‘형법상 내란죄’를 탄핵 소추 사유에서 빼겠다는 국회 측의 요청을 수용됐고, 윤 전 대통령 측은 소추 사유의 동일성이 사라졌다며 각하를 주장했다.
지난 1월21일 헌재의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는 윤 대통령이 처음 출석했다. 탄핵심판의 증인 신문은 지난 1월23일 4차 변론기일부터 진행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시작으로 총 16명의 증인이 신문을 받았다. 헌재는 2월25일 탄핵심판 최후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변론기일은 11차례였고, 변론준비기일까지 합하면 13차례다. 윤 전 대통령은 3차 변론부터 최후 변론까지 9차 변론기일 한 차례를 빼고 총 8차례 헌재에 출석했다. 윤 전 대통령은 변론 동안 12·3 비상계엄 선포 배경을 정당화하고 정치인 체포 의혹 등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최후 변론에서 탄핵심판이 기각 또는 각하돼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남은 임기에는 연연하지 않고 남은 시간을 개헌과 정치개혁 추진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변론을 마친 헌재는 주말과 휴일을 빼고 매일 평의를 열어 쟁점에 관해 의견을 나눴고, TF 소속 헌법연구관들도 주말을 반납하고 지원에 나섰다. 당초 전례를 고려해 최후 변론 2주 이내인 3월11일~14일 사이 선고가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았지만, 헌재는 예상을 깨고 고심을 거듭했다. 지난달 15일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접수 92일째를 맞아 박근혜 전 대통령 사례(91일)를 넘어 역대 최장 심리에 돌입했다. 지난달 8일 윤 전 대통령이 구속 취소로 석방된 게 영향을 미쳤다는 설, ‘5대 3’으로 엇갈리고 있다는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8대 0’이라는 대세에 지장은 없으나 국론 분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결정문의 세부 내용을 보다 정교하고 치밀하게 다듬는 과정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헌재는 지난 1일 평의를 열고 선고일을 공개했다. 헌재는 선고일 지정 이후 4일 오전까지 평의를 열고 최종 결정문을 다듬었다. 4일 오전 11시 정각에 대심판정에 입장한 8인의 재판관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 파면 결정했다. 헌재는 국회 측이 소추 사유로 제시한 ▲비상계엄 선포 ▲계엄 포고령 1호 발령 ▲국회 활동 방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장악 시도 ▲법관 체포 지시 등을 모두 인정했다. 탄핵 쟁점을 모두 수긍하면서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헌재의 파면 결정 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서 큰 영광이었다.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여·야 헌재 결정 수용...“회복과 치유할 때”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과 관련해 “오늘 헌재의 결정은 어느 한쪽의 승리가 아니다. 헌법의 승리이고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하면서 정치세력들을 향해 분열과 갈등 조장을 멈춰달라고 촉구했다.
우 의장은 이날 국회의장실에서 진행된 ‘대국민 특별담화’를 통해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그 결정의 무게를 깊이 새긴다. 대한민국은 이제 한 걸음 더 전진해야 한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우 의장은 “지금 대한민국의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회복하고 치유하는 길이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의 결정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기가 되도록 함께해야 한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는 좌우가 없다. 의견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우리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 혐오와 적대, 배제와 폭력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헌재 선고 생중계를 지켜본 뒤 기자들과 만나 “헌재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길임을 굳게 믿는다. 안타깝지만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여당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 반복된 의회 폭주와 정치적 폭거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나 극단적인 행동이 있어선 안 된다. 평화와 질서 속에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분열과 갈등을 멈추고 신의와 공동체 회복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4일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국민의 승리”라며, “이제는 회복과 성장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탄핵 선고 뒤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민생 회복과 대통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 대표는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 시작된다. 국민과 함께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과 평화, 경제,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위대한 국민들이 위대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되찾아주셨다. 더 이상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가 국민과 국가의 희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탄핵당한 것은 다시는 없어야 할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계, 하루속히 국정 정상화 기대
경제계가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결정을 존중하고 하루속히 국정 정상화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국론 분열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전 국민이 하나로 뭉치기를 희망한다”며, “글로벌 산업 대전환의 흐름 속에서 우리 경제는 통상환경 악화, 주력산업 부진, 내수침체 등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제는 경기회복과 민생경제 활력 제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로 경제계도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등 본연의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이번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 현재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와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 미국 관세 조치 및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이러한 엄중한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넘어 국정이 조속히 정상화되고,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경제계는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민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함으로써 그동안 탄핵정국으로 야기된 극심한 정치·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종식하고 사회 통합과 안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는 국정운영 공백과 국론분열에 따른 사회 혼란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여야를 초월한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노사를 비롯한 모든 경제주체들도 각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사회 안정과 우리 경제활력 제고를 위해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여·야, 6월 대선 체제 전환 공식화
여야는 6월 대선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화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는 대선 후보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공식 출범한 이후에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가 시작된다. 다만 현 상황에서 당헌에 명시된 룰을 손댈 여유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본경선에서는 당원으로 꾸린 선거인단 투표(50%), 일반국민 여론조사(50%)를 반영해 최다 득표자를 가리게 된다. 당심과 민심을 절반씩 담자는 취지다. 경선 기간은 3주 안팎으로 매듭지어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선거일까지 많은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후보를 정한다는 차원이다.
현재 여권 내 대선주자로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등이 거론된다. 나경원 의원과 김태흠 충남지사, 박형준 부산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등 지자체장을 포함하면 후보가 10여 명은 족히 넘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4일 의원총회에서 “시간은 촉박하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고 져서는 안 될 선거”라며, “피와 땀과 눈물로 지키고 가꿔온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험천만한 이재명 세력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해 우리부터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의 사퇴 시점과 맞물려 경선 레이스에 돌입할 전망이다. 이재명 대표는 조기 대선 일자가 확정된 후 대표 사퇴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 사퇴 즉시 지도부를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하고 선거관리위원회를 띄운 후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헌 개정·대선특별당규 제정과 예비후보 등록, 경선룰 논의, 선거인단 모집 등을 15일까지 모두 끝낼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비경선이 없을 경우 본경선은 16일부터 27일까지 12일간 전국 4개 권역을 순회하는 방식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2017년 19대 대선 경선처럼 호남, 충청, 영남, 수도권·강원·제주로 나눠 권역별 경선을 실시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후보 간 경선룰 논의가 변수로 남아있다. 민주당은 2022년 대선처럼 권리당원과 국민선거인단에게 각각 ‘1인 1표’를 주고, 이를 합산해 후보를 선출하는 ‘국민참여경선(세미프라이머리)’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비명계는 ‘완전국민경선(오픈프라이머리)’를 요구하고 있다. 양기대 전 의원은 지난 6일 페이스북에 “민주당 후보 경선, 완전국민경선제를 실시해야 한다. 형식적 경선이 아닌 통합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의 독주체제가 이어지면서 이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민주당 경선은 사실상 추대경선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유리한 분위기에 편승해 안이하게 대응한다면 정권교체가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 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비호감이 여전히 높고, 어느 후보에 투표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 지지 유보층이 30%대에 이를 정도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