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을 통해본 사실(史實)과 신화

2007.10.05 16:34:51

연동원 - 영화평론가, 延 영상문화연구소장

영화 <300>은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우선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전투 중의 하나인 테르모필라이전투를 소재로 했다는 것과 그 사건을 신화적인 이미지로 묘사해서 베스트셀러가 된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새벽의 저주>로 일약 전미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데뷔작부터 기염을 토한 잭 스나이더의 연출 감각에 대한 기대 심리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여 이제껏 보았던 가장 환상적이고 살아 숨쉬는 듯한 이미지의 역사영화로 탄생되었다.

이 영화는 ‘300’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듯, 스파르타의 최정예 전사 300명이 무려 1백만명의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처절한 전투를 벌인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화의 개략적인 줄거리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 분)가 복종을 요구하는 페르시아의 사신들을 모두 죽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제사장과 정적들의 반대로 인해 3백명의 정예병만을 이끌고 페르시아군과 싸우러가는 레오니다스. 스파르타군은 동맹군과 함께 천혜의 방어지인 테르모필라이 협곡을 등지고서 아귀처럼 싸운다. 적군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기적 같은 승리를 목전에 둘 무렵, 배신자 에피알테스가 페르시아군에게 샛길을 알려줬다는 소식을 접한다. 포위될 것이라고 위기를 느낀 레오니다스는 동맹군을 후방으로 대피시키지만, 자신과 스파르타 정예병은 그 자리를 지킨다. 셀 수조차 없는 화살을 맞으며 산화해가는 레오니다스와 스파르타 전사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전쟁터에서의 죽음은 곧 영광을 의미한다.

역사상 가장 신화적인 전투 중의 하나를 영상으로 재현한 <300>. 그럼 영화 제목대로, 실제로 스파르타 전사 300명이 페르시아군 1백만명과 맞서 싸웠을까?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페르시아 전쟁사」에는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가 264만여명의 군사와 3천척 이상의 함선을 동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수치의 정확성을 굳이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건 마치 백제가 망할 당시, 사비성에 3천 궁녀가 존재했다는 기록을 그대로 믿는 것과 유사하다. 헤로도투스가 그리스의 승리를 과장하려는 것처럼, 김부식은 백제 멸망의 명분으로 궁녀 숫자를 늘려 의자왕의 실정(失政)을 논한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어쨌든 중과부적의 스파르타군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몇 차례나 페르시아군을 격퇴한 것은 ‘기적과 같은 승리’라는 수식어를 달아도 무방할 것 같다.

레오니다스 이하 스파르타 전사들의 죽음은 그리스군이 퇴각하는 시간을 벌어주었으며, 후일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아테네 주도하의 그리스연합군은 살라미스해전과 플라타이아에서의 연이은 대승을 통하여 페르시아전쟁을 승리로 끝맺는다. 그러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아테네 주도하의 승리는 이후 스파르타와의 경쟁 상태를 더욱 부채질하고 결국 그리스 패권을 둘러싼 펠로폰네소스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한편 역사의 현장인 테르모필라이 협곡은 당시 산과 바다 사이에 있는 좁은 길로 폭이 15m 밖에 되지 않는 좁은 통로였다. 그에 따라 구름같이 몰려드는 페르시아군을 상대할 수 있는 최상의 방어지였다. 그러나 십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하듯이, 2천년 이상이나 지난 이곳 협곡은 현재 그 부근을 흐르는 하천으로 폭이 넓어져 어느 곳은 폭이 5km 나 되기도 한다.

끝으로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모든 장면이 특수효과같은 <300>은 분명 충분한 ‘볼거리’와 ‘재미’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감동’이라는 심리적 요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해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병이 모두 장렬히 전사하는 이미지를 환상적이면서도 디테일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말이다. 아마도 그건 영화의 비주얼이 너무 강렬하여 비극적인 사건마저 이미지 속으로 가려버린 게 아닐까 생각된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무언가 가슴 한 구석을 울컥하게 만드는 것이 없는 무미건조한 영화 <300>. 자꾸만 역사학자라는 의식 속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건 이 영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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