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리 시 치유학]레슬리 가너를 만나다

2011.12.21 10:49:12

파트4. 행복바이러스

레슬리 가너를 만나다

좀 더 알았더라면 좋았을 모든 것이라는 주제로 쓴 책인 ‘나를 괴롭혀라’의 저자 레슬리 가너를 2010년 가을에 만났다. 빨간 토마토를 누가 짓밟았는지 속살이 터져 있는 그림의 책이었다.

이 그림이 주는 의미를 잘 모른다. 의례하는 것처럼 저자의 약력을 훑어보았다. 평생 글만 써왔다는 정치가 같은 그녀는 여러 잡지사와 신문에 프리랜서로 칼럼과 시사, 예술 평론, 영화 평론가로 활동하며 유럽, 아프리카, 중동, 극동 지역을 두루 여행했다. 에티오피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살기도 햇으며 지금은 영국 런던에 살고 있다고 소개돼 있었다.

이혼녀인 그녀에게 자녀가 몇 명인지, 어느 나라 태생인지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았다. 굳이 찾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찾지 않았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꽤 알려진 방송인이 자살을 했다. 평소 그녀는 열심히 행복을 외쳤고, 행복을 알리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냈던 그녀는 방송에 나와서 늘 하는 말은, 왜 좋은 세상을 놔두고 왜 자살을 하는지 모른다는 반문을 수없이 제기하곤 했었다. 그녀가 남긴 말 중에는 ‘자살’의 반대는 ‘살자’라고 까지 외쳤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경기도 호텔 방에서 자살을 했다.

행복의 실체를 몽땅 꿴 것 같은 그녀의 죽음은 세상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며칠 가지 않아서 잠잠해졌다. 여전히 새날의 아침과 밤은 오고, 사람들은 밥을 먹고, 사랑을 나누고, 싸우고, 출근을 하고, 어디에선가는 데모를 하고, 아파트 값은 상승세와 내림세를 반복하고, 전세 값은 폭등하고, 여전히 TV에서는 국회의원들의 정치공방과 세상의 잡다한 일들과 일기예보 그리고 점점 가을은 깊어갔다.

평소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 내가 우연히 새 드라마를 시작한다는 광고를 보게 됐다. ‘욕망의 불꽃’. 욕망이 있다는 것은 욕심이거나 강한 집착이 아닌가? 열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욕망이라는 단어에서 살아있음의 증거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제목, 그리고 뒤에 붙은 불꽃. 불은 활활 타오르는 강렬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리 길게 가지 않을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욕망과 불꽃, 짧고 굵다는 것은 좋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견해 차이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가 있다. 어쨌거나 제목이 주는 강렬함이 나를 TV 앞으로 끌어 당겼다.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존재함이다. 살아 있을 때에는 철저하게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대해 철저하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내 생각 위에 왜 욕망이라는 제목에 불꽃이라는 제목을 덧댔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나쁜 사람은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좋게 풀린다는 인과응보의 결론이겠지만 드라마의 시작은 치열한 삶을 강하고 굵게 그려내어 오히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강한 생의 애착을 느낌과 동시에 신선하게까지 느껴졌다.

시인 잘랄루딘 루미는 인간의 삶을 이렇게 노래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여인숙과 같다./매일 아침 새로운 손님이 도착한다./기쁨, 절망, 슬픔/그리고 약간의 순간적인 깨달음 등이/예기치 않은 방문객처럼 찾아온다./그 모두들 환영하고 맞아들이라./설령 그들이 슬픔의 군중이어서/그대의 집을 난폭하게 쓸어가 버리고/가구들을 몽땅 내가더라도.//그렇다 해도 각각의 손님을 존중하라./그들은 어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해/그대를 청소하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자살한 모 방송인, 욕망과 불꽃 그리고 잘랄루딘 루미의 시는 각기 다른 삶의 형태를 그렸다. 이 중에 레슬리 가너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녀만의 강물과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물이었다. 물 흐르는 대로 잘 적응하며 살아내는 레슬리 가너에게 오랜 친구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그녀는 자유인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걸림돌이 되면 편하게 치워버리거나 무시하였다. 자유롭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모습이 책속에서 환한 밝은 빛으로 보였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무상으로 받은 선물인 자유를 잘 활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본래부터 자유가 있었는데, 그것을 다시 자신이 자신을 묶어두려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 그녀는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여행을 하거나 사랑을 하거나 모든 주인은 자신이 됐다.

매일 새롭게 시작하는 그녀는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 내었다. 애당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행동을 취하면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하였고, 항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며 실천하고 있는 그녀는 매일 삶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항상 현재일 뿐이다.//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법정 스님)

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이 무의미해질 것이 분명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한정되어 있는 시간 동안 행복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부삼 kbs61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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