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씨름협회 최창식 회장] “씨름 부활 내게 맡겨라"

2006.03.17 10:03:03

대화와 타협을 통해 시대에 맞는 변화를 이끌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내겠다”
지난달 27일 열린 제37대 대한씨름협회장 취임식에서 최창식(67)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이 같은 포부를 밝혔다. 오랜 내부 갈등 끝에 만장일치라는 극적 화합을 이루어낸 만큼 최 회장의 취임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씨름계는 최 회장 체재 출범을 지루한 갈등 종식과 새출발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최 회장을 만나 민족의 스포츠인 씨름을 살릴 묘안과 각오를 들어보았다.

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고맙다. 씨름계가 말썽이 많아 말리러 왔다가 주변의 권고로 눌러 앉았다. 일류 선수는 못됐지만 청년 때 천안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평생 씨름계에 몸담아온 사람으로 씨름이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열정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다.

씨름계에 오래간 몸 담아온 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1982년 한일 친선 씨름 교류가 있었는데 그 교류단에 단장으로 임명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일본의 발전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선진적인 운영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계기가 됐던 것 같다. 그러다 1983년 민속씨름이 태동했다. 그때 성명을 내고 씨름계의 분열을 경계했다. 노력이 결실을 얻어 대전에서 통합을 위한 이사회가 열렸다. 내가 후원한 허완구 현 승산 회장이 회장직에 오르며 통합이 이루어졌다. 1984년 씨름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러 이만기 선수라는 걸출한 스타도 등장했다. 그때 이 선수의 인기는 연예인 스포츠인 통틀어 최고였다. 그만큼 씨름이 화려한 시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허완구 회장이 불신임을 받아 위기를 겪게 됐다. 허 회장이 도움을 청해 나서서 위기를 막았는데 그 과정에서 구속됐다가 무죄를 선고 받았다. 1987년 협회 부회장에 선출됐으나 고사하고, 1988년 1월 부회장을 맡게 됐다. 당시 오사카 대회를 2년간 2차례 열면서 쓴 개인 비용만 해도 3억이다.
1990년대엔 씨름계의 분열을 막기 위해 협회장에 출마했다. 이때 또 권력의 압력으로 25년 구형을 받았다. 3년2개월 만에 무죄가 선고됐지만 감옥에 있는 기간 운영하던 한일 합작회사도 잃고 가족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막으려고 했던 것은 씨름계의 분열이었다. 씨름계가 예산을 구축하고 체계를 갖추는 그때까지 만이라도 막아보고 싶었다. 갈라지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분열되고 말았다.

왜 그 같은 노력과 신념이 고초로 돌아왔나.
텔레비전 중계를 하는 등 외관이 화려하니 협회 회장직을 권력으로 인식한 것 같다. 권력층이나 재벌에서 각종 방법을 동원해 압력을 넣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협회에 재벌이 와서 돈을 쓴 적은 없다. 나는 협회를 이끌면서 개인 자금만 해도 엄청나게 쏟아 부었다. 이 위치가 결코 무언가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한없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자리인데 오해들을 하고 있나 보다.

씨름계의 주도권 경쟁이 근본적 문제라는 중론인데 더 이상 내분은 없는 것인가.
소설 ‘장발장’에서 강조하는 그야말로 사랑과 용서가 씨름계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씨름인들의 목소리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훌륭하게 경영해나갈 것이다. 씨름협회장이 지금까지 임기를 채우고 나간 경우가 없다. 그만큼 씨름인들이 호락호락 하지 않다는 것이다. 태만한 협회장을 그냥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씨름인들의 이 같은 자세는 씨름계의 경쟁력을 입증한다는 면에서 희망적이라 생각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에서 한국씨름연맹과의 통폐합도 논의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씨름연맹이 현재 현대삼호중공업씨름단 한 구단만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통폐합이 논의되고 있다. 통합은 모두가 원하고 있지만 방법상의 문제에서 차이가 있다. 씨름연맹의 김재기 총재가 한국 씨름에 기여한 면이 많음을 인정하는 만큼, 개인적 의견은 순리에 따라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집행부에서 드물게 선수 출신이다.
그렇다. 선수 출신인 만큼 선수들의 어려움에 대한 관심이 많다. 선수들이 씨름만 생각하고 경기에 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흥행을 위한 사업도 많이 하고 여러 가지로 자금을 늘려 씨름인들의 복지 증강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 선수들은 현재 나이가 들어 힘에서 밀려나게 되면 실직자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씨름의 발전을 위해 구상 중인 계획이 있나.
씨름인의 역량과 씨름이 가진 매력은 경쟁력이 굉장하다고 믿고 있다. 태권도가 민족의 스포츠라지만 씨름은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신 운동으로서의 스포츠적 강점 또한 대단하다. 그런 씨름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1980년대부터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씨름을 알리려 했던 것도 씨름의 세계화가 궁극적 목표였기 때문이다. 현재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 씨름을 정식 국기로 채택해 정부 차원의 지원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한국에서 감독 코치들을 30여개 국가에 파견하려고 생각 중이다.

과거처럼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 할 것 같다. 세부 변화도 모색 중인가.
씨름발전연구원을 만들어 씨름의 부흥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크게는 국기로서 정부 지원을 받는 것과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것이며, 세부적으로 인재 발굴 방안이나 흥행 방안 등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씨름이 부흥하기 위해서는 선수 발굴이 우선돼야 한다. 초등학교 씨름부터 살려서 꿈나무를 육성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겠다. 언론이 씨름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이 많은데, 씨름이 언론에 무관심했던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적극적인 홍보로 씨름이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

젊은 세대가 이종격투기에 열광하는 시대다. 씨름도 보다 다이내믹한 승부를 유도하기 위해 경기 규칙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경기 규칙은 전통이기 때문에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보다 흥미진진한 경기를 위해 바꿔야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많고 실제로 그런 부분들의 변화를 진행시키고 있다. 씨름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기술씨름이 돼야 한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게 이기는 씨름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때 씨름은 성공할 수 있다. 이만기 선수는 이봉걸 선수라는 상대가 함께 존재했기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지루한 샅바싸움을 막는 룰을 강화한다거나 모래판을 바꾼다던지 하는 방법을 동원해 기술싸움을 유도할 계획이다.

모래판의 문제는 무엇인가.
모래가 깊어서 선수들이 발이 빠지니 기술씨름을 펼치기 어렵다. 국제 경기를 하려면 매트를 놓고 해야 하는데 모래판이 씨름의 전통이다 보니 이것이 어려운 실정이다. 톱밥을 섞으면 발이 덜 빠지는데 이런 방법을 구상중이다.
어려운 시기에 씨름계를 짊어졌다.
감옥에 있을 때 김동길 박사가 면회를 와서 책에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는 안창호 선생의 글귀를 적어 줬다. 이 문구를 교훈 삼아서 집행부를 이끌어갈 각오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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