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는 내 문학의 화두”

2006.04.28 09:04:04

번역서와 인터넷 문학이 장악한 청소년 문학계에 정통의 향기를 지닌 창작서 한 권이 시선을 끈다. 최근 출간한 이용포(41) 작가의 성장소설 ‘느티는 아프다’(푸른책들 펴냄/ 8,800원)가 그것.
과거 마을 입구마다 있던 오래된 나무를 연상시키는 ‘느티’를 중심으로 달동네 ‘너브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질박한 사투리와 섬세한 문체, 탄탄한 구성으로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20대 중반 시단에 데뷔해 소설과 드라마에 집중하던 시절을 거쳐 비로소 청소년 아동 문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작가는 “아들이 재미있게 읽어줄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은 착하고 따뜻하고 애정이 넘친다.
소설은 또한,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작품 속에서 사라져가는 변두리 소시민들의 삶의 풍경을 밀도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 하다. 존재의 하찮음,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우울한 감정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느티는 아프다’의 세계는 고향같이 친근하고 자연처럼 포근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당선작을 개작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중편 부분 당선작 ‘성자 가로등’을 개작했다. ‘관촌수필’로 유명한 고 이문구 선생께서 선해 주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뵙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그렇게 일찍,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 몰랐다.

그러고 보니, 이문구 선생의 걸쭉한 입담을 닮았다.
이문구 선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습작 시절 선생의 작품을 정독하고 필사하곤 했다. 선생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살아 있다. 그것이 닮고 싶었다. 사실, 선생의 모든 면을 닮고 싶었다. 문학이든 문학 외적인 삶이든. 선생은 앞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는 데 나의 목표이자 모범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문구 선생의 문학을 좋아한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인들과 후배들에게 남긴 유언을 알게 되면서 크게 감동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후에 묘비를 만들지 말고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관촌의 뒷산 소나무 숲에 유골을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신 지난 2003년 2월25일 한국 문단은 그의 영면을 뼈아프게 애도했다. 한국 문학의 큰 별을 잃은 셈이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느티는 아프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다. 성인 문학을 청소년 문학으로 개작한 까닭은?
성인 문학과 청소년 문학이 따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청소년 등장인물의 성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 문학, 성장 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나왔을 뿐이다.

소설은 시종 ‘느티’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느티’는 어떤 존재인가.
한때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서나 수백 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씩은 있었다. 느티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기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화 되면서 느티나무는 차츰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느티’ 또한 200년 동안 마을 초입에서 마을 사람들의 쉼터 노릇을 해 왔으나 몇 번의 자살 도구로 사용되면서 ‘자살나무’라는 오명을 받게 된다. 그때부터 ‘느티’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인간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통감하는 ‘느티’는 자연을 대유하는 존재이기도 한 것인가.
그렇게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느티’가 아프다는 것을 ‘자연’이 아프다고 받아들이는 독자도 있는 것 같다. ‘느티’가 한 그루의 나무를 넘어 ‘자연’을 대유할 뿐만 아니라, ‘예수’와 ‘부처’, 또는 ‘서낭당’으로 보는 독자도 있다. ‘느티’가 다양한 상징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사회적 패배자나 소외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룬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중에 사회적 패배자가 아닐 수는 있어도 소외되지 않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사회적 패배자를 그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소외된 현대인을 그리고 싶었다. ‘소외’는 내 문학의 화두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느티’와 느티의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가로등을 지키고 있는 ‘가로등지기’와 그의 분신 ‘재채기 인형’, 그리고 백치 소녀 ‘순심’이다. 그들은 소외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인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들이다. ‘사랑’은 내 문학의 또 다른 화두다.

주인공 ‘순호’는 작가의 자화상이기도 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상당 부분 나와 닮아 있는 것이 사실이니까. 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했고, ‘순호’처럼 운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쉽게 집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가로등지기’는 가출 시절 나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쓸 생각인가.
일곱 살 난 아들이 하나 있다. 몇 해 전, 문득 아들에게 남길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됐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아들에게 남기는 유언이라고 생각하며 쓸 것이다. 나에게는 거창한 문학적 목표나 성취 따위는 없다. 그저 아들이 재미있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아들이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함부로 쓸 수가 없다. 욕설이나 야한 장면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문학은 예술이고, 예술을 하는 사람은 자고로 자유로워야 하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렁렁렁. 개인적으로 괴짜 같은 예술가가 되기보다는 한 사람의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다. 내 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읽히기를 원치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훗날 아들에게 읽히지 않는다면 나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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