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배후는 바로 당신입니다”

2006.05.25 14:05:05

누구에게나 배후는 있다

동해 일출과 서해 낙조
떠도는 구름 고운 별무리
그 뒤에는 언제나 하늘이 있는 것처럼
너의 뒤에도 하늘이 있다
어젯밤 너의 하늘은 온통 비바람이더니
오늘 아침 이렇게 햇살 곱구나
때로 나는 너의 배후를 의심하고
너의 하늘마저 질투해서
고민하고 몸부림치지만
너의 하늘은 너무나 커서
언제나 꿈쩍도 않는다
그래서 너는 언제나
고우면서도 빛나면서도
쓸쓸하면서도
폭풍우 몰아치고 캄캄하면서도
넉넉하고 당당하다
나의 배후는
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단체이면서 가장 ‘강성단체’ 중 하나로 꼽히는 민주노총.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은 파업현장에서, 또는 거리에서 시위를 이끌고 공권력을 상대로 한 저항을 망설이지 않는다.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민주노총의 지도자들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단결투쟁”을 외치고 자본가와 정권에 화살을 날리곤 한다. 물론 정부와 언론이 덧칠해 놓은 이미지이지만 민주노총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이렇다.
이 같은 ‘강성과격단체’의 지도자였던 민주노총 이수호 전 위원장이 시집을 내서 화제다. 그것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시집이다. 작년 민주노총 위원장직을 사퇴한 후 본업인 교사로 돌아간지 반년 만에 교사이자 시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선린인터넷고등학교에서 이수호 선생을 만나보았다.

오랜만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에서 사퇴한 후 어떻게 지냈나?
작년 10월25일 사퇴를 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긴 휴가를 가졌다. 1월1일, 교사로 복직하고 3월부터 수업을 시작했으니까. 그동안 나 자신도 돌아보고, 시도 좀 쓸 수 있었다. 시를 쓴다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위원장을 하면서 시를 쓸 수는 없었다. 요 몇 달의 휴식이 개인적으로는 참 좋은 시기였다.

현장으로 복귀한 소감이 어떤가? 새로웠을 것 같은데.
교사로서의 노동운동과 역할이 있고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 있다. 필요하다면 위원장도 하는 거지. 전교조에서는 노조 일을 마치면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이번에는 위원장을 했었고, 평탄치 못하게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특별한 것만은 사실이다.

만약 부른다면 다시 노조로 나갈 생각인가?
다시 나갈 수 있을까? 이제는 안 찾겠지(웃음) 남은 생을 아이들과 보내고 싶다. 노동운동의 최일선의 현장에 서는 것은 이제 후배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시집 ‘나의배후는 너다’이야기를 해보자. 그동안 계속 시를 써왔던 건가?
원래 국문학전공이고 늘 시를 가까이해왔다. 시를 쓴 것은 1980년부터다. 물론 그때는 발표 할 생각으로 쓴 것은 전혀 아니었지. 그냥 가까운 사람과 나누어 읽고 소감을 이야기하고 그런 수준이었다. 시는 자기성찰의 수단이다. 농성을 할 때나 감옥에 있을 때 틈틈이 시를 읽고 쓰곤 했다. 이번에 갑자기 사퇴하고 나니까 게으르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에 몇 달 간 쉬면서도 새벽에 일어나서 시를 쓰고 읽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쓴 시를 인터넷 카페에 올리다보니 그것이 분량이 꽤 모였는데 그 카페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책으로 내보자고 하더라.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도 회의를 시작하기 전 간부들에게 시를 한편 읽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특이한(?) 민주노총 위원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시가 가지는 선동성! 서로가 각박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돌아보는데 시는 무척 유용하다.
솔직히 시에는 문외한이다. 이번 시집에는 어떤 것을 담았는지 말해달라.
사람. 인간관계와 그 따듯함을 담았다. 사람이 귀하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신뢰하고 이해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관계를 가지자. 이런 이야기를 담았다. 세상의 중심은 사람이 아닌가? 자연을 묘사한다고 해도 그 속에는 사람이 있다. 꽃을 묘사해도 그것을 통해서 결국은 사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배후는 너다’가 이 시집의 대표작인가?
자식 중에 안 귀여운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모두 예쁘고 소중한 거지. ‘배후’라고 하면 엄습한 기분이 든다. 고문하면서 ‘너 누가 시켰어 네 배후가 누구야’ 이런 장면이 연상된다. 그러나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내 ‘배후’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내 ‘배후’가 될 수 있고 바로 당신도 내 ‘배후’다. 굳이 좋은 작품을 꼽으라면.

짖궂은 질문이겠지만, 책은 얼마나 팔릴 것 같나?
요즘 시가 잘 안 팔리니까 많이 팔리지는 않겠지만, 이 시집은 운동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누구나 읽어보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이 시집을 읽어본 사람마다 좋은 시라고 지적하는 작품이 제각기 다르다. 누구에게나 감흥을 줄 수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잘 될 것 같다. 이 책을 팔아서 얻는 수익으로는 어렵게 일하고 있는 노동운동가들을 위해 쓸 생각이다. 열악한 복지여건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고 있는 각 단체 상근자들, 노조활동가들이 많다.

아직 노동운동의 최일선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한다.
자기 몸을 크게 희생해서 굳은 일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귀하게 여겨라. 그리고 사람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너무 이념에 메여서 풍부한 인간성이 침해되는 경우가 있다. 정파에 얽메이기 보다는 폭 넓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지라고 충고하겠다.

마지막으로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를 접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이 책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썼다는 선입견을 버려 달라. 우리들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할 따듯함, 더 따듯함 세상을 만들어가는 관점을 담았다. 그 자체로 봐주면 좋겠다.




'하늘이 교실로 내려오다'

가끔은
열어놓은 창으로
하늘이 교실로 내려온다.
아이들이
푸른잠에 싸인다.

수업시간
조는 아이나 팔 배게를 하고 자는
아이들의 얼굴이
참 평화롭다
누구도 평화를 파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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