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핵심고리인가

2006.07.10 11:07:07

5·31 지방선거 이후 한 달이 되는 동안 각계에서 각종의 방책이 쏟아져 나왔다. 여권은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서민경제대책을 세운다고 법석이고, 야당은 오만해서는 안된다며 내부혁신론에 호남연대론, 범우파연합론 등 백가쟁명이다. 재계는 그거 보란 듯이 돌아앉아서 웃고 있고 재경부 관료들은 책임질 일은 하지 않겠다며 국민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우리나라와 국민들이 지금 이런 수준의 대처로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는가. 정치권의 관심은 오로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타산과 표를 얻기 위한 이미지 포장에 쏠려있다. 여당은 진정한 참회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통적 지지기반인 중산서민층이 떨어져나갔으니 이를 다시 되찾아오려면 서민경제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민경제 운운하는 것이지, 정녕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다. 참으로 선거결과를 보고 민심이반의 원인을 진정 깨달았다면 그동안 자신들의 오만하고 한심한 언동에 대한 참회가 있어야 했는데, 겨우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달고 다니지 않겠다는 게 고작이다.
배부른 야당은 자신들이 전통적 지지층만으로는 집권에 실패했으므로 범야권단일후보추대와 외연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야권의 움직임에 대응해서 여권의 재편움직임도 바쁘다. 노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녹여내고 국정수행능력을 돋보이기 위한 깃발로 창조적 실용주의를 내세워 지역당의 이미지를 벗고 동시에 호남+α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60~70년대식 경제개발론이나 이미 실패로 끝난 외자유치론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부딪혀있는 문제의 핵심과는 거리가 먼 선거공학적 정략적 사고의 산물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중국의 추격이다. 수출이 한국경제의 70~80%를 차지하고, 그것도 10여개 품목이 70%에 이르고 있는 한국경제의 취약한 구조 속에서 중국제품에 추월당한다면 한국경제는 그냥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지난해까지도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지키던 20여개 품목이 어느새 중국의 추격으로 10여개로 내려앉았고, 1년 뒤에는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라는 우리의 자랑으로 외화내빈의 현실을 포장할 수는 없다. 중국에 추격당하는 순간, 한국경제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의 추격으로 한국은 희망이 없는가? 단연 그렇지는 않다. 정치권과 재계, 노동계, 국민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으면 얼마든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다. 중국이 추월하기에는 기술격차가 아직 남아있고 금융 등 인프라도 우리가 유리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의 지도층이 정말 온갖 지혜를 짜내야 할 일은 중국보다 조금 앞서 있는 제품의 기술우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핵심부품을 국내의 중소기업들이 생산하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일이다.
이 작업이 당면과제, 즉 경기활성화나 양극화, 중산 서민층 복지확대작업의 핵심고리이다. 중소기업들이 잘 나가는 수출제품의 핵심부품소재를 국내에서 생산해 세계적인 부품소재산업기반을 만들어낸다면 내수시장에 50조 이상의 자금이 돌아다니게 될 것이고 수십만 명의 고용도 늘어날 것이다. 이 흐름이 이어져야 중산서민층에 대한 복지확대도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다.
만약 이 핵심고리를 잡지 못한 채, 경기도처럼 외자에게 핵심부품 생산에 모든 특혜를 만들어주고, 낡은 60~70년대식 개발방식의 경제회생을 추구하거나 국가부채를 늘려 복지를 확대한다면 그 끝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중국에 추격당해서 국내기업들의 중저가 핸드폰과 백색가전처럼 무너지고 나면 연쇄적으로 중소기업도 넘어질 것이고 폭증하는 실업자에 대한 재원마련도 쩔쩔매게 될 것이다.
얄팍한 계산으로 잔머리를 굴리지 말고 핵심고리를 움켜잡아야 지도층도 살고 국민도 산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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