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음모론 믿지 않는다”

2006.10.10 16:10:10

플래툰’, ‘7월4일생’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나 받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국의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이 새 영화 ‘월드 트레이드 센터’ 개봉에 맞춰 지난 15일 한국인 아내와 딸과 함께 내한했다.
논란이 되는 소재를 과감하게 스크린으로 옮겨와 매 영화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켜온 올리버 스톤 감독은 이번 영화 또한 9/11을 소재로 해 주목받았다. 올리버 스톤은 이번 작품에서 정치적인 언급은 배재하고 생존자들의 사투를 그렸지만, 테러에 분노하는 그의 정치론은 교묘한 감성의 포장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감독의 ‘진심’은 전달됐다.

한국에 온 소감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 홍보를 위해 베니스 영화제를 비롯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일본 등 7개국을 순회 중인데 한국이 그 마지막이다. 한국은 이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어 친숙하다. 특히 오늘이 나의 60세 생일이다. 그래서 아내와 딸이 함께 왔는데 내 아내가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내 딸 타라도 역시 반쪽은 한국 사람이라서 그런지 한국 방문이 더욱 의미 있게 생각된다. 나는 영화에서 위기를 극복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좋아하는데 한국이 그런 것 같다. 한국 영화를 많이 봤는데 특히 70~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가 이런 수준에 도달하게 될 줄 몰랐는데 지금 한국영화를 보면 깜짝 놀란다. 10년 전부터 한국영화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플래툰’ ‘7월4일생’ ‘JFK’ 등 정치적인 영화를 많이 만든 올리버 스톤 감독이 9/11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정치적인 색이 짙은 영화를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요소 거의 없이 9/11이 미국인에게 남긴 상처와 그 속에서도 잃지 않은 희망을 이야기했는데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
그 동안 영화를 봐서도 알겠지만 난 드라마티스트다. 내 영화에서는 항상 사람이 중심이 됐고 그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 ‘플래툰’ ‘7월4일생’ ‘닉슨’도 그 내면을 면밀히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한 인간의 고뇌와 휴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월드 트레이드 센터’도 두 남자, 그리고 그의 두 아내에 초점을 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실화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플래툰’에서도 병사들이 전쟁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해봐서 알지만 병사들이 전쟁 중에 정치적인 대화를 하지 않는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정치적인 관심보다도 서로 어떻게 도와서 고난을 이겨낼지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나는 정치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생각하고 두 사람이 비참한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을 느꼈는지와 그들의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다시 만든다면 9/11을 다른 시점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영화를 통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떻게 다시 용기를 얻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9/11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세계는 암흑으로 뒤덮이고 정치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게 됐다. 그러나 9/11 당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이후 미국이 테러에 굴복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의 정서가 만연됐다. 그러나 그 날만은 두려움과 공포가 없었다. 사람들은 강한 심지와 의지를 가지고 난관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내 영화가 그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남길 바란다. 이 영화를 보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렇게 대처했구나 하는 것을 미래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생존자들 중에서 굳이 두 경찰과 가족의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것보다도 힘이 있었다. 9/11 사건으로 3천여명의 사람이 죽었고 불과 20여명의 사람이 생존했다. 다른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많이 다루어지기도 했고, 일부 생존자는 아직도 정신적인 고통을 극복하지 못해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반면 존과 윌은 1차 구조대원으로서 테러가 일어나자마자 건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했던 가족간의 유대관계, 가정생활, 결혼생활의 이야기도 가지고 있었다. 존은 4명의 아이들을 가진 남자다. 게다가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부부간에 서로 별다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와중에 이런 사건을 겪게 되고, 단숨에 시간이 멈춰버린다. 윌의 경우는 자신이 잔해에 깔려있을 당시 예수님의 모습을 봤고, 그래서 자신이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줬다. 이런 이야기는 미국의 감독들 누구나 영화화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영화에서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스크린에서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있나.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월드 트레이드센터가 무너진 것은 밖에서 본 사람들만 아는 일이다.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사람들 중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두 주인공이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지만 정확하게 월드트레이드센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이를 주관적인 시각과 객관적인 시각으로 엇갈리게 보여주면서 이런 상황을 묘사했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가 실화인 만큼 조심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디테일도 중요했다. 구조대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을 직접 출연시켰고 윌과 존을 구조했던 인물 역시 실제 두 사람을 찾아낸 인물이다.

폐허가 된 장면과 구조대들이 갇혀 있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는데 그런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
기술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영화의 3분의 1은 월드트레이트센터 주변에서 촬영했다. 나머지 분량은 LA에서 촬영했다. 무너진 돌덩이와 콘크리트, 철근 등을 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그 사이에서 카메라의 접근로를 만드는게 어려운 작업이었다. 컴퓨터 그래픽도 많이 사용했는데 실제 월드트레이드센터는 16에이커에 달하지만 세트는 1에이커로 만들어 촬영했다.

영화 내적으로는 정치성을 배제했지만 9/11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화씨 9/11’ ‘루스 체인지’ ‘플라이트93’ 등 9/11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들 영화를 보았나.
‘플라이트93’과 ‘화씨 9/11’을 봤다. ‘화씨 9/11’은 다큐멘터리이고 ‘플라이트 93’은 다큐멘터리 식으로 찍은 드라마다. 두 개 다 좋게 봤다. 폴 그린그래스 감독도 ‘플라이트 93’에서 정치적인 색채는 배제했다고 들었다. 지금 현재 대두되고 있는 음모론을 나는 믿지 않는다. 그 사건으로 3천여명이 죽었다. 나는 미국 정부가 자국 국민을 대상으로 이런 무참한 테러를 저질렀다고는 보지 않는다. 음모론자들은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9/11 이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은 더욱 끔찍해졌다. 음모는 오히려 이 부분에 있다고 본다. 아무도 그 이면의 무소불위의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9/11 당시 언론들이 히스테리컬하고 과장되게 반응하면서 무조건 희생양을 찾으려고 했다. 남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 매국노로 치부됐다. 모든 미국인들이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분노를 느꼈고 복수심을 느꼈다. 나 역시 알카에다에게 어느 정도 복수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직후 일어난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대해서는 지지하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어느 정도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이라크 전쟁은 다분히 음모론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 대량살상 무기가 없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9/11 사태 안에 들어있는 음모론에 급급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에 음모가 있는지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춘옥 ok337@sis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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