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돌연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이 사실은 대운하 추진을 위한 사업으로 설계됐었다는 사실을 발표해 정치권을 혼란 속으로 빠뜨렸다.
감사원은 지난 10일 이 같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2008년 당시 대통령실은 ‘사회적 여건 변화에 따른 대운하 재추진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었고 이에 국토부는 대운하 사업재개에 지장이 없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4대강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4대강 사업이 대운하를 고려해 추진하는 통에 건설사들의 대규모 입찰 담합과 시설 관리 비용 등이 증가했고, 수질관리 곤란 등의 문제까지 불거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이명박 정권의 대국민 사기극이 밝혀진 셈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치권은 이번 감사원 발표를 두고 셈법이 복잡해 보인다. 야권이야 전-현 정권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고 있지만, 여권의 상황은 또 다르다. MB정권과 확실히 선긋기 하며 국정원 정국에서 국민적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는 청와대와 달리, 새누리당은 내부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간단치 않게 보고 있다. 감사원 결과를 놓고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삐걱 거리고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4대강 감사 결과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시사뉴스>는 창간 25주년을 기념해 무엇 때문에 여권에서 마찰음이 나고 있는지 파헤쳐봤다.
◆野, “4대강 사업은 전-현 새누리당 정권 공동책임”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 발표가 나오자, 민주당 등 야권은 당장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청와대에서 마치 감사원과 입을 맞춘 듯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자 야권의 시선이 다시 박근혜 대통령을 향했다.
실제로, 감사원 발표가 있던 지난 10일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나 “(감사 결과가) 사실이라면 국민을 속인 것이고 국가에 엄청난 손해를 입힌 큰 일”이라며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이 수석은 그러면서 “전모를 확실히 밝히고, 진상을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며 “그래서 국민에게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대로 사실대로 알리고, 바로 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고, 고쳐야 할 것은 고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현 수석이 직접 나서 이 같이 강경한 발언을 내놓은 것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같은 MB정권과 선긋기에 야권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사실상 4대강 사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합작품이었음에도 이제 와서 발 빼기 하려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울러 야권은 국정원 파문이 거센 상황에 느닷없이 감사원이 기존의 입장을 뒤엎은 결과를 발표하고, 청와대가 이에 즉각적으로 맞장구를 쳤다는 점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까지 보내고 있다.
이이 관련, 심상정 진보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국기문란 사건 등에 대한 국민으로부터의 비판을 모면하고자 이 문제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며 의혹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민주당에서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공동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만일, 일각의 예상처럼 4대강 감사 결과를 통해 국정원 시선을 분산시키고 MB정권과 선긋기를 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면 철저히 꼬여버린 결과이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운하 사기극으로 밝혀진 4대강 사업은 명백한 전-현 새누리당 정권의 책임”이라고 규정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2010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 후에 4대강 사업 자체가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있어 협조하겠다고 말하면서 국민을 믿게 했다”며 “여기에 새누리당은 국민과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이나 연속해서 4대강 사업 예산을 날치기했다”고 지적했다.
◆이재오, “청와대가 정쟁의 중심에 서면되겠나” 반발
게다가, 새누리당 내부적으로는 친이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이 같은 반발에는 황우여 대표까지 힘을 보태 청와대와 새누리당 사이의 난기류가 읽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황우여 대표는 지난 15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감사원 4대강 사업 감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국민적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당에서도 걱정이 있다”며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전, 진행 과정, 그리고 사후에 3번의 감사를 하면서 감사 결과를 달리 발표한 것은 그 신뢰성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대표 역시 ‘정치감사’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황 대표는 그러면서 “정권이 바뀌어도 감사원은 꿋꿋한 자세로 헌법 정신에 따라 엄정한 감사를 함으로써 최고 감사 기관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며 “감사원의 정치적 독립성과 권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하겠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 감사원의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내에서조차 이 같은 의혹들이 제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감사원의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해 여러 논란이 있었다”며 “감사원 발표 부분을 앞으로 소상하게 밝혀서 의혹이 해소되도록 하고 필요한 후속 조치와 대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무리하게 추진돼 국민 혈세가 들어간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감사를 계기로 대규모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갈등을 근원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선 과거와 다른 새로운 추진 원칙과 기준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감사원의 ‘정치 감사’ 논란에서 발을 빼겠다는 의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 불거진 청와대와 감사원의 커넥션 의혹에서도 명확히 선을 긋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럼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까지 나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은 이날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감사원은 정치감사, 주문감사를 하면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감사원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고 ‘정치감사’를 했다는 주장이어서, 여권 내 MB정권 사정 문제를 두고 또 다시 내홍이 깊어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여권 전반에 매우 큰 부담을 준다”면서 “감사원장의 자진사퇴가 국정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4대강 감사 발표에 대한 청와대 반응과 관련해서도 “청와대가 정쟁의 중심에 서면되겠느냐”며 “말을 아끼고 가려야 한다. 야당이너 여당 대변인보다 더 세게 치고 나가면 여당이 할 게 있나, 요즘 청와대 논평을 보면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이 의원은 거듭, “청와대가 국정을 안정시키고 국민통합, 갈등 해소를 해야지 그 중심에 서면 되겠느냐”며 “국정을 풀 생각을 해야지 어떻게 정쟁 전면에 청와대가 나서느냐”고 비판했다. 청와대 이정현 홍보수석의 적극적 4대강 비판 등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어, 이 의원의 청와대 비판도 사실상 박 대통령의 겨냥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