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인 김문수 경기지사가 본격적인 대권 플랜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내년도 경기도 예산에서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밝히고 나섬에 따른 것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 지시가 본격적으로 보수결집 행보를 펼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물론, 다른 일각에서는 김 지사가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부의 취득세 인하 조치를 비롯해 무상보육 예산 지원마저 이뤄지지 않고 있어, 경기도 재정이 파탄 위기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박근혜 정부에 대한 김 지사의 반발이 무상급식 예산 삭감으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무상급식 예산 삭감 책임을 박근혜 정부로 돌리면서 김 지사는 부담을 떨고, 재정 파탄 위기 극복에만 전념하려는 전략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조차도 현 정권과 차별성이 드러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대권 플랜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문제는 김 지사의 진정성이나 전략과는 다른 방향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는 특성상 한 번 후퇴하면 수급자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론은 정부 탓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경기도의 재정 상황에 대해서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다. 결국, 김문수 지사의 복지 철학이 드러난 것 아니냐는 비난만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빚내면서까지 모두에게 무상급식 할 수 없다”
경기도는 재정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취지로 올해 본예산에서 4435억원 감액한 추경을 편성하고, 내년 본예산에도 올해보다 5139억원을 줄이기로 했다. 부동산 거래를 비롯한 경기침체 장기화 등으로 인해 내년도 세수가 크게 주어들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경기도는 이 같은 예산안을 발표하며 860억원 규모의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덧붙여 밝혔다.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발표에 도의회를 비롯한 야권은 거세게 반발했다.
반발이 커지자, 김문수 지사는 지난 16일 열린 주례 간부회의에서 “무상급식은 정치나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무상급식 예산 삭감으로 김문수 지사의 복지 철학이 드러났다는 야권의 비판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김 지사는 또, 이 자리에서 “저희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제 월급도 깍는다. 도 공무원들도 자진해서 수당을 반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식아동과 저소득층 아이들의 급식은 계속될 것”이라며 “그러나 빚을 내면서까지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의 이 같은 설명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김 지사의 “결식아동과 저소득층 아이들의 급식은 계속될 것”이라는 발언으로 인해 야권의 비난은 더욱 거세졌다. 지원은 하되, 급식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기도가 전액 삭감하기로 한 무상급식 예산 860억원에는 결식아동급식비 단가인상분 187억여 원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식아동급식비 단가인상분은 급식의 질이 형편없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한 끼에 3500원이던 것을 4500원으로 1천원 인상하는데 쓰인 비용이다. 즉, 이번 무상급식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결식아동에 대한 급식의 질도 다시 예전처럼 형편없는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김 지사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의 말대로 결식아동과 저소득층 아이들에 대한 급식 지원이 계속되는 것은 맞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에게 자장면 값도 안 되는 3,500원짜리 급식을 제공하면서 생색을 낸데 대해서는 도의적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野, 비난 폭주 “김문수가 경기도의 홍준표”
김 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 소식에 야권의 비난은 즉각적으로 쏟아졌다. 당장, 민주당 경기도당은 입장을 발표해 “1998년 IMF 이후 최초의 감액추경에 대한 김 지사의 석고대죄가 우선”이라며 “잘못된 세입세출 추계, 보트쇼 등 행사성 예산 낭비, 무상급식에 가장 먼저 칼을 들이대는 포퓰리즘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도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김영진 도당 수석대변인도 “도 전체 예산의 0.05%정도인 무상급식 지원예산을 우선 줄이겠다는 것은 김 지사가 임기 8년을 마치고 대권프로젝트에서 보수층을 안고 가겠다는 얄팍한 정치술수”라며 “근거도, 우선순위도 잘못된 무상급식예산 삭감 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의회 강득구 민주당 대표의원은 인터뷰에서 “무상급식을 철회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 “김 지사가 ‘경기도의 홍준표’라는 얘기가 나돈다”, “보수세력의 선두주자로 나서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못 읽은 것 같다” 등 맹비난을 퍼부었다.
중앙당 김진욱 부대변인도 논평으로 가세해 “내년 학생 무상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것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창조적 발상’이기는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다”며 “김 지사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구축을 위해 어린 학생들을 제물로 삼을 생각을 버리고 즉각 예산 삭감 계획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교조 경기지부도 성명을 내고 “보트쇼-요트대회에 이틀간 113억원이나 사용한 도가 아이들 밥값을 줄 수 없다고 하면 동의할 도민이 있겠느냐”면서 “무상급식은 지난 선거에서 도민들이 선택한 정책으로 도지사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겠다면 마땅히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라고 지사직 사퇴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그런 가운데 경기도가 수원 광교 신청사 예정지 인근 부지에 1,400억원대 대규모 문화공연장 건립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더욱 거세졌다. 지난 1991년에 건립된 경기도문화의전당이 20년이 넘어 노후 됐다는 이유에서 새 공연장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예산 부족으로 860억원 무상급식 예산 전액을 삭감하겠다는 경기도가 문화 시설 건립을 위해 1400억원을 쓰겠다니,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기도는 문화공연장 건립을 확정지은 것은 아니다. 검토 단계라고는 하지만, 이조차 민주당 측은 “안일한 대응으로 재정난을 자초한 김 지사가 자신의 싳책사업 대신 시대의 요구인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하려 한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