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 (제2회)

2006.12.28 15:12:12

백사장의 말에 멍히 서 있던 가정부가 밖으로 사라졌다. 황박사는 진찰가방에서 청진기를 꺼내 그의 귀에 꽂으면서 백사장 쪽으로 한 발 다가섰다.
“어디 진찰 한번 해 볼까요?”
“황박사, 난 병이 아니오. 저 문이 꼭 닫혔나 좀 살펴봐 주시오.”
백사장의 눈은 웬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니 대관절 왜 그러십니까?”
“도어를 아주 잠가 주시오. 아주 긴한 얘기가 있소이다.”
“허어, 노이로제가 또 발작하신 게로군요.”
“노이로제가 아니라니까요. 내 얼굴 좀 보시오. 이게 사람의 얼굴이오? 난 협박을 받고 있단 말이외다.”
“협박?”
“놈은 날 죽일지도 모릅니다. 어서 도어를 잠가 주시오.”
“그러죠.”
황박사는 할 수 없이 도어로 가서 찰칵하고 도어놉을 눌렀다. 그만치 백낙원 사장은 겁에 질려있었고 그의 말은 심각했던 것이다.
“기왕 수고하신 김에 저 창문이 제대로 잠겨있나도 좀 봐 주시오.”
황박사는 창문도 가서 살펴봤다. 왜 백사장이 이렇게 겁에 질려있는지 황박사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본인이 하도 진지하게 간청하므로 그 청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창문은 다 잠겨 있는데요.”
“아니요. 커튼이 움직이는 걸 보면 분명히 누가 열어 놨습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고 꽉 잠가 주시오.”
“그러죠.”
황박사는 다시 창문을 살펴봤으나 열어놓은 창문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황박사는 괜히 창문을 다시 열었다 소리나게 닫으며 문을 잠갔다.
“휴우, 이젠 안심입니다.”
백낙원 사장은 두 손으로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누가 협박한단 말입니까?”
“내가 황박살 부른 건 병 때문이 아니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오. 놈은 틀림없이 날 죽이고 말 거요.”
백낙원 사장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마저 어려 있었다.
“백사장 답지 않게 왜 이러십니까? 경찰도 있고 한데 누가 백사장을 해친다는 게요?”
”경찰은 안됩니다. 경찰에 알릴 수 있다면 내가 왜 이러고 있겠소?”
“누구에겐가 약점을 잡힌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렇소, 바로 그거요.”
황박사는 백낙원이 움켜쥐고 있는 편지에 시선을 멈췄다.
“백사장, 그 편지가 바로…? 좀 봅시다.”
“안돼요, 이건 안돼요.”
백사장은 단호하게 그걸 감추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니, 무슨 편지길래 그러십니까? 협박편지라면 제가 봐야 사장님을 도와 드릴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오, 이건 그런 게 아니오.”
백낙원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손아귀에 든 편지를 꼬깃꼬깃 구겨서 이불 속에 감췄다.
“놈은 여러번 편지로 통고해 왔어요. 김회장 아들 김지욱과 나경미의 결혼은 자기를 파멸에 빠뜨렸다는 것입니다.”
“김지욱과 나경미의 결혼이라구요? 그렇다면 그 협박자는 사장님의 어떤 약점을 쥐고 있단 말입니까?”
“그건… 지금 말할 수 없소.”
“그렇다면 내가 도울 일이 뭡니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면 내가 사장님을 도울 수가 없지 않습니까?”
황박사는 답답하다는 듯이 백사장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백낙원 사장은 계속 몸을 부들부들 떨며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나는 좋은 일 해주고 되려 당하고 있습니다. 속된 말에 중매해서 잘 되면 술이 석 잔이요, 못되면 뺨이 석 대라더니만 바로 내가 지금 뺨을 얻어맞고 있는 겁니다.”
“대관절 무슨 말씀인지 저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사장님이 좋은 일 해줬는데 누가 사장님을 해친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김회장의 자부님을 사랑하면 녀석이라도 있었단 말입니까?”
“황박사, 이건 잘 들어 두시오. 후일 황박사가 나를 위해 증인 돼 주셔야 할 겁니다.”
백낙원 사장은 갈수록 알쏭달쏭한 말만 지껄였다. 황박사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이 많은 사내가 흐느껴 울더니 또 그 울음도 멈추고 백사장은 가련하리만치 황박사를 애원하는 눈초리로 바라봤다.
“내가 한 달 전에 우리 회장님 아들 지욱이를 중매해 준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건 방금 얘기한 거구요... 그 결혼은 지금 모두에게 축복을 받고 있을 텐데요.”
“아닙니다. 그 결혼은 곧 파탄이 납니다. 난 그걸 알아요. 어쩌면 신부가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말하는 백낙원 사장의 눈은 거의 절망에 가까웠다.
“꼭 점쟁이 같은 말씀만 하시는군요. 역시 사장님은 신경성 노이로제인가 봅니다.”
“여보시오 황박사. 날 정신병자 취급하시다간 나중에 크게 낭패하시게 될 겁니다.”
“그래 그 결혼이 어떻다는 겁니까? 사장님은 회장님의 은공이 크고, 또 그런 관계로 해서 지욱이한테 그 경민가 하는 처녀를 중매한 건데, 그게 어째서 잘못됐다는 겁니까?”
황박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였다. 나경미한테 사랑하던 남자가 있었다고 해도 그 자가 나경미를 증오했으면 했지 왜 제삼자인 백낙원 사장을 죽인단 말인가. 역시 백사장은 지병인 신경성 노이로제가 악화된 게 틀림없었다.
간신히 백사장을 달래놓고 황박사가 병원으로 돌아온 것은 그 날 오후 7시 20분경.
황박사가 막 병원에 들어서는데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황박사는 진찰실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황내과입니다.”
“황박사님이세요?”
전화통에서 여인의 다급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예, 내가 황입니다만... 누구십니까?”
“여기 백낙원 사장댁인데요, 큰일 났어요. 사장님이 방금 누구에겐가 살해당했어요.”
“아니, 뭐라구요!”
황박사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우일산업 백낙원 사장 살해
-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살해된 백낙원씨는 지난 8월 10일 오후 6시 20분 주치의 황박사의 진찰을 받고 난 후, 일체 외부사람과의 면회를 거절했다고 하며, 현장에는 이렇다 할 단서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범인은 내실 뒤 창문으로 잠입, 백씨의 목을 뒤에서 조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문기사는 우일그룹의 김상필 회장도 읽었다. 그가 그렇게도 아끼던 방계회사 백사장이 이렇게 쉽게 비명에 갈 줄은 김회장 자신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사람이 죽다니… 세상에 이럴 수가…)
김상필 회장은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되씹으며 눈을 감았다.
그때 인터폰이 울리며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자부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들어오라고 하게.”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고 화사한 옷차림의 며느리 나경미가 푹신한 융단을 밟고 들어섰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려무나.”
김상필 회장은 며느리를 눈부신 듯 바라봤다. 아들 지욱이와 결혼한지 겨우 한 달이 됐으니 한참 꿈같은 신혼재미를 느낄 때다. 나경미 역시 아직 처녀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싱그러운 젊음이 넘쳐 흘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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