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살인사건(10회)

2007.05.18 13:05:05

“아직 경찰에 알릴 수 없습니다. 경찰이 알면 매스컴이 떠들게 마련이죠.”
“그도 그렇구나.”
“꼭 아버님이나 장모님을 위해서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금 체면을 따질 땐 아니니까요. 제 친구 형빈이도 정보과 형삽니다. 둘이서 한번 해결해 보겠습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가 온 모양이었다.
“박서방이 나가나 보다. 새 애기가 들어와줬음 얼마나 좋겠니?”
김상필 회장의 바램과는 딴판으로 찾아온 사람은 우형빈이었다. 우형사는 뭔가 중요한 용건을 가지고 찾아온 것 같았다.
“어서 오게.”
“대장은 안 계신가?”
“방금 안으로 들어가셨어. 그래 좀 알아봤나?”
“그래.”
우형빈은 부스럭거리며 포켓에서 종이쪽지를 한 장 끄집어냈다.
“이게 나흘 전부터 현재까지 각 파출소에 신고된 자살자 명단이야.”
지욱은 그 서류를 들여다 봤으나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가 일곱, 남자가 셋... 여자 일곱중엔 신원이 판명된 게 넷, 세명은 신원이 불명이야.”
“물론 경기도 일원이겠지?”
“그래, 전국적인 건 더 많은 숫자가 나오겠지.”
“세 명의 신원이 불명이라...”
지욱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한 명은 강화도 강화경찰서에 신고된 건으로, 나이는 스무 서너살... 아래 위 하얀 투피스를 입었다는군. 그리고 한명은 노파니까 젖혀놓고... 또 한 명은 운천에서 발견된 건데 나이는 서른 가량. 옷은 아래 위 치마 저고릴 입었다는군.”
“강화에서 발견된 여자가 몇 살이라구?”
“스무 서너살... 확인해 보겠나?”
“아니야, 경미는 자살할 이유가 없어.”
지욱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하긴 그렇지만, 자살이라고 다 자살로 인정할 수는 없는 거야. 개중엔 자살로 위장된 타살 시체도 있을 수 있어.”
지욱은 괴롭게 한숨을 쉬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마음에 걸리면 한번 가 보고...”
“그래, 가 보자구.”
두 사람은 강화도로 차를 몰았다. 잿빛 구름이 강화도 언저리로 몰려들고 있었다. 서해안의 파도는 그렇게 거세지는 않았지만 바위에 하얀 포말을 튕기고 있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분명히 아내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확인해 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강화군 양도면 가능리 해변에는 자갈이 많이 깔려 있었다. 바다 저쪽에는 석모도가 빤히 바라다 보였다.
현지 경찰관의 안내로 자갈길을 걸으며 지욱은 이 낯선 고장에 와서 아내가 죽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비릿한 갯바람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직 멀었습니까?”
우형빈이 경찰관에게 재촉했다.
“바로 저깁니다.” 경찰관이 가리키는 곳에 허름한 가건물이 한 채 바닷가에 서있었다.
“왜 시체를 저런 곳에다 방치해 뒀어요?”
“오늘까지 연고자 나서지 않으면 가매장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시첼 발견한 장소는?”
“저기 바위산이 보이죠? 저 바위산 중턱에섭니다. 나무꾼이 발견했어요.”
“투신자살이란 말이죠?”
“경찰관이 그런 진단을 내렸으니까 잘은 모르지만 틀림없이 자살일 겁니다.”
경찰관은 가건물 앞에 다가서더니 자물쇠를 열었다. 삐꺽 하고 녹슨 경첩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헛간문이 열렸다.
“들어오시죠.”
두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헛간 안은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군데군데 뚫어진 천장으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그 한쪽에 거적을 씌어놓은 시체가 보였다.
“그걸 들춰 보시오.”
경관은 우형사가 시키는 대로 시체를 덮은 거적때기를 들췄다. 그건 경미의 얼굴이 아니었다. 전혀 생소한 얼굴이었다.
지욱은 밤이 으슥해서야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서는 경미의 어머니 유병숙 여사가 와서 지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병숙은 경미와 딴판으로 거의 남성에 가까우리만치 호쾌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국회의원을 지낸 여장부였다. 오랫동안 남편없이 경미를 키우며 여성운동을 해왔다. 무슨 여성연합회니 소비자 보호단체니 해서 주로 압력단체로서 그 위세를 떨쳐왔다.
물론 정치를 하자니 정치자금도 많이 들어갔다. 여자 혼자의 힘으로 그런 일을 해낸 데는 억척같은 그녀의 성격이 많이 작용했다. 그만치 이 사회에 아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죽은 백낙원 사장을 앞세워 재벌인 김상칠 회장과 선이 닿았는지도 모른다. 세간에서는 기업과의 결탁이니 정략결혼이니 말이 많았지만, 사실은 지욱과 경미의 결혼은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선을 보자 단번에 상대에게 호감을 느꼈고 약 1년간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혼했던 것이다.
지욱이 응접실로 들어서니 유병숙은 신문을 보고 있다가 일어섰다. 그녀의 안경속에서 이지적인 눈매가 번뜩였다. 도저히 50대라고는 보이지 않으리만치 세련된 모습이었다.
“장모님 오셨군요.”
“그래 어떻게 됐나?”
“아니었습니다. 짐작대로...”
“암, 아니구 말구... 경미가 왜 자살을 하나.”
유여사도 지욱이 강화도로 시체를 확인하러 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은 많아요.”
“이상한 점이라니?”
“장모님은 뭐 짚이는 점이 없습니까?”
“무슨 얘긴가?”
“저야 경미를 안 건 최근 1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약혼시절 밖엔 모릅니다. 경미의 모두를 안다고는 할 수 없거든요.”
“그야 그렇지.”
“그러니까 그 전의 경미에 대해선 장모님이 더 잘 아실 게 아닙니까?”
유여사는 눈빛을 반짝였다. 오랫동안 정치를 한 여자라 눈치가 빨랐다. 지욱이 말하는 뜻을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뭐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흔히 체면 때문에 귀중한 얘길 빠뜨리는 수도 있으니까요.”
한동안 유여사는 지욱을 빤히 건너다봤다.
“하긴 이런 얘길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서도...”
“어떤 얘기든 해 주십시오.”
“어젯밤 난 쭉 그 생각만 해왔다니까... 자네가 들으면 섭섭할 테지만.”
“지금 섭섭한 걸 따지게 생겼습니까?”
“사실은 경미가 처녀시절에 진드기같이 따라댕기던 불량 청년이 있었네.”
“그야 있을 법한 일이죠.”
“그 녀석이 자꾸 마음에 걸린단 말이야.”
“그래서요?”
“겉보기엔 아주 참한 녀석이었어. 경미가 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어느 백화점에서 일할 때 안 청년이야. 그 청년 이름이 뭐더라... 아 용철이... 맞았어. 용철이랬어.”
“용철이요? 성은 뭔데요?”
“김용철이... 아니야, 박용철... 아니야, 방... 방... 맞았어. 방용철이라고 했어. 녀석이 어찌나 위압적으로 나오는지.”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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